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단상 [斷想]

by 승아


그가 내 말을 조용히 듣고 있었다. 고개를 살짝 기울인 채, 내 얼굴을 바라보던 그 눈빛은 어딘가 달랐다. 말보다 시선이 더 깊이 스며드는 순간이 있었다. 나도 모르게 숨을 고르게 되었고, 그 짧은 정적 속에서 오래된 기억이 문득 스쳤다. 그 눈빛, 두 번째였다.


삼 년 전, 나는 그와 똑같은 눈빛을 본 적이 있었다. 첫사랑이었다. 그날의 나는 서툴렀고, 세상 모든 감정이 처음이었다.


그 사람은 말없이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따뜻했고, 조금은 슬펐다. 그때의 시선이 내 마음에 박혀 여전히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일까. 눈앞의 그 사람을 보면서 나는 과거로 돌아갔다. 그 눈빛은 첫사랑의 잔상을 닮아 있었다.


내게 ‘첫사랑’이란 단순히 처음 좋아했던 사람이 아니다. 함께한 시간이 유난히 선명하고, 지금도 문득 마음 한켠에서 불쑥 나타나는 사람.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음을 알면서도, 여전히 미묘한 온도로 기억되는 사람. 그래서 나는, 그와 비슷한 눈빛을 마주한 순간, 마음이 흔들렸다. 하지만 동시에 두려움이 스쳤다.


나는 언제나 사랑의 시작보다 끝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될 때면, 행복보다 이별이 먼저 그려진다.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이미 끝을 준비하는 버릇. 그래서일까. 그가 내 앞에 있음에도 마음 한쪽에서는 조심스레 벽을 세웠다. 다시 상처받고 싶지 않다는 생각, 다시 무너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나를 움켜쥐었다.


사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잘 모른다. 이름을 알고, 취향을 조금 아는 것만으로는 사랑이라 말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미 몇 번이나 마음속에서 사람을 떠나보냈다. 시작조차 하지 못한 관계들. 아마 그건, 내 안의 두려움이 먼저 앞서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은 때로는 예고 없이 찾아오기도 하고, 오랜 기다림 끝에 천천히 다가오기도 한다. 어쩌면 노력으로 만들어질 수도, 아무 이유 없이 스며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어떤 형태로든, 사랑은 결국 ‘마음의 문을 여는 용기’에서 비롯된다. 나는 그 문 앞에서 여전히 망설이고 있었다.


나는 아직 사랑할 준비가 안 된 걸까. 아니면, 다시 다가올 사랑이 두려운 걸까. 그의 눈빛이 떠오른다. 첫사랑과 닮았지만, 다른 온도의 눈빛. 그 시선 속에는 나를 알고 싶어 하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사랑은 아마도 다시 찾아오겠지. 다만 그때는, 지금처럼 서둘러 피하지는 않기를 바란다. 조금은 두렵고, 여전히 서툴겠지만 그 마음마저도 나의 온기로 남아 있으면 좋겠다. 그 눈빛이 다시 스쳐 지나가더라도, 이번엔 그 따뜻함을 잠시라도 놓치지 않고 기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