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엄마에게 병이 찾아왔다.
복직을 하고서도 엄마를 자주 만났다. 문득 어느 날부터 엄마가 약간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운전을 잘하지 못 하는 것이었다. 엄마는 워낙 조심스러운 성격이라 절대 과격한 운전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뭔지 모르게 매끄럽지 않았다. 또 아빠 말로는 가계부 정리할 때도 조금 이상하다고 했다. 가계부를 정리하러 방에 들어가서 한참을 나오질 않는다는 거다. 그래서 들어가 보면 별 것 아닌 계산을 못 하고 끙끙대고 있다고 했다.
우리 엄마는 결혼 전에 화학 선생님이었다. 전형적인 이과생 느낌인 엄마는 원래 수학과를 가고 싶었는데 혹시나 떨어질까 싶어 화학과에 진학했다고 했다. 큰 딸이긴 했지만 그 시절 누가 그렇게 딸을 열심히 공부시켰을까. 혼자 묵묵히 열심히 공부해서 대구에서 경북대학교에 들어가고 졸업 후 화학 선생님이 되었다. 우리가 어릴 때 교육에도 매우 열성적이셔서 수학은 물론 과학까지 엄마가 손수 가르쳐주셨다. 난 지금도 엄마가 오빠들에게 화학기호를 가르쳐주던 모습이 기억난다. 영어로 된 기호들을 쌍둥이 오빠들과 엄마가 소리 내서 외우던 모습을 어깨너머로 봤었다. 그랬던 우리 엄마가 단순 계산을 못 한다니. 이건 좀 이상한 일이었다.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기 어려웠다. 오빠들은 그때 가까이 살지 않았고 자주 보지 않으니 잘 못 느끼겠다고 했다. 나중에 꽤나 시간이 지난 뒤에도, 엄마가 누군가를 만날 때에는 전혀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누군가 만날 때 약간의 긴장을 하며 부족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아빠와 나는 내심 심각해졌다.
“아빠, 내가 알아보니 치매지원센터라는 게 있는데 거기서 기본 검사는 다 해준대. 일단 거기 가보자.”
“내 생각엔 어차피 검사를 하고 병원을 다니려면 제대로 된 병원에 가는 게 좋을 것 같아.”
“엄마를 어떻게 데려가지.. 치매 말만 꺼내도 완전 기분 나빠할 텐데..”
“그러게 말이다..”
고민하고 고민했다. 솔직히 계산을 조금 못 하고 운전이 매끄럽지 않은 것 빼고는 엄마는 너무나 멀쩡했다. 인터넷으로 검색도 해봤다. 보통 치매 환자들은 깜빡깜빡하고 뭘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다고 나와 있었다. 하지만 엄마는 그런 증상이 전혀 없고 어제 일도 너무나 잘 기억했다. 그냥 모든 게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은데 뭔가 예전과 다른 느낌. 검색해볼수록 치매일 경우 빨리 병원을 찾는 게 좋다고 했다.
어느 날 아빠가 엄마에게 이야기했다.
“아~ 요즘 내가 자꾸 깜박깜박하고 뭘 기억을 못 하네~ 요즘 60살 넘으면 다들 한다는데 나도 병원에 가서 검사 한번 받아봐야겠어. 같이 가보자.”
엄마는 아빠가 간다고 하니 따라가서 아빠와 같이 검사를 받았다. 당연히 아빠는 괜찮고, 엄마에게는 약간의 문제가 있다고 나타났다. 엄마만 더 다양한 검사를 받았다. 검사를 받으러 몇 번 더 병원에 가면서 엄마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평소에도 병원에 가는 것을 몹시 싫어하는 엄마였다. 큰 병원에 가는 데다 치매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오죽했을까.
결국 엄마는 ‘경도인지장애’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때 엄마는 61세, 환갑을 치른 해였다.
엄마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 데다가 병원에서 들은 말이 큰 상처가 되었다. 검사를 하는 선생님께서 가볍게 던진 말 때문이었다.
“어머니 우울증도 있으시네요”
“저는 우울증 없어요!”
“에이 있으신데요 뭘”
엄마는 집에 와서 엄청나게 분노했다. 그 의사가 알지도 못 하면서 우울증이라고 했다며 화를 냈다. 우울증 환자가 스스로 우울하다고 말하면 우울증도 아니라고 하던데, 그 사람은 꼭 그렇게 말해야 했을까? 바쁜 병원 생활에 매일 치매환자를 대하는 젊은 선생님이 그럴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나도 어린 나이에 얼마나 많은 실수를 했던가..
하지만 엄마는 50대가 이제 막 지났을 뿐이었다. 손자가 있다고 하기에도 너무 젊은 할머니라고 생각하는 나이였다. 61세의 젊은 경도인지장애 환자에게 대놓고 핀잔을 주는듯한 그 말투는 견딜 수 없는 모욕이었다. 엄마는 더 이상 그 병원에 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 일단 약을 좀 받아오고 억지로 그 병원에 조금 더 갔지만 오래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치매와 우울증은 함께 오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평소 잘하던 일들이 어느 날부터 잘 안되는데 이유도 모르겠고 얼마나 답답할까. 짜증도 나고 속상한데 주위에 얘기하기도 그렇다. 행여나 말을 해도 '에이 나도 그래, 나이 먹으니까 다 그렇더라' 하면서 넘기기 일쑤다. 엄마는 그렇게 누구에게도 마음을 터놓지 못했다. 아니, 못 했을 것이다.
치매라는 말의 무게가 있다.
다른 병과는 다르다. 우리가 어디 아프면 사람들에게 물어도 보고, 자기 병명을 오픈하며 방법을 찾지 않는가. 세상에 불치병이 많고 그들의 병을 폄하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렇지만 치매라는 병명은 사람에게 큰 두려움을 준다. 뭔가 마지막 모습을 상상하게 되지 않는가.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망령된 모습. 이름부터 바꿔야 한다. 어리석을 치, 어리석을 매라니.
어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여전히 아름다운 우리 엄마가 치매라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