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 욕심이 꼭 많을 필요는 없다. 크게 바라지 않아도, 눈에 띄는 성취가 없어도, 그저 하루를 무사히 지나온 것만으로 충분한 순간들이 있다. 원하는 것이 많지 않아도 괜찮고, 어떤 날은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특별히 미워할 힘조차 없을 때도 있다. 그럴 때는 그저 오늘 하루를 무사히 견뎠다는 사실만으로도 스스로에게 충분한 위로가 된다. 내일을 기대하지 않아도, 지나간 시간을 후회하지 않아도, 하루가 쌓여 한 달이 되고, 그 한 달이 또다시 삶을 이어가게 하면 된다. 삶의 바람이 반드시 거창할 필요는 없다. 스스로를 잃지 않는 것, 그것이면 충분하다.
살다 보면 예상치 못한 아픔은 늘 다른 얼굴로 찾아온다. 예전에 잘 견뎠다고 해서 다음에도 강할 거라는 보장은 없다. 다 지나온 줄 알았던 상처도 시간이 흐르면 또다시 다른 모습으로 찾아온다. 마음은 생각보다 쉽게 흔들리고, 슬픔은 생각보다 자주 찾아온다. 그래도 계속해서 중얼거린다. “어찌 되었든 살아내야지.” 익숙한 듯 체념에 가까운 한마디가 때로는 다시 일어나는 힘이 된다. 흔들려도, 기울어도, 결국 다시 서게 만드는 문장 하나. 포기보다 버티는 쪽을 선택할 때가 더 많아졌다는 사실을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어둠이 길었던 시간 속에서 사람은 조금씩 단단해지는 법을 배운다. 지독한 슬픔도 결국은 희미해질 날이 온다는 것을, 흐르던 눈물도 마르게 되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알아간다. 깊이 꺼져버린 것 같던 마음도 다시 온기를 서서히 되찾는다. 무너졌던 자리마다 보이지 않는 작은 뿌리들이 박혀 있고, 그것이 시간이 흐르며 조용하게 삶을 지탱해 준다. 넘어졌던 횟수만큼 사람은 뿌리를 더 깊이 내리고, 쉽게 뽑히지 않는 존재가 되어간다.
계절은 늘 재촉하듯 지나간다. 달력 위 날짜들은 기다림 없이 흘러가고, 하루는 언제나 생각보다 빠르게 저물어간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사람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앞으로 나아간다. 마음이 모두 준비되지 않은 채 내일을 맞이할 때가 많지만, 그래도 오늘을 살아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넘어지지 않는 것보다 다시 일어나는 쪽을 택하는 삶이 어쩌면 더 용기 있는 선택인지 모른다. 비록 하루는 상처투성이일지라도, 그 하루를 모두 살아낸 자신을 바라볼 때 문득 기적처럼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삶은 완벽하게 괜찮아지는 날만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때로는 버티는 것만이 최선일 때가 있고,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하루조차 의미가 있다. 인간은 결국 극복이 아니라 적응을 하며 살아간다. 잘 살겠다는 다짐보다, 그저 계속 살아보겠다는 다짐이 더 필요할 때도 있다. 아주 작은 발걸음이라도 앞을 향해 있다면 그것이면 족하다.
새로운 해가 떠오를 때, 각자의 자리에서 조용히 자신을 격려할 것이다. “잘 버텼다. 올해도 살아내 보자.” 이 말은 다시 내일을 살아가게 하는 이유가 된다.
우리는 그렇게 오늘을 지나, 또 한 번의 내일로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