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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hwol Apr 23. 2024

소모소 소랑햄수다*

10. 서울




서울 생활을 시작한 그 순간은 어제의 기억처럼 또렷하다. 미술을 전공하고 서울에서 일을 하면서 프랑스 유학을 준비하던 친구와의 시답잖은 일상을 이야기하다가 아무 계획도, 목적도 없이 상경을 결정했다. 결정과 실행은 그 무엇보다 빨랐고, 재빠르게 주변을 정리하고 24인치 캐리어 하나를 끌고 서울로 갔다


한겨울에 도착한 서울은 너무 추웠고, 바쁘게 길을 오가는 사람도 찬바람이 불었다. 하루아침에 서울행을 정하고 가려고 할 때, 우스갯소리로 ‘눈 뜨고 코 베이는 곳이 서울이란다'라고 했었는데 정말이지 한파에 코가 떨어질 것만 같았다


내 코를 베어갈 사람 누구인가, 잔뜩 긴장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냈고, 문득 칼을 겨눌 사람보다는 챙겨주고 따뜻하게 대해주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매일을 즐겁게 보내다가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싣게 되면서 짧았던 서울 생활에 쉼표를 찍게 되었다. 짧았던 서울에서 만났던 긴 인연들을 이 자리를 통해 추억해보고 싶다


나를 서울로 이끌었던 친구, S

전혀 접점이 없을 것만 같았던 사이였지만, 서로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는지 졸업 후에도 꾸준하게 연락을 이어갔다. 이 친구 덕분에 복잡한 준비 절차 없이 서울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지만 역시 함께 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 사는 동안 많은 의견 차이가 있었고 아쉽게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라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시 연락이 닿아 지금은 파리와 제주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가면서 멀리서나마 상대의 삶을 응원하고 있다


차도녀를 생각했지만 따도녀였던 J 회사 사람들

뜻이 있었던 직종은 아니었지만 단순히 재밌을 것 같아서 지원했던 회사. 서울로 오기 전에 지원해 두고 바로 연락이 없어 까맣게 잊고 지내다가 입사 면접 제안을 받고 바로 면접을 보러 갔던 기억이 난다. 1:3 면접에 여러모로 나보다 좋은 조건을 가진 지원자들이 많아 면접을 보고 나왔을 때는 이미 마음을 정리한 상태였는데 다음 날 합격 전화를 받고 방방 뛰며 좋아했더랬다. 나이도 포지션도 말단이었던 나는, 상사를 비롯해 선배들의 따뜻한 환대를 받았고 멋모르고 하는 업무적인 이야기의 피드백조차도 따뜻했다. 영원할 것 같던 회사 생활은 나의 변덕으로 마무리되었고, 떠나는 날까지 아니 떠나서도 앞날의 축복을 기원해 주었고 뉴스를 통해 알게 되는 큰 사고에는 걱정의 연락까지 넣어주었다. 이제는 그때 그 멤버가 아니겠지만, 바라주었던 그 축복의 기원을 이제 내가 멀리서나마 드리고 있다


모두 다 다른 곳에서 만났지만 서울이라는 도시에 살고 있는 많은 친구들 Y, S, D

제3의 지역에서 일을 하면서 알게 된 Y는, 정해진 기간을 마치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기 전에 배낭여행의 끝판왕이라는 인도로 여행을 떠나게 되면서 더욱더 돈독해졌다. 안 그래도 타지에서 생활하면서 24시간 붙어있었는데 오지를 함께 다니며 울고 웃었다. 나를 제외한 셋은 모두가 서울 출신이라 여행을 마치고 서울에서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고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도 추억을 안주 삼아 술잔을 기울인다


또 다른 지역에서 다른 일을 하면서 만나게 된 S와 D는 ‘사람은 한양으로'라는 이야기처럼 서울이라는 곳에서 일을 하면서 치열한 삶을 이어나가고 있다. 오랜 시절 내가 다녔던 곳들이 여전히 성업 중이라 나에겐 추억을 그들에겐 새로운 경험을 주고 있다. 서울이라는 도시는 변화가 많은 것 같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들이 많아 어제의 나도 오늘의 그들도 나눌 대화의 소재가 많다


오랜 시간을 함께 했고 앞으로도 그럴 별의별 소리의 DEUL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10편의 글을 쓰면서 같지만 다른 서로의 취향을 알게 되고 나눌 수 있는 기회였다. 그리고 그 기회를 생각하고 제공해 준 ‘들'에게 무척이나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학창 시절은 함께였고 사회생활은 달랐지만 앞으로의 삶은 같을 것이라, 그의 서울이 그리고 나의 제주가 앞으로도 기대가 된다


차디찬 도시를 상상하지만 나에게 서울은 따뜻한 사람들을 많이 만난 곳이고 아직도 그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이다. 또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도시답게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넘쳐나는 곳이라 여전히 서울을 간다는 것은 출발 전부터 설레고 그것에 더해 나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익숙함도 있는, 나의 서울은 사람이다. 복잡하고 차갑더라도 나에게는 한없이 따뜻하기만 한 곳이다




* 소모소 소랑햄수다 : ‘무척 사랑합니다'라는 뜻의 제주 사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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