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우리는 작은 원이 되어

Pamplona - Puente La Reina

by OHz 오즈

팜플로나 - 푸엔테 라 레이나


끝이 있다는 희망


하루만 머물기엔 아쉬운 팜플로나를 뒤로하고 또다시 길을 나선다.

어두운 새벽 알베르게 앞에는 벌써 떠나는 순례자들로 가득하다. 오늘같이 주변에 순례자들이 많으면 길 잃을 걱정은 없을 것 같았다.

제법 큰 공원을 따라 한참을 걷는데, 반대편에서 조깅하던 스페인 사람이 다가와 뭐라고 말을 건다. 까미노? 어쩌고 하는데 눈빛과 손짓이 느낌이 안 좋다.


까미노는 이쪽이 아니야. 돌아가야 해.


이야기를 하며 걷느라 어느 순간부터 화살표를 놓친 것이다. 서둘러 지도를 확인하고 돌아서는데, 아이코야, 우리를 무심코 뒤따르던 순례자들이 뒤에 줄줄이 소시지구나. 머쓱해진 우리들. 하하하.

그냥 지나치지 않고 길을 알려준 멋진 스페인 언니에게 큰 소리로 외친다.

무초 그라시아스!


까미노는 노란 화살표를 이정표로 걸어가는 길이다. 한참 걷다가 이 화살표가 보이면 안심이 된다. 아직 잘 가고 있구나 하고. 저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걷다 보면 언젠가 그 끝을 만나게 되겠지. 그것이 무엇일지 모른 채 단순한 믿음 하나로 걸어간다.


가보자는 마음 그리고

언젠가 끝이 있을 거라는 믿음은

순례자들에게 유일한 희망이다.


까미노 위의 수많은 화살표들


날이 밝자 동행을 시작한 메그와도 속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를 보내주고 다시 나의 속도로 천천히 걷는다. 무릎이 심상치 않다. 이틀 연속 마의 내리막길을 내달렸고, 어제 아침 오버페이스에 저녁엔 샌들을 신고 식당 찾아 삼만리 했으니 다리가 온전하면 이상한 일이지. 그나마 스틱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두 손과 스틱이 또 다른 다리가 되어 실은 두발이 아니라 네발로 걷고 있는 셈이다.


크고 오래된 성당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서툰 기도를 하고 쎄요를 찍고 나오는데 반가운 목소리가 내 이름을 부른다.

"오짱~!"

먼저 도착해 쉬고 있는 메그가 어서 오라고 활짝 웃는다. 저기 조그만 가게들이 보이고 그 앞으로 순례자들이 털썩 바닥에 앉아 쉬고 있다. 여기구나 오늘 쉬어갈 곳은.


가게에서 시원한 콜라와 바나나 하나를 샀다. 9월 초 까미노는 여름처럼 몹시 더웠다. 시원한 물이나 아이스커피를 마실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그게 여기선 쉽지 않다. 그래서 시원하게 마시는 게 국룰, 아니 세계룰인 콜라를 더욱 찾게 된다.


빈속이라 바나나도 먹으려고 하는데 어랏? 껍질이 딱딱해서 안 벗겨진다. 이거 안 익어도 너무 안 익은 거 아닐까?

옆에 앉은 마리오에게 보여주니 깔깔대며 웃는다.


"너 이거 산티아고에 가서 먹을 거지? (웃음) 가서 바꿔 달라고 해. 내가 말해줄까?"


흡.. 그러나 나는 바꿔달라 깎아달라 그런 말 못 하는 부끄럼쟁이다.

"괜찮아 다음에 먹지 뭐."


그런 나를 안쓰럽게 보더니 바나나를 들고 쓱 일어나 가게로 간다. 나는 쫓아가며 괜찮다고 외쳤지만 소용이 없다. 주인에게 사정을 말하고 다른 바나나를 골라주는 마리오. 그의 듬직한 등에 후광이 느껴졌다.

고마웠다. 말이 없는 편이고 문신을 잔뜩 해서 상남자 같지만 수줍고 깊은 사람이다.





저 멀리 풍력발전기가 보인다. 저기로 올라가는 것일까 하며 걷는데 언덕 정도로 생각했던 오르막길이 끝날 줄 모른다. 어제 미처 길을 체크 못 했더니 조금 당황스럽다. 올라갈수록 경사는 점점 더해지고 주변 사람들의 숨도 같이 가빠진다.

힘들어 보였는지 앞에 걷던 마리오와 Y가 힘을 내라며 은근히 이끌어 준다. 한국 단어를 조금 아는 Y가 자꾸 "파이팅"을 외친다. 덕분에 함께 파이팅을 외치며 힘든 오르막길을 웃으며 오르게 되었다.


