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숙명인 것처럼

Puente La Reina - Estella

by OHz 오즈

푸엔테 라 레이나 - 에스테야

최악의 컨디션

혼자서 긴 밤을 보냈다. 자다가 깬 것이 한 시쯤이었나.

거의 방에서 뛰쳐나가기 직전까지 갈 정도로 덥고 답답함이 느껴졌었다. 옷이라도 홀랑 벗고 싶었지만 다인실 숙소라 체면상 그러지도 못하고 혼자서 괴로움을 견디다가 간신히 다시 잠이 들었다.

아침에(6시) 일어나 거울을 보는데 얼굴과 손, 발이 모두 퉁퉁 부었다. 무릎도 갈수록 아프고 발의 통증도 여전하다. 최악의 컨디션이구나.


메그와 한국인 J는 벌써 준비가 끝난 듯 보였다. 어차피 속도를 맞춰 함께 걸을 수는 없을 것 같아서 먼저 출발해도 된다고 말해주었다. 그래도 동행이 먼저 떠나면 마음이 급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무릎 보호대를 한 부위와 양말 발목 부분에 접촉성 피부염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부위도 넓어지고 있고 가려움까지 동반되었다. 하지만 보호대를 안 하기엔 무릎이 최악의 상황인데.. 휴.. 일단 오늘 하루만 더 해보자. 조금 느슨히 보호대 착용을 하고 부은 발을 등산화에 끼워 넣는다.


천근만근 한 몸을 일으켜 배낭을 메고 스틱을 잡는다.

피곤한 기색의 순례자들로 가득한 이른 아침 알베르게는 엄숙함마저 느껴진다.

그래도 모두 숙명인 것처럼 길을 나선다.


머물렀던 푸엔테 라 레이나 마을에는 여왕의 다리라는 아주 유명한 다리가 있다. 무척 아름다워서 순례자들이 가장 사진을 많이 찍는 곳 중 하나라고 한다. 어제 메그는 산책 중에 다녀왔다고 했는데 나는 어차피 지나갈 길이라고 가지 않았었다. 그 다리를 건너는데 컴컴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사실 무서워서 앞에 가는 순례자를 따라잡느라고 뭐를 볼 상태도 아니었긴 했다. 유명한 곳들 다 보고 예쁜 사진 찍고 하면 좋겠지만 뭐.. 내가 그럴 체력이 안 되니 어쩌겠나. 가볍게 포기가 되었다.


날이 조금씩 밝아오려 한다. 이렇게 매일 해가 뜨는 걸 보게 될까? 돌아보니 그제야 걸어온 길이 보인다. 제법 광활해서 한낮이면 꽤 더웠을 길이었구나. 선선한 시간에 걸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오늘 하늘이 참 이쁘다. 꼭 '이상한 나라의 솜사탕' 같아. 자꾸 아이스크림 생각나게 하는 포근하고 달달한 하늘이라니. 막상 걷기 시작하니 나빴던 컨디션이 조금 회복되는 듯하다.





많은 순례자가 이미 나를 지나쳐 갔지만 저기 한 명 아까부터 나와 비슷한 속도로 걷는 순례자가 있다. 덕분에 한적한 길도 안심하고 걸을 수 있다. 그녀도 그랬으면 좋겠다.

저 멀리 한눈에도 보이던 작은 마을이 점점 내게로 다가온다. 그곳을 향해 갈 때도 그녀는 늘 내 앞에서 걷고 있었다.


마을의 작은 바에는 마치 나를 스쳐 간 순례자들이 다 모여있는 것처럼 북적였다. 잠시 콜라 충전만 할 요량으로 콜라만 사서 나와 돌담 위에 걸터앉았다. 혹시 메그가 있을까 두리번거렸지만 보이지 않는다.


지나가던 유럽 할머니가 꼬레아?라고 말을 건다.

"씨씨(SíSí)" 네 맞아요.

"콤피드 필요한 한국 여자가 있었는데 혹시 친구야?"


나는 스페인어를 전혀 모르지만 '콤피드'와 '꼬레아' '아미가'와 같은 몇 가지 단어 그리고 그녀의 손짓으로 짐작해 보았다. 한국 언니 JM을 말하는 것인가?! 어제 재회한 JM이 오는 동안 물집이 잡혀서 주변 사람들이 많이 걱정해 주었다고 했었다.


아마도 할머니는 JM에게 줄 콤피드가 생겼던 것 같다.

"어제 알베르게에서 만났어요. 아마 잘 오고 있을 거예요."

나보다도 더 그녀를 걱정해 주는 할머니가 고마웠다.

