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나에게 알려준 사랑

by 승아

독립을 하고서야 알았다. 혼자 산다는 것은 자유로움만이 아니라 무수한 책임과 귀찮음을 동반한다는 것을. 세탁기를 돌리는 일조차 버겁고, 욕실 청소가 이렇게 많은 손길을 요구하는 줄 몰랐다. 작은 벌레 하나 잡는 일도 두렵게 느껴지는 그때, 비로소 당신이 떠올랐다.

당신은 언제나 묵묵히 모든 것을 해냈다. 매 끼니 달라지던 반찬은 계절의 빛깔처럼 다채로웠고, 따뜻한 밥 한 공기는 햇살처럼 포근한 위로였다. 퇴근 후 피곤이 묻은 얼굴에 번지던 웃음은 별빛이었고, 씻고 옷을 갈아입자마자 내 손을 잡고 놀이터로 향하던 발걸음은 봄날의 바람처럼 가벼웠다. 주말마다 세 시간을 달려 바다로 떠나던 여정은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나를 위한 축제였다.


당신의 사랑은 늘 구체적이었다. 책가방을 내려놓기도 전에 “오늘은 어땠니?” 하고 건네던 목소리가 있었고, 돌릴 빨래가 있냐며 방문을 열던 손길이 있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무엇이든 주저 없이 응원해 주었고, 함께 여행지를 고민하던 시간이 있었다. 아플 때는 대신 아파주고 싶다 했고, 밥을 거르면 억지로라도 한 숟가락 떠먹여 주었다. 매년 크리스마스 아침, 현관 앞에 놓여 있던 선물 상자 속에는 내가 오래도록 바라던 것들이 들어 있었고, 무슨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달려와 주던 발걸음이 있었다.

그 모든 순간이 얼마나 큰 사랑이었는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당신이 그윽하게 내 눈을 바라보며 건네던 “사랑한다”는 말이 세상 어떤 언어보다 소중했다는 것을, 당신이 웃을 때 살짝 접히던 눈웃음은 가을 햇살처럼 따뜻하고 눈부셨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지나간 시간 속에 스며 있던 사랑은 오래 묵은 편지처럼, 손때 묻은 문장들로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아빠, 엄마. 몇 해 전, 저와 했던 약속 기억나시나요. 언젠가 다시 일곱 살 때처럼 해맑게 웃으며, 저에게 주신 큰 사랑을 보답하겠다고 다짐했던 그 약속을 꼭 지켜드릴게요. 스무 해 넘게 저를 아름다운 눈으로 바라봐 주신 그 시선이 제 삶의 가장 큰 선물이었음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언젠가 제가 부모님의 하늘을 든든히 떠받칠 만큼 단단히 자란다면, 오늘의 이 다짐을 꺼내어 다시 전하고 싶습니다. 그날에는 아마, 지금보다 더 단단해진 어른으로, 그러나 여전히 아이 같은 마음으로 서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에야 비로소 알겠지요. 부모님의 사랑은 끝이 없는 강물이었고, 나는 그 강물에 평생을 기댄 채 흘러왔다는 것을.




keyword
이전 09화태풍은 결국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