사실 첫날 피레네산맥도 오늘도 한국 산들에 비하면 별로 높지 않고 괜찮은 편이다. 네발로 기어가야 하는 가파른 한국산보다는 비교적 완만했다. 그럼에도 까미노가 힘든 것은 아마도 배낭의 무게와 뜨거운 태양 그리고 길 위에 제멋대로 구르는 돌들이 낯설기 때문일 거다. 물론 피로가 채 풀리지 않은 다리로 그런 길을 매일매일 가야 하는 것이 가장 어려움일 테지만 말이다.


언덕에 오르니 사진에서 많이 본 철제 조형물들이 있다.

.. 설마 내가 지금 "용서의 언덕"이라 불리는 그 유명한 페르돈 언덕(Alto de Perdon)을 올랐던 것이냐? 와 나 몰랐네.


까미노를 다녀간 많은 사람이 이 용서의 언덕에 대해 말하곤 한다. 용서하고 싶고 또 용서받고 싶어서 사무치는 글도 많이 봤다.


용서의 언덕에 오르면 나는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누가 생각이 날까 궁금했었다. 혹시라도 그토록 미웠던 네가 떠오르면 어떡하지?

그런데 이 언덕이 그 언덕인 줄도 모르고 용서고 뭐고 친구들과 즐겁게 올라와 버렸다니! 뭔가 조금 억울한걸.


탁 트인 시원한 전경이 마음에 든다. 무심하게 서 있는 돌기둥 아래 태양을 피해 앉아 바람의 소리를 들어본다. 순례자들의 모습을 형상화한 조형물들은 중세 시대와 현시대 순례자들의 모습을 모두 담고 있어서 묘한 울림을 주었다. 온갖 비바람을 맞으면서도 흔들림 없이 한 곳을 향한 조형물들이 안쓰럽고 숭고하게 느껴졌다.


세종 선생님들이 언덕에 올라온다. 론센스 저녁 식사 때 옆 테이블에서 화기애애하게 외국인과 대화 나누던 한국 청년도 만났다. 통성명은 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제법 눈에 익는 순례자들이 많아졌다.


까미노 4일째, 볕에 그을리고 전보단 움푹 들어간 볼 위로 까만 눈들이 반짝인다.




언덕을 내려오니 해가 중천에 떠 있다.

까미노 프랑스길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향하기 때문에 아침에는 해를 등지고 걷는다. 그러다가 점심부터 해가 앞으로 오게 되면 덥고 뜨거워서 체감 3배 이상은 걷기 힘들어진다. 그래서 되도록 해가 뜨지 않은 어두운 아침에 출발해 점심쯤 도착하려고 하는 것이다.


오늘은 벌써 해가 중천이니 조금 힘든 날이 되겠구나. 그늘 한 점 없는 길을 걷자니 어느새 땅만 보며 걸어간다. 이 길의 끝이 정말 오긴 올까.


건물과 거리가 깨끗하고 잘 갖춰진 마을에 들어선다. 우테르가(Uterga)라는 마을이다. 땡볕을 걷다가 건물들 사이로 들어선 그늘을 걸으니 살 것 같다. 이곳에서부터 푸엔테 라 레이나 까지 마을이 두어 개 더 있다. 멈추고 싶은 순례자들은 이만 멈추고 알베르게를 찾아 들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묵묵히 걷다가 오바노스(Obanos)에 들어서고 나서야 잠시 쉴 곳을 찾기 시작한다. 마을 중심지로 보이는 광장에는 마치 중세 시대부터 있었을 것 같은 건축물들이 있었다. 아니 이곳은 순례자들을 위한 세트장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유적지스러운 데다가 어쩜 마을 사람이 한 명도 안 보이지? 하긴 이렇게 뜨거우니 아마도 시에스타 시간을 보내겠구나. 스페인의 시에스타가 왜 있는지 이제는 이해가 된다.


그늘을 찾아들어가 드디어 배낭을 내려놓는다.

셀카를 찍는데 엄마야 깜짝이야 얼굴이 보통 엉망진창이 아니다. 빨갛게 익은 얼굴에 콧물 자국인지 뭔지 코끝은 허옇고 입술은 검다. 곧 울 것 같은 표정만 나오는데도 열심히 셀카는 찍었다.





어느새 우리는 작은 원이 되어

해바라기도 고개 숙인 뜨거운 태양 아래, 오후 2시가 넘어 푸엔테 라 레이나에 도착했다.

