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디터 휘서 Aug 15. 2020

옷 안 사고 6개월 살아보기

패션 에디터에서 미니멀리스트로 가는 길


‘나 언제 마지막으로 옷을 샀지?’


문득 언제 옷을 샀는지 가물가물했다. 기록을 보니 작년 9월 30일 이후로 6개월 동안 옷 쇼핑을 하지 않았다. 10월부터 3월까지, 세 계절을 지나는 동안 어떤 옷도 들이지 않았다니 뿌듯했다.


쇼핑을 하지 않은 달을 차츰 늘려왔다. 2017년에는 2개월, 2018년에는 6개월, 2019년에는 8개월이다. 처음에는 가뭄에 콩 나듯 보이다 계간지마냥 분기별로, 그리고 마침내 쇼핑을 하지 않은 달의 면적이 쇼핑한 달을 훌쩍 앞질러버렸다.


Photo by Vanessa Rauer on Unsplash

 

대략 분기별로 쇼핑을 했는데 이번처럼 6개월 연속으로 오랜 기간 사지 않은 적은 처음이다. 백화점이나 SPA 브랜드 매장, 온라인 쇼핑몰 등 옷으로 향한 발걸음을 대폭 줄여왔다. 보는 만큼 욕망이 똬리를 튼다. 습관적인 아이쇼핑이 구매로 이어지는 확률을 높인다. 이 공식의 노예가 되고 싶지 않았다.


반한 물건이 생기면 일부러 구매를 지연시켰다

그렇다고 아예 보지 않을 순 없었다. 어디 깊숙한 산사에서 법복만 입고 살지 않는 한 온오프라인 쇼핑의 공세에서 초연하기는 어렵다. 대신 반한 물건이 생기면 일부러 구매를 지연시켰다. 물건에 혹해도 그 자리에서 바로 구입하지 않는 습관을 들였다. 설사 사고 싶은 물건이 생겨도 위시리스트나 장바구니에 담아만 두고 결제하지 않았다.

백화점이나 우연히 들른 매장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일단 보고 돌아왔다. 바로 사지 않으면 쇼핑 욕구가 옅어지고 어느새 잊히기도 한다. 감성보다 이성의 영향력이 더 커지는 역전 구간을 자연스레 맞는다.



나는 무소유를 실현하고 싶은 게 아니라
분별 있는 소비를 실천해보고 싶었다


2020년 올해는 옷 쇼핑 목표 개수를 정하지 않았다. 억제할 수 있는 최대한을 성공했더니 개수가 의미가 없어졌다. 해마다 쇼핑 개수를 반씩 줄이는 목표치를 정한 건 ‘과연 가능할까?’ 싶은 수치를 이뤄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1년 옷 안 사고 살아보기>란 책이 있는데 저자 또한 그런 마음으로 실행해 보지 않았을까 싶다.

미니멀리스트라면 점점 줄여서 쇼핑 개수가 0을 달성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을 이도 있겠지만 아직은 그럴 생각이 없다. 나는 무소유를 실현하고 싶은 게 아니라 분별 있는 소비를 실천해보고 싶었을 뿐이다. 이제 소비습관이 확고해져서 옷을 많이 사는 것은 관심에서 멀어진 지 오래다. 나에게 어울리는 최적의 옷, 제대로 된 소수의 옷을 사는 것에  관심이 가는 요즘이다.


옷을 안 산 지 반년이 넘은 시점인 4월이 되자 스멀스멀 쇼핑 욕구가 샘솟았다. 마음의 신호가 떠올랐을 때는 무시하지 않아야 한. 자연스러운 욕구를 너무 억누르면 반작용이 더 커지는 법. 몇 년 전 한창 미니멀 라이프에 매진하며 소비 욕구를 억제했더니 엉뚱한 곳에서 폭발해버렸다. 국내에서 잘 참았던 욕구가 해외에서 터져버린 것이다. 100%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사고 싶은 마음이 나를 강렬하게 휘어잡았다. 너무 예쁘다고 감탄하는 엄마의 부추김에 기대어 스리슬쩍 결제를 하고야 말았다. 그것도 같은 디자인으로 여러 색을 사지 않는다는 원칙을 면서까지.

이후 깨달았다. 미니멀 라이프라는 명분을 앞세워 내 마음을 외면하지 않겠다고.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 진짜 욕구를 무시하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신중한 구매는 가장 필요한 옷을
분별하게 만든다.
소비의 기쁨을 배가시킨다.

여름이 가까워지는 시기, 화이트 티셔츠와 화이트 운동화, 블랙 가방을 샀다.

보풀이 일고 늘어진 티셔츠를 버린 후 새 티셔츠를 신중히 들인 것. 네 종류의 티셔츠를 주문한 후 보유한 옷과 가장 어울리는 두 개를 골랐다. 나머지는 처음 상태 그대로 접어 돌려보냈다. 운동화 또한 굽이 닿고 낡은 것을 버리고 같은 것으로 새로 샀다. 이 디자인이 아주 마음에 들어서 품번을 메모해뒀었고 몇 년 지난 상품이지만 찾을 수 있었다. 해외에서 왔지만 배송료를 더하고도 원래 가격보다 20% 이상 저렴했다. 마르고 닳도록 들어 끈의 가죽이 다 벗겨진 블랙 가방과도 쿨하게 작별하고 100개가 넘는 브랜드를 뒤진 끝에 꼭 마음에 드는 디자이너 백으로 체했다. 6개월의 휴식기를 거쳐 새로운 옷이 그렇게 내게로 왔다.


꼭 필요한 것만 샀기에 후회한 물건이 없다. 잘못 쓴 돈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번 여름을 잘 날 수 있겠다 싶어 상반기 쇼핑을 마감했다. 충분한 마음이 드니 더이상 사고 싶은 욕구가 사라졌다. 여러 계절을 보내고 들인 만큼 입는 즐거움이 늘 따라온다. 신중한 구매는 가장 필요한 옷을 분별하게 만든다. 소비의 기쁨을 배가시킨.



 


* 함께 보면 유용해요


매거진의 이전글 미니멀리스트의 7가지 습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