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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잉송 Mar 09. 2023

육아는 형벌인가?

윤성빈도 욕하고 간 시시포스의 형벌


물론 최선을 다 하긴 했지만,

윤성빈 선수님이 시시포스의 형벌에서 떨어지는 순간

저는 내심… 좀 위로받았습니다.

 


아. 다 잘하는 윤성빈도 못하는 게 있구나. 
역시 천하의 피지컬 윤성빈도 시시포스의 형벌에서는 어쩔 수 없구나.

제가 이렇게 내심 위로를 받은 것은

피지컬 100의 윤성빈처럼 나 또한 '시시포스의 형벌'을 받고 있는 중이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육아란 나의 한계를 시험해 보는 시시포스의 형벌과도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시지프스의 형벌처럼 육아 또한 나의 한계를 매 순간 시험합니다.

치우면 또 어지르고 치우면 또 어지르고를 무한 반복하는 아이들,

집안일과 내 할 일을 미뤄두고 아이들과 끝없이 놀아줘야 하는 상황,

끝난 줄 알았는데 또 반복되는 노동이 마치 시시포스의 형벌 같다고 말이죠..


그런데 이렇게 육아를 하면서 화가 난 내 모습이 거울에 비칠 때.

육아가 힘들게 느껴지는 저는 자괴감을 느끼게 되더군요..


오늘 아침에 그랬습니다.

둘째 아이가 내가 어제 정리해 놓은 옷장에서 옷들을 모조리 꺼내어놓은 것입니다.

청소를 하다가 나도 모르게 화가 나서 “ 나 안 해!”라고 말하며 화를 냈어요.

15개월짜리 아이에게 화가 나서 아이에게 “너 왜 자꾸 그래!” 하며 

아기 의자에 앉혀서 더 이상 어지르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내가 큰맘 먹고 시간 내서 빨래산(아이를 키우다 보면 빨래를 개기 힘들어서 항상 집 어딘가에는 빨래산이 만들어져 있다)을 없앤 건데!!! 그 빨래산을 없애고 내가 얼마나 통쾌했는데!!! 그 빨래산을 다시 되돌려놓는 저 작은 악마 같으니라고!!!


"더 이상 좋은 남편도 좋은 아빠도 되고 싶지 않아!"
라고 말하는 순간, 거울에 비친 내가, 그런 내 모습을 보는 내가 너무 괴로웠습니다. 


내 그릇은 도대체 얼마나 작은 것이란 말인가!

왜 나의 한계는 이렇게 작고 초라한 걸까?


이 이야기를 와이프에게 했더니

와이프는 좋아했습니다.

“이제 알겠어? 내 맘을?”


와이프도 그랬다고 합니다. 

첫째 육아는 와이프가 온전히 뒤집어썼으니 그럴 만도 합니다.

그때는 저는 매일 밤늦게까지 일을 했는데..

와이프는 매일 화가 나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왜 나한테 화를 내!' 라며 아내에게 화를 냈죠.

와이프도 그 당시 시지프스의 형벌을 받고 있었던 것을 저는 모르고 있었던 것이죠.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그게 얼마나 힘든 시지프스의 형벌 같은 것이었는지...


그런데 얼마 전 법륜스님의 법문을 듣다가 문득 들어온 생각이 있습니다.


육아가 과연 시지프스의 형벌 같은 것일까?


'동물들은 육아를 하면서 화가 날까요?'

다른 위협에 대처할 때에만 화를 낼 뿐 동물들은 자기 새끼들을 돌보는 것이 힘들어서 화를 내지는 않습니다.

강아지나 고양이들은 자기 새끼들을 돌보는 일을 그저 ‘할 뿐’이죠.

불교에서 말하는 '함이 없이 하라'가 바로 이럴 때 쓰는 말일 것입니다.

육아를 하는 것이 힘들어서 화를 낸다는 것은 그래서 어쩌면 동물만도 못하다는 뜻일지도 모릅니다.

육아란 그저 본능이고, 내가 내 본능에 충실한 것에 화가 난다면 그건 좀 이상한 겁니다.

그러니 육아는 시지프스의 형벌 같은 것이 아니어야 합니다.

육아는 본능이라 그저 하면 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니 나는 그저 하면 되는 것도 못하는 나를 볼 때 너무 괴로운 거죠.

요즘 저는 그런 자괴감에 괴롭습니다.


그래서 저는 육아에 대한 의무감을 버리고, 육아를 즐겨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첫째가 이제 초등학교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그 아이에게 미안한 것이 있습니다. 

저는 그 아이가 지금의 둘째 나이였을 때 최선을 다 하지 못했고,

그 때문에 아이가 저와의 정서적인 단절을 이루었었기 때문입니다.


첫째의 경험으로 저는 깨달았습니다.

육아는 언젠가 끝이 나지만 그 육아를 즐기지 못하고 끝이 나고 나면 후회가 남는 다는 것을요.

'그때 더 잘할걸, 그때 그 행복을 알아차릴걸' 하고 말이죠.


자신의 몸이 힘든 것에 집착하면 그 순간의 힘듦만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멀리서 본 육아는 그 자체로 축복입니다.

나의 힘든 상황에 집착하면 괴롭기만 할 뿐 나에게 남는 것은 없습니다. 

힘들어도 그 상황을 멀리서 본다면,

나 자신이  시지프스의 형벌이 아닌 행복함 속에 있는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아이들은 부모를 조건 없이 사랑해 주기 위해 이 세상에 온 것입니다.
만약 육체적 고통이 그에 대한 대가라면,
그 형벌을 달게 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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