공립 알베르게는 마을 초입에 있었다. 이쯤 되면 다리를 질질 끌며 알베르게에 들어가는데, 한참 전에 도착한 메그는 너무 멀쩡한 모습으로 날 반겼다.


체크인 줄이 길어 기다리는 내게 자판기 콜라를 뽑아 주는 메그. 아 상냥한 사람. 벌컥벌컥 마시는데 뒤에서 누군가 그녀에게 한국말로 한국 사람이세요? 라며 말을 건다.


"I'm Japanese. She is Korean."

메그가 나를 가리킴과 동시에 나도 뒤돌아보았다.

서글서글한 큰 눈과 목소리를 가진 20대로 보이는 한국인 J는 내 사촌 동생을 꼭 빼닮았다.


"저녁 어떻게 하실 거예요? 저는 삼겹살 너무 땡기는데 혼자서는 사다가 해 먹기 애매하더라고요. 같이 마트에서 고기 사다 먹을까요?"


"오 고기 좋죠!"


"그럼 이따 같이 마트에 장 보러 가요. 여기에 한국 사람 한 명 더 있거든요. 같이 해서 먹어요."


"오키. 콜콜! 저 아까 만난 일본 친구랑 동행인데 다 같이 가요."


알베르게는 다른 곳들에 비해 무척 싼 금액(7유로)인데도 시설은 훌륭했다. 가보진 않았지만 수영장도 있다고 한다. 샤워와 손빨래를 마치고 조금 쉬다가 4시 시에스타가 끝나고 마트에 가기 위해 모였다.

메그와 Y, 아까 잠시 인사한 J와 또 다른 한국인 소은.

J와 소은은 우리보다 하루 일찍 생장에서 출발했다가 이 마을에 하루 더 쉬는 바람에 우리와 만나게 되었다. 모여보니 모두 아시안이네. 그래 오늘은 아시안들의 저녁으로 하자!


장을 보고 돌아왔는데 이게 누구던가!! 생장 이후 만날 수 없었던 JM언니가 다 죽어가는 표정으로 알베르게에 앉아 있다.

"언니!!!!!!!"

와락

"언제 왔어요? 발은 괜찮아? 왜 한 번도 못 봤지? 잘 지냈어요?"


쏟아지는 질문에 그녀의 대답도 속사포다. 3일 동안 그녀에게도 참 많은 일이 있었구나.

발에 물집이 너무 많이 잡혀서 간신히 걷고 있다며, 물집에 실을 꿰고 있는 JM. 저녁이 되어가는데 점심도 못 먹은 얼굴이라 걱정이 되었다.


"저녁은 어떻게 할 거예요?"

"모르겠어요. 먹을 기운도 없고."

"여기 친구들이랑 요리해 먹으려고 장 봐 왔는데 같이 먹을래요? 내가 친구들한테 함 물어볼게요."


부족한 식재료에 인원이 하나 느는 거라고 언니는 몇 번을 고사했지만, 그냥 놔둘 수는 없었다.

이렇게 해서 여섯 아시안의 저녁 식사가 차려지게 되었다.


한국인들은 고기와 볶음밥을 준비하고 일본인 메그와 Y는 야채 볶음 요리를 만들어 함께 나눠 먹기로 했다. 부엌이 북적이진 않았지만, 인덕션이 4개 중 2개만 작동을 해서 다른 순례자들과 서로서로 순서를 기다려야 했다. 소은은 한국에서부터 가져온 카레를 물 많이 넣고 끓인다. 아고 그 귀한 것을 다 내어주다니 진심 대인배지 않겠나.


넉넉하진 않았지만 모자라지도 않게 음식을 나눠 먹었다. 이렇게 알베르게 부엌에서 요리해 먹은 것은 모두에게 처음 있는 일이었다. 비슷한 식성이 모이니 이런 것도 가능하구나. 즐겁고 기억에 남을 저녁 식사가 되었다.


해가 넘어가려고 하는 알베르게의 정원 풀밭에 순례자들이 삼삼오오 앉아 있다. 마리오 옆으로 Y와 J가 앉고 길에서 인사 나눈 유럽의 친구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나와 메그도 그 옆으로 앉다 보니 어느새 우리는 작은 원이 되었다.


물집이 영어로 뭐냐, 아 블리스터, 물집 생겼냐, 나는 몇 개 있다, 무릎은 어떻냐, 약은 뭐 바르냐…

얼핏 들으면 노인들의 대화 같은 순례자들의 소소한 일상 이야기가

조금 어색하면서도 정겹게 느껴졌다.





Bonus!

Albergue : Albergue de Peregrino PP. Reparado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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