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책을 펴면 어김없이 두통이 찾아왔다. 살기 위해 밥을 먹었지만, 위는 금세 거부 반응을 일으켰다. 위액까지 토해내며 몸이 먼저 신호를 보냈다. 그때는 그저 체질이 약하다고, 혹은 잠을 덜 자서 그렇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이 불안하고 압박이 커질수록, 몸의 고장은 더 잦았다.
직장인이 된 뒤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업무를 시작하려 하면 어지럼증이 밀려왔고, 감기에 걸리면 한 달이 넘도록 낫지 않았다. 약이 내 일상의 일부가 되었고, 사람들은 나를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라 부를 정도로 괜찮아지려 하면 또 아팠다.
학생 때부터 피검사, CT, 수면검사까지 손가락으로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검사를 받았지만, 돌아오는 말은 언제나 같았다.
“이상 없습니다. 결과는 지극히 정상이에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이상하게 허전했다. ‘정상이면 왜 이렇게 아플까.’ 그 질문 하나를 품은 채, 나는 7년 동안 스스로를 속이며 살아왔다.
몇 해가 지나 다시 위내시경을 받을 때도, 최근 CT를 찍을 때도 바람은 같았다. ‘이번엔 제발 병명이라도 나왔으면 좋겠다.’ 차라리 이유가 명확하면 마음이 조금은 편할 것 같았다. 그러나 결과는 늘 깨끗했다.
결국 내가 가야 할 곳은 내과가 아니라 정신건강의학과였다. 그럼에도 병원에 갈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이번엔 정말 몸이 아픈 걸 거야.’ 그리고 매번 같은 장면이 반복됐다. 의사와 내가 서로 머쓱하게 웃으며 “몸은 아주 건강하네요.”라는 말을 듣는 순간이었다.
그때서야 비로소 깨닫기 시작했다. 몸은 언제나 나보다 먼저, 나를 챙기고 있었다는 것을. 몸이 아파지는 건 나에게 보내는 작은 신호였다.
그만 버텨도 돼. 이제 잠시 쉬어가자.
그 단순하고 다정한 메시지를, 나는 오랫동안 듣지 못했다.
지금도 가끔 위경련이 찾아올 때면 생각한다. ‘아, 또 내가 너무 버텼구나.’ 그제야 마음이 벅차오른다. 하지만 여전히 그 신호를 무시할 때가 많다. ‘괜찮아. 잘하고 있어.’라며 스스로를 다독이는 척하지만, 그 말속에는 불안과 강박이 숨어 있다. 결국 내 몸이 마지막 수단으로 보내는 경고가 있다. 그것이 바로 공황발작이었다.
그 순간에야 깨닫는다. 나는 쉬어야 했던 거구나. 숨을 고르고, 마음을 내려놓고, 나 자신을 위로해야 했던 거구나.
이제는 다짐한다. 몸이 아프기 시작하면, 더 아프기 전에 내 마음을 먼저 들여다보기로. 불안이 스며들기 전에, 잠시 멈춰서 내 안의 목소리를 들어보기로.
몸은 언제나 정직하다. 그 어떤 말보다 솔직하게, 나를 지키려 애쓴다. 그러니 이제는 그 신호를 외면하지 않으려 한다. 몸의 아픔은 나를 괴롭히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잃지 않게 붙잡아주는 또 하나의 사랑의 언어라는 것을, 이제야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