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양이를 키우기 전 가장 큰 걱정은 정리와 청소를 잘 못 하는 것이었다. 동물을 처음 키워보는 내게는 걱정을 넘어 약간은 공포심에 가까운 감정이 생겨났었다. 평생 정리를 잘 못 하는데다 맥시멀리스트로 살던 나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짐이 점점 더 늘어났다. 게다가 사촌언니가 아이들이 입던 옷과 장난감을 많이 줘서 나는 큰 돈 안 들이고도 많은 걸 얻었지만 큰 옷과 장난감을 이고지고 살게 되었다. 정리가 안 되는 집에 사는 건 숨이 턱턱 막히는 일이었다. 잘 해보려고 노력도 해봤지만 내 생각대로 안 되면서 난 늘 죄책감이 시달렸다. 해야 할 업무를 처리하지 못한 무능력한 인간이 된 기분이었다.
막상 고양이를 데려오고 나니 고양이가 가는 곳마다 조금씩 치우게 되면서 생각보다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루미를 데려올 때 고양이 키우는 분이 내게 말씀하셨다.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자연스럽게 치우게 될 거예요. 생활이 완전 바뀌니까요.”
아이를 낳고 내 생활이 완전히 바뀐 것처럼 고양이를 키우면서도 조금씩 생활이 바뀌었다. 안 가던 곳에 들어가면 거기를 닦고, 조금 더 올라가면 치우는 일들을 자연스럽게 되었다. 걱정과 불안은 안도감으로 바뀌었고 편안한 일상을 누렸다.
아이들이 놀아주기도 했지만 아이들은 아이들인지라, 자기들이 놀고 싶을 때 놀아주지 루미가 원할 때 늘 놀아주진 않았다. 내가 놀아주는 것도 한계가 있었는데 어느 날 살펴보니 루미는 혼자서도 참 잘 놀았다. 어느 날은 아이들 너프건의 총알(스티로폼과 고무로 이루어진 말랑하고 가벼운 재질이다)을 가지고 한참을 놀았다. 어느 날은 내가 치우지 못 하고 남겨둔 비닐봉지와 씨름을 하고 있었다. 또 책들이 쌓여있는 공간 앞뒤로 오르내리며 놀았다. 인형 꼬리를 잡고 놀기도 하고, 인형 엉덩이 쪽에 붙어있는 텍과 싸움을 하기도 했다. 소파 뒤에 있는 책장 속에 들어갔다 나오고, 마음에 드는 장난감을 놔두면 물고 들어가서 넣어두기도 했다.
문득 깨달았다. 정리를 못 하는 우리집은 루미에겐 놀이공원 같은 곳이다. 우리집은 물려받은 장난감이 많아서 아이 친구들에게도 꽤나 인기가 많은 집이었다. 사촌언니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사모은 각종 장난감 총, 칼, 모자, 방패에.. 레고, 다양한 교구와 인형들. 아이들이 어릴 땐 놀러오면 일단 총과 칼부터 꺼내들고 놀이를 하곤 했다. 이제 아이들이 크면서 그다지 놀지 않았던 장난감을 루미가 잘 가지고 놀고 있다.
놀이방에 들어가면 많은 인형 중에 움직이는 작은 고양이 인형이 있다.
그게 바로 루미다!!! 어찌나 귀여운지.
형님네 고양이 피노는 음료를 먹고 나오는 작은 뚜껑을 아주 좋아했다. 톡톡 치면서 그렇게 즐거워할 수가 없었는데 루미에게 줬더니 역시나 좋아했다. 인형과 장난감 등으로 막고 경기장을 만들어줬다. 어제 저녁 루미는 작은 경기장 안에서 뚜껑을 격렬하게 치면서 신나게 놀았다. 우리집에 그렇게 많은 인형과 장난감이 없었다면 작은 경기장을 그렇게 손쉽게 만들어줄 수 있었을까? 이젠 슬슬 맥시멀리스트의 삶을 정리하고 싶지만 이미 가진 물건은 새로 사지 않고 최대한 잘 쓰는 것이 나의 목표이다.
내가 생각했던 단점은 단점이 아닌 정도가 아니라 큰 장점이 되었다. 걱정거리가 아니라 축복이었다. 인간이 얼마나 작고 하찮은 존재인지 모른다. 당장 내 눈앞에 있는 현실도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잘 분간하지 못 한다. 우리는 미래를 걱정하지만 그것이 미래에 문제가 될지도 알 수 없으며 진짜 우리에게 오지 않을 수도 있다. 나는 무엇을 그렇게도 걱정하는가. 나는 무엇 때문에 그토록 다가오지 않을 미래를 두려워하는 걸까.
내가 모든 것을 예측하고 통제하려는 것은 종종 나를 매우 힘들게 한다. 대비하고 준비하는 것이 필요는 하겠지만 완벽주의 성향의 나는 자주 지나치게 통제하려 애쓴다. 내가 알 수 없는 미래는 내게 두려움 그 자체였던 것 같다. 어차피 알 수가 없다. 내가 아무리 알고 싶어도 절대 알 수 없는 것이 아직 내게 오지 않은 시간이다. 그러니 너무 두려워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