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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터 휘서 Aug 27. 2020

옷 대신 침대를 샀다

패션 에디터에서 미니멀리스트로 가는 길


올해 쇼핑한 물건 중 가장 비싼 물건은 바로 침대이다. 고민 끝에 예산을 뛰어넘는 매트리스를 구매했다.


매트리스에 돈을 들인 이유는 단 하나, 잠을 편하게 자고 싶어서이다. 10년 가까이 2.5cm 두께의 라텍스 매트리스를 써왔다. 하지만 요 몇 년 사이 불편함을 자주 느꼈다. 바닥에 놓았을 때는 괜찮았는데 딱딱한 나무 프레임 위에 놓자 수면용으로는 적당치 않았다. 오랜 세월에 라텍스가 안에서 부스러졌다. 프레임도 휘어지며 몸을 뒤척일 때마다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당연히 잠을 편히 자지 못했고 일어날 때 즈음에는 허리에 통증이 왔다. 여러모로 바꿔야 할 타이밍이 왔다.


미니멀 라이프를 하며 많은 물건을 내보내 점점 또렷해진다. 일상에서 다이어트를 해야 할 물건과 신경 써야 할 물건의 경계가.


일정 공간 안에서 버거워 보이는 물건은 비우기가 필요하고 나를 건강하고 평온하게 만드는 물건은 늘려가야 한다. 옷을 줄였고 책을 정리했으며 쓰지 않는 잡동사니와 추억의 물건을 내보냈다.


Photo by Ty Carlson on Unsplash


그런 과정에서 절실히 깨달았다. 내가 정작 돈을 들여야 할 물건에는 무심했음을. 하루의 1/3 시간을 보내는 불편한 침대가 그랬고 심한 안구건조증에도 안약을 잘 넣지 않는 습관이 그랬다. 한마디로 건강 항목은 돌아보지 않았다. 예쁜 옷을 향한 부지런한 움직임, 늘 쏟는 좋은 책을 향한 열정 등 트렌디한 정보와 취미에는 시간과 에너지를 들이면서도 내 삶의 질을 높여줄 물건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니... 한심했다.


다행히 몇 년간 물건을 줄이고 소비습관을 바꾸며 정말 필요한 물건, 투자해야 할 물건에 초점이 옮겨갔다. 이제 소수의 옷과 잘 사용할 물건만 소비한다. 그리고 나를 편안하게 바꿔줄 소비에 집중하기로 했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시기, 침대를 공들여 골랐다. 몇 군데의 침대 전문점을 방문해 누웠을 때 가장 편안한 매트리스를 찾아 헤맸다. 심사숙고 끝에 고른 제품은 K사의 매트리스. 스프링의 강도는 중간이었고 누웠을 때 몸을 감싸는 느낌이 편안했다. 세계적인 호텔 체인에서도 사용한다는 사실도 신빙성을 더했다. 가끔 여행지에서 5성급 호텔에 머물렀을 때 매트리스와 침구가 편안해서 '아, 우리 집이었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이제는 여행 대신 일상에서 편안한 잠자리를 만들면 그만이라고 마음을 먹었다. 예산보다 높은 가격이어서 잠시 고민했지만 눈 딱 감고 결제를 했다. 무엇보다 잠을 잘 자야 하루가 상쾌하고 일상이 잘 굴러가는 법. 값어치를 충분히 해내리란 확신이 들었다.


침대는 무사히 배달되었고 코를 찌르는 새 제품 냄새를 빼느라 열흘 정도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냄새가 대부분 날아간 뒤 커버를 씌웠다. 이제 새 침대를 맞은 지 2달 남짓. 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일어날 때 허리가 뻐근한 것도 사라졌고 움직일 때마다 삐걱거리던 소리도 없어졌다. 이참에 프레임도 새것으로 교체했다. 확실히 수면의 질이 올라갔다.

Photo by bruce mars on Unsplash


그리고 안약을 넉넉히 구비해 건조할 때마다 눈을 촉촉하게 만든다. 눈에 좋다는 영양제도 챙겨 먹는다. 책도 밤을 새워 오래 보지 않는다. 이렇게 하나씩 내 건강을 돌보는 습관을 들인다.


점점 외모를 가꾸던 열정과 강박이 점점 옅어진다. 유행에 따라 예쁜 것을 걸치고 던 욕망 대신 일상의 질에 더욱 집중하고 싶어졌다. 나를 평온하게 물들이고 잔잔한 힐링을 선사하는 물건에 눈길을 주련다. 하나씩 시간과 관심을 기울이다 보면 분명 하루하루의 삶이 나아지겠지. 건강한 육체와 편안한 내면이 자주 깃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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