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의 양보다 내 맘에 쏙 드는 물건의 비율을 늘려가는편이 더 만족도가 높다는 사실을 체감하는 중이다.
3년 간 기록한 옷 쇼핑 구매 개수를 보면 2017년 40개, 2018년 19개, 2019년 9개. 해마다 반씩 줄여나갔는데 연말의 만족도는 30%, 63%, 89%로 오히려 높아졌다. 이 경험을 통해 많이 사는 것보다 적더라도 정말 필요한 옷, 마음에 드는 옷을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우쳤다. 만족도는 ‘이 옷을 다시 발견해도 사겠다’는 생각이 드는지의 유무에 따라 결정했는데 명제는 하나였지만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가격 대비 만족한 가성비, 컬러와 디자인, 나에게 잘 어울리는 옷이었는지, 충분히 활용했는지의 유무까지 종합적으로 판단한 결과였다.
어떻게 반씩 줄여갈 수 있냐고 주위에서 종종 질문을 한다. 파격적인 줄이기의 비결은 바로 기존 옷과 어울리는 옷 위주로 사는 것이다.
작년 2019년 쇼핑한 9개의 아이템을 훑어보자.
상의 - 화이트 포켓 티셔츠, 레터링 티셔츠, 네이비 세일러 티셔츠
하의 - 베이지 롱 스커트, 블랙 니트 스커트
신발 - 블랙 삭스 부츠
액세서리 - 실버 볼드 귀걸이, 골드 링 귀걸이, 그레이 캡
기존 옷과 어울려 활용도가 높았던 아이템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대부분 계획 소비였고 몇몇 아이템은 오랜 고민 끝에 신중하게 들였다. 이렇게 구입한 9개의 옷으로 계절별로 한 벌씩 만들어 자주 입었다.
나에게 맞는 최소 소비다 보니 후회하고 말고 할 품목이 없었다. 옷을 사 오더라도 바로 구입을 확정하지 않은 적도 많았다. 거실에 전신 거울을 세워두고 이리저리 패션쇼를 해보며 외출용 한 벌이 나오는지 확인한 후에야 마음을 정했다.
옷을 적게 구입해 충분히 활용하려면 이렇게 한 벌을 만드는 나만의 통과 의례를 치르는 것이 좋다. 계절별로 마음에 쏙 드는 착장을 정해두면 출근할 때나 외출할 때에 이 옷 저 옷 시도하며 고민하는 시간이 단축된다. 이 습관을 들이니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스티브 잡스처럼 사복의 제복화는할 수 없지만 이 티셔츠엔 이 치마, 이 원피스엔 저 가방.옷끼리 미리 짝을 지어두면 스타일링고민이 싹 사라진다.
일주일 동안 겹치는 옷이 없도록 매일 다른 옷을 입었던 패션 에디터로 일할 때도 한 벌을 만드는 쇼핑에 주안점을 두었다. 기존 옷에서 모자라는 부분을 채워가거나 내일부터 당장 입을 수 있는 한 벌로 맞춰 구입하곤 했다. 요즘은 재택근무로일하다 보니 출근용 의상 압박을 덜었다. 외출하는 빈도가 줄어드니 예전만큼 많은 옷이 필요치 않다. 꾸준한비우기를 통해 옷도 꽤 줄여왔다. 이제 계절별로 정말 마음에 드는 두어 벌 정해두고 취재나 미팅, 지인과의 만남이 있을 때 별 고민 없이 솨사삭 옷을 입고 약속 장소에 나간다.
매일 출근하는 직장인이라면 3~4벌을 정해 날씨와 상황에 맞게 입으면 간편할 테다. 정해놓은 옷끼리 서로의 상하의만 바꿔도 경우의 수가 늘어난다. 이런 습관을 들이면 어울리는 옷이 마땅치 않아서 안 입는옷을 줄여갈 수 있다.예뻐서 무작정 사고 보는 쇼핑 중독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
위아래 사진 속 재킷 or 셔츠&넥타이를 서로 바꾸기만 해도 경우의 수는 몇 배로 늘어난다.
Photo by Benjamin Rascoe on Unsplashdkfo
특히 새 계절을 앞두고 옷장을 정리하며 필요한 옷을 적어두면 계획적인 소비가 가능하다. 한 벌 구성에 부족한 아이템 위주로 둘러보게 될 테니.한눈에 반한옷과 기존 옷을 스타일링하는 것보다 기존 옷을 보완하는 새 옷을 포착하는 편이효율과만족도 모두 앞선다.
돌아보면 매달 몇 만 벌의 옷에 둘러싸였던 시절에도 계절별 즐겨 입던 옷의 개수는 현재와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그때나 지금이나 잘 어울리고 좋아하는 옷은 더 자주 입는다.
생각보다 계절은 훅훅 지나간다. 아무리 풍성한 옷을 가진 패셔니스타라도 자주 입는 옷을 추려보면 전체 보유량 대비 낮을 것이다. 모두에게 주어진 계절과 일수는 매한가지. 옷의 개수만큼날이 더 주어지지 않는다. 새 옷을 향한 쉼 없는 욕망을 가끔은 절제하는 습관을 들여보자.
매달 쇼핑을 했던 예전의 나또한 옷을 계속 사고픈 욕망에 빠져 허덕이곤 했다. 안 입는 옷이 계절별로 하나 둘 늘어가는 걸 알면서도 소비습관과 안목을 점검하지 못했고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쇼핑으로 풀었다. 미니멀리스트로 변신하면서비로소 소비를 객관적으로 돌아보았고 처방을 내렸다. 더 이상 옷을 늘려가는 것으로 나를 표현하지 않는다. 마음의 허기를 쇼핑으로 달래지도 않는다.
옷장을 열어 주르르 자신의 옷을 훑어보시길. 이번 계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옷, 즐겨 입는 옷을 꼽아보자. 덜 입은 옷의 착용 횟수를 되짚어 보자. 계절별 가장 잘 입었던 옷이 현재의 내스타일이고 씁쓸함이 맴도는 옷이 보완해야 할 쇼핑의 미래다.
정말 마음에 드는 계절별 시그니처 한 벌을 만드는 연습, 오늘부터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 구매 습관을 개선하고 스타일링 감각을 키우는 가장 확실한 매개체가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