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했으나 출발은 못하고
트루먼 이야기
배는 엄청난 파도에 휩쓸리고 있었어. 폭풍처럼 쏟아지는 비와 번개 그리고 파도 속에서 겁을 잔뜩 먹은 그 사람은 하늘을 향해 외치지. "나를 막을 생각이면 차라리 나를 죽여라!"
파도가 잠잠해지고 해가 뜨자 설레는 표정으로 다시 해항 하지만, 이내 배는 벽에 부딪히고 말아.
그가 갇혀있던 곳의 끝. 가보지 못한 세상의 시작.
마침내 계단을 올라서고 저 너머로 가는 문 앞에 서서 유쾌하게 인사하는 그의 모습을 우리는 기억해.
두려움보다는 호기심으로 반짝이던 그의 눈, 망설임보다 설렘이 느껴지는 그의 등, 분노를 넘어선 담담하고 당당했던 그의 발걸음을 말이야.
"In case I don't see ya, Good afternoon, good evening and good night."
<트루먼쇼>는 잘 알려진 좋은 영화이지만 내게는 조금 특별한 영화이기도 하다.
다시 태어난 것처럼 모든 걸 리셋하고 싶었던 스무 살 그때, 유학이라는 핑계로 종로 어느 어학원의 영어 기초반을 오가며 틈틈이 들었던 테이프가 바로 트루먼쇼였다. 학원 복도를 도서관 삼아 자리 잡고 듣고 또 들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비 오는 날 종로 골목의 꿉꿉한 냄새가 떠오른다. 요리사, 아르바이트생, 대학생, 재수생, 각종 업계의 사람들이 내쉬는 한 치 앞도 모를 담배 냄새와 한숨들이 땅과 공기, 보도블록 사이사이에 도시의 세월만큼 겹겹이 배어서 영원히 머무를 것만 같았다. 그 시간 종로의 골목은 어딘가 축축했는데, 마치 화려한 밤의 시간을 준비하는 어색한 백야 같았다.
트루먼이 저 문을 넘어 현실로 들어오면 이런 축축한 골목을 헤맬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좀 쓸쓸해지곤 했다.
두 번째 스무 살
20년이 지나고 나는 "두 번째 스무 살"을 맞이한다. 나는 열심히 걸어왔으나 결국 20년 전 그때처럼 다시 방향을 잡아야 하는 시점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트루먼의 문은 사실 마지막이 아니었고, 마흔쯤엔 엄청난 어른이 되어있을 것 같던 우리의 청춘은 늘 배신당하고 만다. 스무 살 그때보다는 덜 불안하고 덜 막막한 대신, 딱 20년 그 세월만큼 두려움은 커졌다.
용기와 책임이 두 배는 필요한 두 번째 스무 살. 인생의 전부였고 재밌고 또 즐거웠던(정말이다), 그래서 많은 것을 갈아 넣었던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나는 백수가 되었다.
내 역할 안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고, 훌륭한 동료들과 함께 성정하며 즐겁게 일해왔다. 덕분에 내 능력 이상의 과정과 결과도 보상처럼 받아왔다.
미련도 후회도 없었지만, 막상 일을 떠나고 나니 알 수 없는 애정과 애증, 공허와 분노, 불안과 안도 사이를 핑퐁 거리는 감정의 찌꺼기들이 나를 괴롭혔다.
떠나고 싶었고, 많이 걷고 싶었다.
편안한 호캉스나 힐링 같은 거 말고 내 두 다리가, 내 몸이 고통스럽도록 걷고 또 걷는 그런 여행을 하고 싶었다. 그렇게 산티아고 순례길을 소망하기 시작했다.
산티아고 순례길, 까미노(Camino)라 불리는 이 길에 대한 이야기는 다녀온 사람들 각자의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지는 만큼 꽤 방대하고 다양했다. 챙겨야 할 것도, 알아둘 것도 많았지만 나에게 맞는 방식을 찾아가며 정보를 수집하는 재미가 있었고, 그 많은 정보 속에서 좌충우돌하다 보면 나를 괴롭히던 감정들을 잊을 수 있었다.
