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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작가 May 07. 2022

생애 첫 예방접종

고양이 육아일기

루미는 쑥쑥 잘 크고 있다.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잔다. 쉬야도 응가도 잘한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면 된다는 게 딱 이럴 때 쓰는 말일 거다. 집에 온 지 2주 정도 되었고, 태어난 지 2달반. 몸도 처음 왔을 때보다 꽤나 커졌다. 처음엔 서랍장 밑으로도 쑥쑥 들어갔었는데 오늘 아침엔 뒷다리 쪽이 걸려서 못 들어갔다. 몇 번 시도하더니 그다음엔 위로 점프! 점프도 몇 번째 만에 성공하더니 그다음 공간을 탐색한다. 잘 자라는 루미는 어제 생애 첫 예방접종을 하러 병원을 찾았다.      




지난주에 갔을 때 별 문제가 없다며 집에 조금 더 적응하고 일주일 후에 와서 주사를 맞으라고 했었다. 다시 찾은 병원에서 선생님은 루미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그러더니 조심스럽게 루미의 부정교합에 대해 말씀하셨다. 지난주에는 부정교합이어도 집에서 사는 데에는 지장이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이번엔 좀 더 진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보통 문제없이 살다가 갑자기 부정교합이 된 경우에는 탈구가 된 것으로 보고 ct를 찍어 확인한 후 다시 제자리로 턱을 맞춰주는 시술을 해준다고 했다. 하지만 전신마취를 해야 하고 이후 여러 가지 처치가 필요했다. 이 병원에서는 ct까지 찍을 수는 있지만 만약 정말 그 시술을 한다면 다른 큰 병원이나 대학병원에 가서 하는 게 좋을 거라고 하셨다.      


“동물도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하나요?”

“네 서울대병원도 있고 대학병원에도 동물병원이 있어요.”     


루미의 경우 선천적으로 그렇게 태어난 것으로 보이고, 시술을 할 필요가 없을 수도 있다고 하셨다. 위험부담이 큰 부분이라 꼭 하라고 말하기도 어렵다고 하셨다. 탈구된 부분을 맞추는 것 말고도 턱의 뼈 일부분을 살짝 잘라내는 수술을 할 수도 있는데 그런다고 완전히 괜찮아진다고 말하기도 어려울 수 있다. 이대로 살아도 괜찮을 수도 있는데 혹시나 나중에 입을 잘 못 벌리거나 잘 못 씹어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하셨다. 아마도 의사로서 알려야 하는 부분을 언급해주신 것 같다.      


“선생님 제가 예전에 악관절에 문제가 있어서 서울대병원을 오래 다녔어요. 그래서 말씀하시는 부분이 어떤 내용인지 잘 알 것 같아요. 그때도 의사 선생님이 제게 이런 말씀을 해주셨고, 수술을 해도 싹 낫는다고 말하기 어렵다며 장치를 끼고 온찜질하는 방법으로 지냈거든요. 저는 지금도 입을 크게 벌리기 어려워요.”    

 

“아이고.. 그러셨군요.. 제 생각에는 너무 어려서 시술을 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을 것 같지만 ct를 한번 찍어보는 정도는 해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너무 고착화되기 전에 한번 검사해보는 게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너무 많이 걱정하진 마세요. 집에서 살기에는 괜찮습니다.”     


츄르를 찹찹 먹으며 예방접종을 마친 루미를 데리고 병원을 나섰다. 아버님 말씀대로 선천적인 기형이 맞긴 맞나 보다. 루미는 태어난 지 한 달 됐을 때도 입이 살짝 비뚤어져 있었다. 선천적일 수도 있고 혹은 태어나면서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다. 잘 알 수는 없지만 특별한 사고로 인한 건 아닌 것 같다.     


내가 악관절로 고생을 많이 했고, 여전히 때로 아플 때가 있다. 근육의 문제도 있는 것 같아 온찜질을 해주면 한결 나아지기도 한다. 이야기를 듣고 나오는 길에 왠지 내 턱관절도 아파오는 것 같았다. 수술로 되는 게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마음이 무거웠다. 남편한테 전화를 해서 이야기했더니 남편이 말했다.     


“무슨 그렇게까지 큰 시술을 해.. 그냥 생긴 대로 살면 되지. 지금 잘 먹고 잘 지내잖아.”     


형님도 말씀하셨다.     


