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가 선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해가 뜨면 새로운 하루가 펼쳐지고
땅거미가 내리면 모두 어둠에 흡수되는,
또는 준비 없는 별리의 통보라던지
두번 다시는 만날 일 없을 것처럼 꼬리를 자르고
사라진 이들을 만나게 되는 일들은
일상에서 가끔은 일어나는 상황이기도 하다.
더불어 그러한 일상이란 그다지 상쾌하지 못한
상황이기도 하다.
살아가는 일이 먹고 일하고 수면을 취하는 연속성의
현상이지만, 그러한 시간을 통해서 자신을 연마하는 수행 과정으로 여기는 이들이 아마도 작은 수효는 아닐 것이다.
왜냐면, 실 생활에서 자신의 내면을 마주하는 일이
이론적인 것보다는 더 큰 깨달음의 산실이기 때문이다.
일생에서 마주치고 싶지 않은 일이 생겼을 때, 기분 좋은 일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난관을 극복하는 일이 큰 과제이다.
며칠 전 이십여년 전 내 등골을 흡성대법한 채 그 등짝에 어마어마한 고통을 지워 놓고 연무 속으로 사라진 인물을 어느 장례식장에서 만났다.
그동안 그 무거운 짐더미를 내 짐인양 지게 된 적지 않은 세월을 인지할 수 있었다. 머리와 생각은 참아 온 시간이 장해서인지 두 손을 잡고 반가운 인사를 건네게 되었다.
그러나 세살 버릇 여든이라고 그 입에서 뱉어 놓는 언어들이 심기를 불편케 하기 족했다.
그 긴 시간에 모두 용해 된 줄 알았던 등짝의 고통이 무척이나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온 육신의 기운이 삽시간에 사지를 향해 삼투압이되어 죄다 빠져나가 버렸다.
지하철 유리창에 비친 몰골이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또 다른 모습 하나가 '용감하게 모두 잊었다며...'라면서 비웃기도 했다.
처량했던 지난 날의 발을 내려다보며 '잊을 건 잊자. 잊혀지지 않아도 잊자. 그래야 살 수가 있으니 잊자,'
바람 빠진 고무공처럼 스스로를 연민하며 골목 모퉁이를 돌아서 내려가는데 눈부신 하얀 목련이 다정하게 미소를 머금고 한들거리고 있었다.
'아. 그래도 사랑스럽게 바라 보아 주는 꽃이 있었구나,'
가벼운 바람 한 줄기 볼을 스치며 뜨거운 눈물을 닦아주고 있었다.
삶의 모퉁이 마다 무엇을 만날지는 가늠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살아가는 동안만큼은 기쁨으로, 연민으로, 사랑으로 만날 선물이 있다는 것이 너무나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 다시 사랑하며 기쁨으로 살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