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수도 있지

by 승아

우울증과 공황장애라는 병명을 처음 들었던 건 2019년이었다. 그로부터 여섯 해가 지나서야, 나는 극심했던 우울과 불안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믿었다. 웃는 날이 많아지고, 행복한 일들이 쌓여가며, 좋은 추억이 늘어갔으니까. 다시는 그 어두운 시간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바란 평범한 삶은 단순했다. 출퇴근을 하고, 휴무엔 집에 머물거나 가끔 여행을 가는 것. 운동 같은 취미를 즐기며 소소한 행복을 느끼는 일상이었다. 그 평범한 하루를 지키기 위해 나는 나름의 규칙을 세웠다. 감정의 기복을 다스리며 정해진 시간에 자고 일어났고, 쉬는 날엔 운동을 했다. 되도록 술자리는 피했고, 신앙생활을 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틈날 때마다 책을 읽었고, 삼시 세 끼를 거르지 않았다. 가끔은 계절의 냄새를 맡기 위해 일부러 먼 길을 걸었다.

그렇게 바라 마지않던 삶을 살아낸 지 반년쯤 되었을까. 겉으로는 평온했지만, 그 안에는 감춰야 할 것들이 있었다. 밝은 웃음 뒤에는 우울이 숨어 있었고, 다정한 말 뒤에는 ‘힘들다’는 고백이 숨겨져 있었다.

이상하게도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오히려 안정감을 느꼈다. “밝아 보인다”는 말을 들으면 괜히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우울은 마음 깊은 곳으로 더 숨어들었다. 그리고 그 우울이 차라리 얼어붙거나 완전히 사라졌다면 좋았을 것이다.

어느 날, 아무런 예고 없이 그 버튼이 다시 눌려버리고 말았다. 이유 없이 속이 뒤틀렸고, 먹은 것도 없는데 위액을 토해냈다. 내시경 결과는 정상이었지만, 이후로 몸살이 이어졌고 수면 시간은 점점 줄었다. 그때 눈치챘어야 했다. 나는 또다시 스트레스 속에 있었다는 것을.

삶의 리듬이 조금씩 깨지며 불안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다시는 무너지면 안 된다’는 압박이 짙어졌고, 감정의 균형은 흔들렸다. 걷다가 이유 없이 눈물이 흘렀고, 사람 많은 곳에서는 손톱을 긁으며 불안을 달랬다. 결국 다시는 찾고 싶지 않았던 정신건강의학과를 내 발로 걸어 들어갔다. 약을 처방받고, 심리 상담의 간격은 점점 짧아졌다.

그제야 알았다. 나는 ‘평범한 삶’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살고 있었다는 것을. 또다시 우울과 불안에 무너지면 실패한 인생이라 단정하며,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이번엔 세상이 아닌, 내가 나의 마음을 다치게 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우울하고 불안한 감정이 밀려와도 예전처럼 죽고 싶진 않았다. 공황이 덮쳐올 때마다 ‘죽을 것 같다’라는 생각은 스쳤지만, 그뿐이었다. 그때마다 내 입에선 “죽고 싶다”가 아닌 “또 이러네”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그저 답답했고, 일상이 제약되는 내게 화가 났다.


그때, 사촌언니가 말했다. “승아야, ‘또 이러네’보단 ‘그럴 수도 있지’라고 말해봐.” 그 한마디가 내 마음 깊은 곳을 건드렸다. 맞아.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말 한마디가 바뀌자, 불안이 밀려오는 순간들이 조금씩 잦아들었다. 불안이 찾아올 때마다 나는 그 말을 조용히 되뇌었다.

그럴 수도 있지.

이제는 안다. 우울과 불안은 다시는 오지 않을 존재가 아니라, 잠시 들렀다 가는 감정일 뿐이라는 것을. 여섯 해의 시간은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예전의 나는 그 감정을 두려워했지만, 지금의 나는 그저 인정한다.

우울증은 더 이상 내게 낙인이 아니다. 독한 감기처럼 찾아왔다가, 결국엔 지나가는 것일 뿐이다. 삶은 여전히 불안하고, 마음은 가끔 흔들리지만 이제는 그 불안 속에서도 숨 쉬는 법을 안다. 그저 오늘을 버티고, 또 살아내는 일. 그것이면 충분하다는 것을, 나는 아주 천천히 배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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