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2-여행과 일상의 그 어디쯤

시작이라는 두근거림

매우 토종적인 나는 외국생활을 준비할 때 먼 미래를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 분명하다.

출국 준비 내내 그저  그 2월 23일 저녁 ' 그 어느 집'에서 ' 그 어떤 저녁식사'를  네 식구가 모여서 할 수만 있으면 된다 라는 각오로 버텼던 터라 그다음에 대한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즉, 의도적인 ' 멍' 상태였다는 것.


그 ' 고대하던 저녁 '식사를 마치고 헝가리 땅을 밟은 세 식구는 시차 적응과 공기 적응과 물 적응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적응해야 했지만 그저 우리 두 꼬마에게는, 그리고 ' 멍' 상태를 유지 중이었던 나에게는 적응의 대상이 아니라 내 눈에 보이는 모든 건 여행지의 두근거림의 대상처럼 느껴졌다.


아침 산책을 나갔고 놀이터 투어를 시작했다. 이동수단은 대중교통이 다 였기에 온 가족 손 꼭 붙들고 트램, 버스, 유람선, 지하철 등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재밋거리를 찾아다녔다.

버스는 어디서, 어떻게 타지? 티켓은 어디서 어떻게 사지? 이런 아주 중요하고 기본적인 것도 생각하지 않을 만큼 나와 아이들은 전담 가이드를 만난 철부지 관광객처럼 신나 있었다.

모든 게 재밌고 신기했다. 이런 일상의 끝에는 당연히 깡마르고 어깨에 한가득 부담을 지고 있는 남편이 있다. 남편은 우리가 들어온 후로부터 자유를 잃고 온갖 심부름을 도맡아 해야 하는 '집사'가 되었다.  그날 부터 점점 말라갔다.... 이제 보니 더욱 미안하구나.


사실 나나 아이들에게는 보상심리도 있었던 것 같다.

나도 아이들도 아빠 없이 지낸 6개월을 보상이라도 받듯이 최선을 다해 아빠를 누렸다.

아빠는 반가움은 며칠이었고 슬슬 우리를 부담스러워했을 것 같다고  이제야 생각한다.

글 쓰는 지금은 그때로부터 정확하게 4년이 흐른 2월인데 다시금 그때를 생각하니 남편이 힘들었을 것 같다. 아니고 분명히 힘들었을 것이다. 우리는 입을 삐악 되는 병아리들처럼 6개월 먼저 이 땅을 밟아 이 나라 밥을 더 많이 먹어본, 이 나라 공기를 더 많이 마셔본 그에게 온 체중을 실어 기대 있었다. 중간중간 있었던 감정싸움과 말다툼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었으리라. 나는 하루가 다르게 자격지심이 차오르기 시작했고 남편에게는 끝없는 부담감이 문제가 되었다. 사실 이 문제는 지금도 존재하고 이 긴 여행을 결정하고 발걸음을 딛은 남편과 그를 따른 나의 숙명일지도 모른다.


은행에 가야 해고, 장을 봐야 했고, 핸드폰을 개통해야 했고 , 가구를 사야 했다. 이불도 필요했다. 쇠 숟가락 젓가락도 네 벌이 없어서 나무젓가락을 사용해야 했던 우리로서는 매일매일이 새로운 것과의 마주함이었다. 보일러 사용법, 하다못해 수돗물도 그냥 사용할 수가 없다는 것이 아닌가. 석회 물. 들어는 봤지만 밥물을 맞추려면 한 방울씩 떨어지는 브리타 정수기의 물을 기다려야 했기에... 곰탕은 꿈도 못 꾸겠구나... 속으로  생각하면서 현실을 직시하는 매우 주체적이지 못한 내가 기억난다.

걸어도 걸어도 모르는 길이고 봐도 봐도 모르는 글씨만 있는 딴 나라에 떨어진 우리.

그래도 의욕 넘치게 시차가 적응되기 무섭게 놀이터 투어는 매일 했고, 길을 익혀야겠기에 걷고 또 걸었다.

첫날 차에서 못 본 부다페스트 야경을 접하러 강변에도 나가보았다.

하루도 빠짐없이 장을 보면서 하나라도 더 배워보겠다는 열의는 있었지만 거기까지였다. 음... 다시 한번 미안하다.

그래도 짬짬히 느끼는 즐거움이 있었다. 은행을 가거나 보험회사에 갈때 어디든 저렇게 작은 어린이손님을 위한 코너가 있었다. 혹시 내가 이 나라에 불청객이면 어쩌나 하는 시키지도 않는 자책을 지니고 있는 나같은 사람에게는 그런 작은 배려가 꼭 나를 위한 것 같았다. 그럴때는 괜히 기분좋아지는 단순함은 세뚜세뚜. 

3월의 첫날이었던가. 남편도 일찍 집에서 나서고 아이들은 작은 컴퓨터 모니터로 헝가리 동요동영상을 볼 수 있게 한 다음 주체적으로 내! 손으로 빨래를 하고 이제 막 갓 시작된 봄 햇살에 빨래를 널며 이 사진을 찍으며

이제 내가 여기서 살게 되는 거구나...라고 생각했던 그날의 공기가 떠오른다. 이제 시작이다.

 첫 일주일, 헝가리의 퍽퍽한 빵과 저렴한 버터가 마냥 맛있고 신기했으며 밥그릇 국그릇 모양이 달라서 매 식사가 어색했던. 하지만 남편을 쫄래쫄래 따라서 집 밖이라도 나갈라치면 그저 신났고 신기한 환경에 재미있었지만 알게 모르게 나. 

이렇게 4년전의 나와 우리를 되돌아보려고 마음을 먹고 시간을 되돌리다 그때 짧게 적어둔 첫 2주의 일기를 읽어보니 이상하리만치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시간의 마법인가.

오늘도 2월 말  초봄 햇살에 빨래를 널었고 잠시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린다. 아이들이 학교에 잘 있을까 아이들의 내일은 또 괜찮을까를 염려하고 나의 존재가 남편에게 부담이 되고 있지는 않는가를 잠시 생각하며 내일의 나는 나에게 만족스러울까를 고민하는 4년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마음으로 앉아있다.

자꾸 눈을 감고 그날을 생각하게 된다. 

4년전...그날. 오늘 같았던 그날.


매거진의 이전글 3-3월은 늘 그랬던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