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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터 휘서 Oct 14. 2020

미니멀리스트가 포기할 수 없는 아이템

패션 에디터에서 미니멀리스트로 가는 길


만약 미니멀리스트의 기준을 소유한 물건의 개수로 따진다면 1등은 아무것도 가지지 않을 사람일 것이다. 지극히 적은 물건으로 생활하는 성직자도 대표적 미니멀리스트로 꼽힐 테다.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의 저자 사사키 후미오는 미니멀리스트를 판단하는 이런 관념에 대해 아래와 같이 말했다.


아마도 물건이 발명된 이래 가장 소유물이 적었던 미니멀리스트는 디오게네스가 아닐까? 그가 소유한 물건은 몸에 걸친 천 한 장밖에 없었다. 챔피언은 이미 결정되었다. 그러니 미니멀리스트를 자처하며 '누가 누가 물건이 적은 지 대결하는 것은 전혀 의미가 없다.'


그렇다. 미니멀리스트를 물건의 수량으로 판단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살면서 어떤 물건도 소유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니. 물건 줄이기는 미니멀 라이프로 향하는 하나의 과정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소중한 것에 집중하기 위해 불필요한 물건을 줄이는 삶



미니멀 라이프를 다루는 책에서 공통적으로 말하는 미니멀리즘의 정의이다. 처음에는 이 정의가 아리송하게 느껴졌다. 물건을 줄이기 전까지는 와 닿지 않았다. 공간에 과부하가 걸린 물건을 하나씩 또는 대량으로 처분하며 서서히 깨달았다.


Photo by mr lee on Unsplash

3년 간 수백 개의 물건이 집에서 사라졌다. 지금도 매달 물건을 비운다. 아끼던 물건이 수명을 다하면 미련 없이 버리고, 애틋한 추억을 담은 물건이라도 더 이상 쓰지 않으면 사진을 찍은 후 처분한다. 이 과정에서 내게 정말 소중한 물건을 남고 나만의 기준을 터득해간다.


현재 내가 가진 물건이 몇 개인지는 나도 모른다. 150개가량의 물건을 가졌다는 사사키 후미오의 경지까지는 생각해 본 적도 없고 그가 강조했듯이 물건의 개수로 미니멀리스트를 등급화할 필요를 못 느끼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순식간에 증식하는 물건의 속도를 제어하기 위해 가이드라인을 설정해두는 것은 필요하다. 미니멀 라이프를 마음먹고 처음 대량으로 물건을 비운 날 두 가지 가이드라인을 정했다.


'두 계절의 옷이 두 행거를 넘지 않게, 책은 150권을 넘지 않도록 조절할 것.'


가진 물건 중에 가짓수가 가장 많은 옷과 책을 향한 다짐이었다. 정리 컨설턴트 곤도 마리에가 정리 1, 2 순위로 꼽는 대표적 물건이기도 하다. 두 물건 모두 대체로 수칙을 잘 지켜왔다. 특히 옷은 예상보다 더 줄여서 어느 계절에는 두 계절의 옷이 한 행거를 넘지 않을 때도 있었다. 쇼핑의 욕망을 절제하는 것 또한 완전히 자리 잡아서 3년 전보다 사는 양이 25% 수준으로 줄었다. 반대로 책은 간혹 아슬아슬하게 넘었다. 매년 구입하는 양이  평균 50권으로 엇비슷하지만 중고 판매, 기증 등으로 내보내는 양은 들쑥날쑥하므로.


내가 가진 옷과 책은 얼마나 될까?


부쩍 쌀쌀해진 날씨에 가을 옷을 꺼내며 두 물건의 개수를 점검해 보기로 했다. 책은 종종 개수를 세며 조절해 왔으나 옷은 한 번도 세어본 적이 없었다.


찬찬히 세어 보니 옷은 80개, 책은 209권이었다.

숫자로 보니 간명했다. 옷은 예상보다 적었고 책은 어느새 넘겼다. 꾸준히 비워낸 옷에 비해 정리에 소홀했나 보다.

책의 일부는 거실에, 나머지는 문이 달린 수납장에 보관해 시선의 피로감을 줄인다.

책은 초기 가이드라인을 훌쩍 넘었다. 세어보니 10권 정도는 정리가 가능하고 나머지는 힘들 것 같다. 최근에 참고할 책이 많아 대량으로 구입해서인지 대폭 늘었다. 3년 전에 150권을 상한선으로 정해 두고 점점 줄여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글로 밥을 먹고사는 직업이라 수시로 참고할 책이 생긴다. 영감을 주는 좋은 책을 꾸준히 들여야 한다. 나름 공간을 지켜가기 위해 노력하지만 이제는 상한선을 풀어야 할 때가 다. 읽고 싶은 모든 책을 살 수 없어 자주 도서관을 이용하지만 필요한 책은 자꾸 늘어만 가니.


가장 많이 가진 물건은 책으로 판명 났다. 앞으로도 사실은 변함없을 것이다. 미니멀한 삶에서 유일한 맥시멈 아이템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모든 미니멀리스트는 물건을 비우고 줄이는 과정을 거친다. 자신이 만족하는 선까지. 나 또한 그때까지 꾸준히 비울 것이다. 앞서 삶의 소중한 것에 집중하기 위해 불필요한 물건을 줄여가는 것이 미니멀 라이프의 정의라고 언급했다. 처음에는 이해가 가지 않았던 이 말이 어느 순간 어순을 바꿨더니 와 닿기 시작했다.


불필요한 물건을 줄여가다 보니 내 삶의 소중한 것이 남았다.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는 과정이 이 한 문장에 모두 담긴다.


미니멀리스트의 모습은 객관식 답안처럼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다. 인생이 천차만별이듯 미니멀리스트의 물건 또한 모두 제각각이다. 다른 물건은 점점 줄여도 책만은 그 수를 줄일 수 없는 나처럼 각자의 소중한 물건이 오롯이 남는다.

정답은 없지만 누구나 서술형으로 적을 수 있는 삶이 존재한다. 모든 미니멀 라이프는 고유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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