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감상문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비슷한 방향으로 달려가게 된다. 서울, 명문대, 자가, 안정적인 직장. 모험이나 새로운 진로보다는 모두가 정답이라고 말하는 삶을 향해 나아간다. 그리고 이 길에서 누구보다 앞서 달려온 남자가 있다. ‘김낙수’. 서울에 자가를 가지고 있고, 대기업에서 부장으로 일하는 사람이다.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는 바로 이 ‘김낙수’가 임원 승진을 목표로 보내는 1년을 따라간다. ‘류승룡’이 연기한 ‘김낙수’는 자기 일에 대한 자부심과 경쟁에 대한 맹신을 동시에 지닌, 이 시대의 전형적인 ‘아버지 모습’을 하고 있다. 후배들에게는 꼰대 소리를 듣고, 살아남기 위해선 다소 치사한 선택도 마다하지 않는 인물이지만, 그렇다고 능력이 부족한 것도 아니다. 그래서인지 그가 겪는 사내 정치, 회사원의 민낯, 사회 현실 같은 것들이 묘하게 우리 일상과 접속하며 묵직한 공감을 만들어낸다.
이 드라마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서로를 비추는 대칭점 같은 두 인물이다. ‘김낙수’와 그의 아들 ‘김수겸’. ‘김낙수’는 오랜 경쟁의 세계에서 살아남았다는 자부심이 강하다. 그래서인지 그 경쟁을 통과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은근한 우월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조금 평면적이라 볼 수도 있지만, 실은 우리가 주변에서 너무도 흔히 마주치는 50대 한국 아버지의 모습이다. 반면 ‘김수겸’은 그 정답지 자체에 의문을 품는 세대다. 자신의 미래 앞에서 흔들리고, 아버지가 말하는 ‘안정된 길’ 대신 미완의 가능성을 따라가려 한다. 어쩌면 많은 2030들이 이 캐릭터에 본능적으로 마음을 기댔을 것이다. 아버지를 이해하지만 완전히 닮고 싶지는 않은 마음. 세상이 이미 변했는데 옛 방식을 그대로 재현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그리고 실패했을 때 아버지의 눈빛이 자신을 어떻게 비출지에 대한 막연한 공포. 그 감정들이 ‘김수겸’을 바라볼 때마다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드라마가 흥미로운 지점은, 어느 한쪽의 정답을 주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변화하는 세상을 늦게나마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김낙수’와, 아버지의 세계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는 ‘김수겸’. 두 사람은 결국 어느 지점에서 서로를 향해 천천히 다가서고, 그 사이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빈틈을 남긴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는 아산공장 에피소드에 이르러서 큰 변화를 맞이했다. 모종의 사건으로 임원의 꿈과 멀어진 채 아산 공장으로 좌천된 ‘김낙수’가 그 꿈을 놓지 못한 채 아산 공장에서 발버둥 치는 모습을 담은 에피소드였다. 이 작품의 진짜 분기점은 아산공장에서 ‘김낙수’가 20명의 정리해고 대상자를 골라야 하는 순간이다. 그전까지의 ‘김낙수’는 ‘현장에서 뛰던 능력자’였지만, 관리자가 갖춰야 할 책임감과 감정노동의 무게를 이해하지 못한 인물로 묘사된다. ‘백 상무’와의 대화, 라이벌 ‘도 부장’과 대비되는 팀 분위기 등은 그가 여전히 ‘과거의 연차’에 머물러 있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나는 이 장면에 이르렀을 때, 이 드라마가 ‘김낙수’가 진짜 관리자가 되어가는 성장담을 그릴 거라 생각했다. 정리해고라는 잔혹하지만 피할 수 없는 선택을 앞에 두고, 그 고통을 온전히 떠안으며 비로소 임원으로 나아가는 이야기 말이다. 하지만 드라마는 예상 밖의 선택을 내놓는다. ‘김낙수’는 20명을 자르지 않는다. 대신 본인이 희망퇴직을 선택한다. 그 순간, 이 드라마의 제목이 완전히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얼마나 많은 이들이 어린 시절부터 전리품처럼 갈망해 온 단어들인가. 그리고 드라마는 그 화려한 타이틀을 하나하나 내려놓는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인생이 객관식이 아니라 주관식이라는 사실을 조용히 일깨운다. 정답이 아니라 해설이 필요한 문제. 정해진 길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방향으로 살아가는 삶. 제목의 전리품은 하나도 남지 않았지만 ‘김낙수’는 그 깨달음의 길 끝에서 비로소 ‘자기 목소리’를 찾는다.
드라마를 보며 자연스럽게 아버지 생각이 났다. 어린 시절 많은 시간을 함께 보진 못했지만, 늘 아낌없이 등을 밀어주던 아버지가 어떤 마음으로 그 오랜 시간 버텨왔는지 김낙수를 보며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늘 단단해 보였던 아버지. 어쩌면 그 강인함 뒤에는 가장 많은 두려움을 끌어안고 있었던 사람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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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_정답을 내려놓고, 나를 적기 시작하다 _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감상문_ 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