작은 목표가 생겼으며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이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순례길에 집중하는 순간에는 내가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모든 것의 근원인 '나' 로 부터의 해방.
나를 찾아 떠나는 뭐 그런 여행이 아닌 나로부터 해방되길 원했고 그런 여행을 하고 싶었다.
저 멀리 문을 열고 나가는 트루먼의 뒷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
시작은 했으나 출발은 못 하고
2020년 3월, 호기롭게 준비한 나의 첫 번째 순례길은 호기롭고 평탄하게 시작될 줄 알았지만, 실상은 엄청난 걱정 근심을 안고 한국을 출국하게 되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바로 그 COVID-19 때문이다.
출국하는 날이 다가올수록 한국의 감염자 수가 폭증하고 있었고, 수치가 절정일 때 출국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프랑스 파리에 도착하자 유럽도 갑자기 확산세로 들어가면서 전 세계 팬데믹이 선언되었다.
불안한 도시를 떠나 불안한 도시에서 불안한 마음으로 여행한다는 것은 쉽지는 않았다. 그래도 스페인으로 넘어가 순례길을 시작하면 괜찮아질 거라고 위안하며 나름 알차고 즐거운 시간을 프랑스에서 보냈다.
까미노 중에 가장 대중적인 루트인 프랑스 길은 프랑스의 작은 마을 생장(Saint-Jean Pied de Port)에서 시작한다. 파리에서 출발한다면 생장을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 가는 도시가 바욘(Byonne)이다.
일주일의 프랑스 여행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순례길을 시작하러 바욘으로 가기 전날, 파리 몽파르나스 역 근처에서 마지막 1박을 남겨두고 있었던 그날, 소식이 들려왔다. COVID-19로 인해 파리와 스페인 모두 국경을 폐쇄하고 순차적 셧다운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파리의 여행자들, 까미노를 걷고 있던 순례자만이 아니라 현지의 유학생들조차 귀국하기 위해 항공편을 찾기 시작했다. 나는 결국 그렇게 짧은 대혼돈의 시간을 거쳐 이틀 후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어쩌면 순례길에서 만나 순례자 친구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오픈 채팅방 친구들. 우리는 무척 당황스러웠지만 빠르게 현실을 받아들였고 각자의 결정을 존중했다. 파리에서 아쉬운 마음을 나누며 첫 만남이자 저녁 식사를 함께했다.
"다들 잘 있나요? 이후 순례길은 다시 찾았나요?"
이제는 작은 모험담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한 도시가 조금씩 폐쇄되는 과정들, 도시를 떠나려는 사람들로 가득 찬 공항 가는 길, 생각보다 차분했던 공항, 빈자리 없는 비행기, 그 속에 아무 말도 없고 아무것도 먹지 않는 사람들이 시체처럼 앉아있던 장면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런데 시작은 했으나 출발은 못 한 나의 첫 번째 순례길이 이상하게도 속상하거나 허무하지는 않았다.
내 의지가 아닌 불가항력인 이유로 가지 못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때 잠시나마 아주 낯선 장면들을 목격하면서 이미 우리가 어떤 새로운 상황에 처하게 되리란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일까.
그렇게 2년이 흘렀다.
그동안 제주도 올레길을 완주했고, 어쩌다가 예전 직장에 재입사와 퇴사를 반복하기도 했다.
이번 퇴사 후에는 더 이상 어려운 감정들이 핑퐁하지는 않았다. 일이란 것은 그대로 일 테니 아마도 내가 변심한 것이겠지. 한번 헤어졌다 만난 애인은 다시 헤어지기 쉬운 것처럼 내 마음의 일렁이던 파도가 이미 다 빠져나가고 거품만이 자리 잡은 뒤였다.
나는 때때로 작업을 하고 소소한 여행을 다니며 잘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불현듯, TV를 보다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