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부터 가계부 앱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면서 자연스레 돈의 흐름에 관심이 생겼다. 특히 지출은 어느 정도 절제가 가능하리라 예상했기에 열두 달 동안 꾸준히 적었다.
가계부를 적으면서 가장 큰 소득은 매달 내가 쓰는 돈의 구성과 금액을 낱낱이 알 수 있다는 점이다. 90% 이상을 카드로 결제하는 시대,매일 돈을 쓰면서도 지출의 감각이 무뎌진다. 어느 연예인이 돈을 적게 쓰기 위해 체크카드 대신 ATM기에서 현금을 인출해서 쓴다는데 그렇게까지는 무리인 듯싶고 쓴 돈이라도 기록해 보자는 가벼운 마음이 출발점이었다.
가계부 앱은 편리했다. 지출별 항목이 설정되어 있고 하위 분야도 다양했다. 각자가 추가하고픈 항목 또한 더할 수 있다. 1년 간 적은 가계부를 보니 한 해 동안의 소비가 여실히 드러났다. 월간 및 연간 항목별 비율을 알 수 있는 원그래프가 유용했다. 매달 나가는 고정 비용을 제외한 주요 지출 순위는 식비 > 생활용품 > 패션/미용 > 문화생활 > 교통/차량 순이었다.
1. 식비
1년 식비는 식료품(41%) > 배달음식(36%) > 간식(11%) 순이었다. 연초에 회사를 다니다 이후 재택근무로 전환했기 때문에 점심 비용이 모두 식료품 또는 배달음식에 포함되었다. 놀랐던 건, 1년 내내 코로나 상황이 지속되어서인지 배달음식에 쓴 돈이 상당했다는 점이다. 117만 2948원이나 되었다. 지인 모임은 일 관련된 것을 제외하고는 최소로 줄였기 때문에 지인과의 식사 비용은 전해에 비해 많이 줄어들었다.
2. 생활용품
미니멀리스트가 되고부터 물건을 사는 횟수와 가짓수가 대폭 줄었다. 올해 생활용품 지출이 상승한 것은 침대를 샀기 때문이다. 저렴이 매트리스에서 몸이 편한 매트리스를 심사숙고해서 골랐다. 침대를 바꾸는데 큰돈이 들었다. 올해 지출 중 단일품목 1위에 해당하는 금액. 그 외 고장 난 선풍기를 버리고 서큘레이터를 샀고 작은 조명과 등받이 쿠션을 샀다. 주방과 욕실, 문구용품 등 잡화 소모품은 꼭 필요한 제품만 구입해서 매달 평균 1만 원대를 기록할 정도로 최소 소비만 했다.
세부 항목은 책(50%) > 모임(47%) > 영화/공연(2%) 순이었다. 야외 공연, 전시, 영화 등이 대폭 축소된 1여 년 기간이라 확연히 달라졌다. 넷플릭스를 해지한 터라 대부분의 문화생활은 독서가 차지했다. 모임 또한 독서 모임의 뒤풀이 비용이 대부분이었다. 취미 생활을 최대한 줄이고 집에서 책읽는 시간을 보냈던 것이 숫자로 나타났다.
5. 건강
올해 아픈 적이 드물었다. 병원을 몇 번 가지 않았다. 가장 크게 아팠던 때는 허리를 다쳐서 일주일 넘게 고생한 일. 이로 인해 신경외과에서 쓴 비용이 52%, 처방받은 약과 주기적으로 사는 인공눈물 등이 31%를 차지했다. 전체 가계부에서 건강 항목이 차지한 비율이 1%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새해에도 건강을 지키는 습관을 길러야겠다.
6. 안 써도 되었을 돈
가계부를 쓰기 전, 3년 간 한 해의 옷 쇼핑을 기록했었다. 그때 반품비 항목을 넣어 기회비용을 가늠해보니 유용했다. 2020년 가계부에 '안 써도 되었을 돈' 항목을 만들어 두었다. 1년 간 쌓인 내역을 보니 각종 반품비, 맛이 없었던 식품, 연체료, 예약 변경비, 부주의로 다시 구입한 제품 등이었다. 후회의 감정이 들거나 나와 맞지 않았던 제품등으로 날린 헛돈인 셈. 다행히 총합계가 몇만 원일 정도로 전체 지출 대비 미미했다. 소수점은 절사 되는 앱의 특성상 전체 지출 비용에서 0%라 기록되었으니 내년에 아낄 수 있는 부분은 아끼기로 하고너그럽게 넘기기로했다.
고정 지출을 매달 관찰하면 소비의 위력을 실감하게 된다.
가계부를 써 본 건 참 오랜만이었다. 돈을 쓸 때마다 기록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꾸준히 쓰다 보니 의식적인 기록이 습관이 된다. 매달 지출 내역을 확인하며 앞 달과 비교하기도 하고 이번 달 지출 구성을 확인하는 재미가 있었다. 고정 지출을 매달 관찰하면 소비의 위력을 실감하게 된다. 자제하는 소비 습관이 절로 길러진다. 대신 꼭 필요한 물건이 생겼을 때는 주저않고 살 수 있다. 사기로 결정한 물건은 신중하고 꼼꼼하게, 안목을 총동원해 고른다.
내년에는 어떤 가계부가 써질지 두근두근 기대 반 설렘 반. 올해를 바탕으로 줄일 수 있는 부분은 보강하고 그 비용을 저장해 두었다 통 크게 쓸 일이 생기면 소비 요정이 출두할 테다. 단단하고 합리적인 소비를 다져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