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한참 약에 의지해 하루를 버티던 시절, 당신을 만났습니다. 감정의 바닥이 어디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던 때였고, 하루를 무사히 넘기는 일만으로도 스스로를 칭찬해야 했던 날들이었습니다. 그런 나와 달리 당신은 우울이라는 감정을 잘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한 번도 깊게 가라앉아 본 적 없다는 듯, 담담하게 말하던 당신의 표정이 이상하게도 또렷하게 기억납니다.
그래서였을까요. 나는 당신 앞에서 유난히 조심스러워졌습니다. 혹시라도 내 어둠이 당신에게 번질까 봐, 내가 가진 이 무거운 감정이 당신의 맑음을 흐릴까 봐. 말하고 싶은 순간마다 삼켜냈고, 괜찮지 않은 날에도 아무렇지 않은 척 웃어 보였습니다. 당신에게만큼은 밝은 사람으로 남고 싶었습니다. 아니, 적어도 당신의 세계를 어지럽히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게 숨기고 또 숨기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우리는 나란히 서 있었고, 당신은 말없이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습니다. 평소처럼 가벼운 농담도, 장난스러운 말도 없이 그저 조용히 서 있던 당신의 뒷모습이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이상하게도 그 순간, 나는 당신이 조금은 우울해 보인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이 스며들었고, 혹시 내가 전한 무언가가 당신을 닮아가게 만든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당신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런 나의 시선을 느꼈는지, 당신은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아주 익숙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하늘이 참 맑다.”
그 한마디에 나는 아무것도 묻지 못했습니다. 당신이 정말 하늘만을 보고 있었던 건지, 아니면 나처럼 어떤 감정을 잠시 내려다보고 있었던 건지. 혹시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 아무 일 없는 척 웃어 보인 건 아니었는지. 그날의 당신은 끝내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았고, 나 역시 끝내 아무것도 묻지 않았습니다.
지금에 와서야 가끔 생각합니다. 그때, 당신에게도 나의 우울이 닿아 있었을까요. 아니면 당신 역시 나처럼, 서로를 위해 감정을 감추고 있었던 걸까요. 우리는 서로를 지키기 위해 침묵했지만, 어쩌면 그 침묵 속에서 조금씩 닮아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맑은 하늘을 올려다보던 그날의 당신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여전히 답을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 순간의 우리는 서로를 아끼는 방식으로 각자의 감정을 숨기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만큼은, 그 어떤 말보다도 분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때 당신은 우울하였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