그러고 보니 언니 오늘 잘 출발했을까? 무리하지 않아야 할 텐데..





될 대로 되라지. 케세라세라(Que sera sera)


고속도로를 건너고 포도밭 사이를 걷는다. 중세의 다리도 지나고 순례자들을 위해 누군가 준비해 놓은 기부제 간식 테이블도 지난다. 어느새 나온 좁은 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니 두 번째 마을이다.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바가 있다는 걸 알리는 입간판이 순례자들을 반긴다.

어? 그런데 거기에 한글이! '아이스커피', '맛집' 이런 한글이 보이니 반갑다.


이전 마을에서 쉬었으니 이번 마을은 지나쳐 가려고 했는데 뒤에서 한국말이 들린다.

"안녕하세요?"


가던 발걸음도 돌리게 만드는 한국말. 마법에 걸린 것처럼 나도 모르게 그곳으로 발길이 향한다.

"와, 한국 분이세요? 반갑다!."

"뭐 드릴까요? 아이스커피도 돼요."

짧은 단발머리에 꾸밈없는 얼굴의 한국 여자 사장님이 활짝 웃으며 맞이해 준다. 그 미소 앞에서는 누구나 다 마음이 편해질 것만 같다.


바 안에는 오늘만 벌써 여러 번 마주친 순례자가 혼자 커피를 마시고 있다. 이름도 모르는 우리는 처음으로 마주 앉았다. 금발 머리에 중년 남성의 이 사람은 오스트리아에서 온 에릭. 오스트리아 빈과 린츠를 여행했을 때가 생각나서 그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먼저 와있었기에 먼저 떠났다. 혼자 남아 또르띠아를 먹는 나에게 한국 사장님이 잠시 말동무가 되어주셨다. 꽤 무거워 보이는 내 배낭을 보시더니

"어휴 배낭 무겁겠다. 요즘에는 젊은 분들이 오히려 동키로 배낭을 많이 보내더라고요."

그러면서 내 나이를 가늠해 보려는 듯 잠시 얼굴을 쳐다보신다. 후후. 나는 얼핏 보면 내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경향이 있지만 자세히 보면 또 내 나이처럼 보이는 헷갈리는 스타일이다. 에헴.


사장님은 여기서 매일 순례자들을 보면서 조금씩 달라지는 세상을 그 누구보다 예민하고 기민하게 알아채실 테지. 때로는 무언가가 아쉽고 또 때로는 무엇이 반갑게 느껴질 테지만 언제나 변화를 받아들이며 순례자들을 맞이하고 계시리라.


"동키"는 까미노에서 차로 순례자들의 배낭을 미리 다음 숙소로 보내 주는 서비스를 말한다. 현지어로 Transporte de Mochila(트랜스포르테 데 모질라)라고 하고 동키는 한국 사람들끼리만 통하는 용어다. 근데 누가 이름 지었는지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동키 서비스. 오래전부터 인간의 옆에서 짐을 함께 날라준 당나귀의 이미지가 떠올라 친숙하고 좋다.


동키 서비스를 사용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각자의 선택이고 사정일 뿐이라 그런 것에 큰 의미나 관심을 두지 않는다. 나는 성격상 배낭과 떨어지는 게 불안했다. 매번 가방을 분리해 싸고 매일 서비스 예약을 하는 것도 너무 번거로워 보였다. 중간에 분실되거나 다른 곳으로 보내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하니 굳이 애용하고 싶지도 않았다. 언젠가 사용해야만 할 때가 오면 그때 생각해도 된다. 그때까지 별일 없다면 배낭은 굳이 메고 가자는 고집스러움이 좀 작동하기도 했다.


떠나오면서 스스로 '요거 단 하나만 지키자' 하고 다짐했던 것이 있다.

배낭과 함께 산티아고까지 걸어간다. 다른 건 다 될 대로 되라지. 케세라세라(Que sera sera).

복잡스럽게 살았던 내가 단순히 이것 하나만 지키자고 생각하니 오히려 단순, 명확해지고 마음이 편해졌다.


내 몸에 딱 맞는 감당할 수 있는 무게의 배낭도, 돌덩이 속에서도 발목을 무사히 지켜주는 투박한 내 등산화도, 두 다리가 되어주는 스틱도 모두 고맙고 애틋하다.




마을의 알베르게는 까미노 길에서 조금 벗어나 있다. 지도를 보며 찾아가는데 골목에서 할머니가 앤파스? 앵파스? 하신다. 씨씨(네네) 제가 가는 알베르게가 앵파스 맞아요!

어 그랴 이 짝으로 올라가셔이~

한국이라면 아마 이런 사투리를 쓰시지 않았을까.