“이렇게 어린애를 전신 마취하고 시술하는 건 너무 위험한 것 같아. 조금 더 지켜보자.”     


ct를 한번 찍어보는 건 괜찮을 것 같은데 시술을 하다가 골절이 생길 수도 있다고 했다. 시술을 하고 나면 2주간 입을 다물게 해주는 장치를 끼고 목에 음식을 넣어주는 관도 삽입해야 한다고 했다. 잘 살다가 탈구된 아이에게는 어쩔 수 없는 시술일 수 있겠지만 이렇게 태어난 아이에게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내가 낳은 자식도 아닌데 나의 이런 면을 닮은 것 같아 씁쓸하다. 한편으로는 그래도 내가 이만큼 아는 부분이라 조금은 의연할 수 있지 않나 싶기도 했다. 하나님께서는 감당할 수 있는 시련만 주신다고 들었는데 정말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병원에 다녀와서 루미는 늘어지게 잠을 잤다. 자다 깨서 걷는데 다리를 절뚝거린다. 앉아있는데도 주사 맞은 다리를 살짝 들고 있었다. 밥을 줘도 먹지도 않고 다리가 아픈 것 같아 안아 들면서 살짝만 만져도 잘 울지 않는 애가 야옹거렸다. 딸이 루미 옆에서 속삭이며 말했다.     


“루미야~ 주사 맞은 데가 아프지? 언니도 알아. 언니도 주사 맞으면 며칠 동안 아프고 그랬어. 내일이면 괜찮아질 거야.”     


밥도 안 먹고 잘 걷지도 못하는 루미가 안쓰러웠다. 안쓰러워하는 나를 보고 남편은 또 말했다.     


“예방접종 맞은 거 보고도 이렇게 안쓰러워하면서 그런 시술을 어떻게 하겠어. 괜찮을 거야.”     


우리는 루미를 집에 데려오고 내내 안방을 열어주지 않았다. 이불에 털이 붙는 것도 싫고 침대 밑 청소를 못 해서 먼지 투성이인 것도 있다. 한편으론 너무 우리랑 같이 자 버릇하면 때로 우리가 없을 때 어떡하나 싶었다. 원래 혼자서도 잘 생활하는 고양이의 습성대로 살게 해주고 싶었다. 게다가 나는 아이들과 오랜 시간 잠을 같이 자면서 잠귀가 밝아져 이젠 같이 자면 깊은 잠을 못 자서 괴롭다. 혼자 자야 잠을 푹 자는데 루미랑 같이 자면 이 작고 약한 아이를 다치게 할까 봐 쪽잠을 잘 텐데 그건 정말 원치 않았다.     


그런데 밥도 잘 못 먹고 다리를 절뚝이는 루미를 보고선 마음이 불편해졌다. 아이들 방에서 같이 자보자고 했다. 아이들과 급히 장난감을 치우고 침대 밑, 바닥 구석구석을 닦았다. 적당히 닦고 나서 루미를 방에 데리고 왔다. 처음 보는 방에서 루미는 열심히 냄새를 맡고 다녔다. 큰 아이가 루미와 함께 자고 싶다며 바닥 매트에 누웠다. 깜깜해진 방에서 루미가 돌아다니는데 잘 안 보였다.      


“루미야~ 오빠랑 같이 자자~ 엄마, 나 루미랑 같이 자고 싶어~!”

“루미가 돌아다니다 자겠지. 그냥 자자.”     


잠시 후에 내 머리 위쪽으로 인형이 툭 떨어졌다. 응? 뭐지? 루미가 여기 올라왔나? 싶었지만 보이지 않았다. 에이 모르겠다 하고 돌아누웠는데 조금 있다 등 쪽에 따뜻하고 꼬물한 느낌이 났다. 돌아보니 루미가 몸을 말고 내 등에 몸을 붙인 채 누워있었다.      


“루미 엄마한테 왔구나. 그래 같이 자자.”     


아이의 작은 침대에는 양쪽에 인형이 가득해서 안 그래도 좁은데 루미까지 오니 정말 좁았다. 그래도 루미와 이불을 나눠덮고 함께 잤다. 나는 중간중간 깨기도 하고 자세를 옮기며 자느라 깊이 잠을 못 잤지만 루미는 참 잘 잤다. 새벽 5시가 넘어 움직임이 느껴져 눈을 떴더니 루미가 앉아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쳐다보고 있었다. 모른 척 눈을 감고 더 잤다. 6시가 조금 넘어서야 얘가 배가 고프지 않을까 싶어 밥 먹으러 가라고 문 앞에 놓아줬는데, 다시 따라 들어온다. 부시럭대는 소리에 아이도 잠이 깨버렸다.      




따뜻한 온기에 루미도 잘 잔 듯 오늘은 밥도 잘 먹고 다리도 덜 아픈 것 같다. 오늘 밤 또 어떻게 잘지 잘 모르겠지만 우린 이렇게 가족이 되어 가나보다. 우리 서로에게 좋은 방법을 찾아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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