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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터 휘서 Jul 19. 2020

옷 1년에 몇 개나 사나요?


2017년의 봄 무렵, 한 해동안 산 패션 아이템을 앱에 기록하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단 한 번도 1년 동안 매달 어떤 옷을 샀는지 속속들이 적어본 일이 없었다. 그저 막연하게 ‘다른 패션 에디터보다는 적게 사겠지.’ 또는 ‘매달 옷을 사들이지는 않잖아.’ 하고 안이한 합리화를 했을 뿐.

자주 쓰는 메모 앱에 ‘2017 옷 쇼핑’이라는 제목을 달고 월별로 옷을 살 때마다 기록했다. 1월 쇼핑 _ 하늘색 스웨이드 재킷, 자라, 99000원. 이런 식으로 간략하게.


그렇게 1월부터 12월까지 적어갔다. 매월 꼬박꼬박 챙겨 적었고 드디어 연말에 1년 간의 내역을 좌르르 훑어볼 수 있었다. 한 해의 결산은 놀라웠다. 옷 쇼핑을 전혀 하지 않은 달은 2월과 12월, 단 두 달뿐이었고 매달 자잘한 귀걸이부터 티셔츠, 반바지, 구두 등 다양한 품목이 칸을 채웠다. 총 40개의 패션 아이템에 177만 4140원을 썼다. 월평균으로 따지면 14만 7845원.

무엇보다 개수에 놀랐다. 옷 이외에 가방, 구두, 주얼리 등 종류가 다양하다고는 하지만 예상한 개수를 훌쩍 넘었다. ‘월평균 3.3개만 들여도 40개라는 수가 나오는구나.' 평균의 위력을 실감한 순간이었다.


이 기록을 시작할 때만 해도 미니멀 라이프는 먼 이야기였지만 중간에 이사를 계기로 미니멀리스트의 꿈을 품게 되었다. 자연스레 한 해의 쇼핑을 미니멀리스트의 잣대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제 이미 산 물건은 어쩔 수 없으니 ‘잘한 소비’를 헤아려 보았다. 1월부터 목록을 훑어보며 ‘이 물건을 다시 봐도 사겠다’라는 마음이 드는 것. 오래 생각하지 않고 직관적으로 ‘음, 이건 참 잘 샀어. 여러모로 만족해.’라는 마음이 들면 주저 없이 선택했다.


40개 중 단 12개였다. 이럴 수가! 30%의 만족도였다. 전체 소비 금액 대비로 따지면 24.1퍼센트만 잘한 소비인 셈. 반대로 생각하면 총 40개의 물건 중 28개는 안 사도 그만이었을 물건이고 107만 4090원은 쓰지 말아야 할 돈이었다니...!


‘이렇게나 많구나.’


단호하게 판단하면 옷을 구입한 비용뿐 아니라 이에 드는 시간과 에너지까지 허비했다. 금액과 만족도는 수치화할 수 있지만 시간과 에너지는 측정 불가. 온라인 광고를 수시로 클릭해서 뺏기는 시간까지 고려하면 쇼핑을 위해 1년 간 얼마나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했을까?


길을 가다 우연히 들른 매장의 옷이 예뻐서, 사람들이 잘 어울린다고 해서, 울적한 기분을 달래는데 이만한 게 없어서 등등 내가 마주친 숱한 쇼핑의 순간이 스쳐갔다. 약 70%가 헛짓이었다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Photo by Andrej Lišakov on Unsplash


매 순간 소비의 이유는 다양했으리라. 그러나 최종 결과는 허탈했다. 계획 없이 사들인 옷과 액세서리는 명확한 지표로 돌아왔다.

물론 관용의 여지는 있다. 미니멀 라이프를 마음먹은 지 이제 5개월 남짓이니 올해는 너그럽게 봐줘도 되지 않나 싶었다. 그간 집 안 물건을 비우는데 혈안이 되어 옷 쇼핑에까지 시선이 닿지 못했으니.


‘이제 옷에도 미니멀 소비를 적용해보자.’


내년에는 달라지리라. 후회의 70%를 어떻게든 줄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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