체크인을 기다리는 내 지친 등을 누가 툭툭하고 친다. 메그인가? 돌아보니 이번엔 또 다른 스페인 할머니가 시원한 물을 들고 서 있다.

올라! 아구아 씨씨. 무초 그라시아스.


한국을 떠나온 지 일주일. 팬데믹 이후 다시 까미노가 열린 지 얼마 안 되었다. 아직 민감하고 조심해야 하지만 내가 만난 까미노 위의 현지 사람들은 담담하고 의젓했다. 비어있던 바와 알베르게를 다시 일으키고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노력이 반가웠다. 무엇보다 순례자들에게 베푸는 친절만큼은 잊지 않아 줘서 고마웠다.




순례자의 하루

유난히 힘들게 시작했던 오늘도 무사히 숙소까지 도착했다. 그렇다고 바로 앉아서 쉴 수는 없다. 순례자들의 일과는 보통 걷고 난 후 숙소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는 1시~2시 정도에 알베르게에 도착하면 체크인 후 바로 퀵 샤워를 한다.

샤워를 끝내면 바로 손빨래하고 널어놓아야 한다. 평소의 햇살이라면 해가 지기 전에 대부분 마르니, 자기 전에 배낭을 싸둘 수 있다. 세탁기 돌리는 비용은 세탁과 건조 각각 2~5유로 사이인데 가끔 다른 순례자들과 함께 돌리기도 한다.


빨래를 널어놓고 나서야 그제야 편히 앉아 콜라를 따고 다리를 주무른다. 그러고 있으면 메그가 까미노 지도와 핸드폰을 들고 옆으로 온다. 우리는 함께 내일 가야 할 도시와 알베르게를 상의하고 예약한다.

메그와 나는 둘 다 이런 일과를 해치워야 속 편히 쉴 수 있는 성향인 듯하다. 잘 맞아서 다행이다.


이후 일과는 시에스타 타임이나 마트 오픈 시간 여부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다. 점심도 그날 컨디션에 따라 건너뛸 때도 있고 간단히 해결하기도 한다.


요 며칠 도통 입맛이 없었다. 화장실도 가지 못한 지 며칠 되었다. 전처럼 먹지 못하고 잠도 잘 못 잔다. 먹고 자고 싸는 기본적 환경이 달라진 만큼 이에 적응하며 살아남으려고 몸이 정말 많이 애쓰고 있었다. 누군가 까미노에서 입맛은 거짓말처럼 돌아온다고 하던데. 이제 좀 맥주도 들어가고 음식도 안 남기고 화장실도 잘 가면 좋겠다.


다리가 부러져도 마트 구경은 재미지다. 살 것도 아니면서 괜히 기웃거리게 되는 코너들이 꼭 있다. 저녁으로 먹을 과일과 냉동 피자, 내일을 위한 물과 달달한 간식을 샀다. 알베르게가 좀 떨어져 있다는 핑계로 마을 구경을 장 보는 것으로 대신한다.


저녁이 되자 안 보이던 순례자들이 자리를 잡고 눕는다. 오늘 알베르게는 강당 같은 큰 공간 하나에 2층 침대들이 줄지어 있는 구조다. 2층 자리가 많이 빈 걸 보니 침대 절반 정도 순례자가 온 것 같다.


내 옆 침대에는 어제 같은 방에서 앞 침대를 썼던 폴란드 부녀가 자리해서 내심 반가웠다. 처음엔 청소년과 청소년 지도자인가 싶을 정도로 둘이 조용히 순례길을 걷고 조용한 일상을 보낸다. 누구나 그 속 사정은 모를 일이나, 평화롭고 강단 있어 보이는 그들에게서 내공이 느껴졌다. 조용하고 점잖은 10대와 반듯하고 젠틀한 아빠라니. 보기만 해도 그 차분함이 전달되는 매력 있고 성숙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 목적지는 애초 생각했던 곳보다 좀 더 멀리 떨어진 곳으로 변경했다. 이틀 후 대도시 로그로뇨에 도착하는데 내일 더 걷고 모레 덜 걸어서 일찍 로그로뇨에 도착하고 싶다는 J의 의견이 일리가 있었다.


그리하여 내일은 처음으로 30km 가까이 걸어야 한다.


어제 모자랐던 잠을 오늘은 잘 수 있을까?

순례길 5일 차 아직 내공이 부족해 깊게 잠들지 못했던 지난밤들.

뭐, 잠이 부족하니 가끔 걸으면서 잘 수 있는 내공이 생기기는 했다.






Bonus!

Albergue : ALBERGUE ANF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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