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이, 아빠 7년 차가 보는 출산율 문제
출산율이 또 줄었다고 합니다.
합계 출산율 0.78 저는 이 수치를 정말 실감합니다.
운이 좋게도 7살 2살 두 아이의 아빠입니다.
제 아들이 이제 18개월 차인데, 이 녀석을 서울에 데려갈 일이 몇 번 있었습니다.
젊은 사람이든 나이 든 사람이든, 사람들은 모두 제 아들을 보면서 시선을 집중했습니다.
서울 한 복판에서는 제 아들과 비슷한 나이대의 아이를 보는 것은 굉장히 드문 일입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점점 귀해지는 아이들의 웃음에 더 많이 감탄하곤 합니다.
식당에 가면, 이제 아기의자가 없는 곳이 많아졌습니다.
한 4년 전만 하더라도 아기 의자는 웬만한 식당에는 다 있었는데, 이제는 아예 자취를 사라졌습니다. 소위 핫플이라고 하는 곳은 줄이 길어서 아이와 기다리기에는 너무 지치는 일기기도 하지만 아기의자가 거의 없어서 기다려서 들어간다 하더라도 같이 밥을 먹기도 힘듭니다.
대부분의 손님들이 아기가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아이와 같이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은 몇 개 안 되었고, 저희는 아기의자가 있는 24시간 설렁탕집에서 밥을 먹었습니다. 그것도 참 감사한 일이었죠.
이제는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이 다소 특별한 일이 된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아이를 왜 안 낳냐고 청년들에게 윽박지를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이 좀 낳으라는 그 말이, 진짜 청년들이 걱정돼서 하는 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이는 사랑 그 자체고, 그 이상이다'라는 말을 하는 대신에 '너희들이 애를 안 낳으면 빈집이 늘어나고 상가도 공실 생겨서 다 망한다. 너희들이 애를 낳아야 경제가 살아난다'는 식의 경제 논리를 펼치기 때문입니다.
결국 자신의 노후준비가 걱정이라서 하는 말이죠.
이것이 우리 사회 리더들의 '오피니언'인 것입니다. 그러니 청년들도 당연히 아이를 낳는 것을 경제적인 문제로만 판단합니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데 당연히 출산휴직, 육아휴직을 써야 하는데, 회사에서는 육아휴직을 내어서 생긴 공백만큼 인건비가 상승한다고 난리고, 정부는 복지예산을 늘리면 재정이 악화되고 물가가 상승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아이를 낳은 사람은 결국 죄인이 됩니다.
아이를 잘 키우면 그 아이가 자라서 사회의 구성원이 되고 그 사회를 위해 일을 할 텐데, 아이를 키우는 것은 온전히 개인의 몫이라면서, 또 아이를 키우는 데 필요한 시간은 노동시간을 위해 줄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돈을 버는 것은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인데, 거꾸로 행복을 포기하고서 돈을 벌어야 하는 것처럼 시스템이 갖춰져 있습니다.
돈이 있어야 집을 마련할 수 있는데 그 돈을 벌기 위해서 결혼과 출산을 미루게 만듧니다.
자식은 아직 고등학교도 졸업 못했는데, 회사의 경쟁력을 위해서 열심히 일했던 회사를 정년도 되기 전에 떠나야 합니다. 아이 좀 낳으라고 하면서, 결혼제도라는 껍데기에 집착해서 다양한 가족제도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말만 아이 낳으라고 하면서 실제로는 낳든 말든 신경도 안 쓰는 것이 느껴집니다.
이런 문제들은 사실 해결되는 데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어쩌면 이 문제는 너무 '구조적'이라서 지금의 구조를 허물고 다시 세우지 않는다면 해결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일단은 우리는 이런 문제를 안고 살아가야 합니다. 이런 환경에서도 우리는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터득해야 합니다. 남을 바꾸진 못해도 나를 바꾸는 것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키우며 7년 이상을 보내다 보니, 아이를 키우는 것이 너무나도 힘들고 고된 일이라는 것을 몸소 경험하며 살아왔고 살고 있습니다.
제 짝꿍은 저보다 더 많이 힘들었습니다.
첫째 때는 육아에 대한 책임을 엄마인 아내에게 미뤘기 때문입니다. 갑자기 미안해지네요... 그런데 고되긴 하지만, 육아가 나에게 득 보다 실이 많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문득문득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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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건대, 첫째를 낳고도 사실은 육아가 저에게 손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육아할 시간은 무슨....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할 시간도 모자라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육아를 해 보니 아이들은 아버지의 능력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더라고요. 아이들은 아빠를 아무 이유 없이도 인정하고 사랑해 줍니다. 이건 참 대단한 진실입니다. 사실 열심히 일하고 아등바등 사는 것이, 결국은 인정받고 사랑받기 위해서잖아요. 그런데 그런 사랑은, 그런 인정은 이미 받고 있는 것입니다. 뭔가 먼 미래에 내가 더 많이 성공해야만 받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자신을 사랑하면 아이를 낳든 안 낳든 행복할 수 밖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스스로를 사랑하다 보면 사랑이 자꾸 번져 나옵니다. 그런 과정에서 사랑의 대상이 다른 사람으로 확장되고 당연히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이 커지게 됩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수밖에 없고,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할 수 밖에는 없습니다.
'생명을 키워야 하는 부담감 때문에 아이를 낳지 않을 것'이라 말하는 사람은 실제로 아이를 낳지 않았어도 삶 자체에 부담을 가지는 사람일 것입니다. 반대로 아이가 없었을 때에도 행복할 줄 아는 사람은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라며 아이의 존재에 감사해합니다. 육아는 오히려 삶에 에너지를 주고 활기를 주는 일입니다. 그래서 예부터 아이들을 복덩이라고도 하잖습니까? 부모가 주는 것보다 아이는 항상 저에게 더 많은 사랑을 줍니다. 이것은 변치 않는 진리입니다.
아이를 키우는 것이 힘들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 당연히 아이를 키우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스스로에게 이득이 되는 모든 일은 힘든 과정이 있습니다. 운동을 꾸준히 하는 사람은 '운동이 힘들다는 것'에 집중하지 않습니다. '운동이 나에게 주는 이익'에 집중합니다. 모든 운동은 힘이 들지만 운동을 하니까 건강해진다던지 스트레스 관리가 된다던지 근성장을 한다던지 하는 운동이 우리에게 주는 이익에 집중합니다.
아이를 키우는 것도 그렇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힘들지만 아이에게 받는 사랑에 비하면 제가 들이는 노력은 훨씬 더 적게 듭니다. 저는 어릴 적 이후 처음으로 무조건적인 사랑을 제 아이로부터 받아봤습니다. 제 어머니는 '너희들만 잘하면 우리 집에 아무 문제없어'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제가 사고를 치는 아이도 아니었고, 나름 공부도 열심히 하는 아이 었는데도 말이죠. 아무리 열심히 해도 어머니는 저에게 만족하는 법이 없으셨습니다. 아버지는 저와의 정서적인 연결이 없으셨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제가 무슨 일을 하든, 돈이 많든 지 적든지 상관없이 저를 사랑해 줍니다.
저는 저 자신을 사랑하지 않은 채로 부모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육아를 통해 저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임을 깨달을 수 있는 아주 귀중한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생각에는 출산을 기피하는 문제는 개인의 문제를 떠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조건 (= 출산과 육아가 여성의 책임이자 의무라는 분위기 + 돈이 사람보다 먼저인 사회 + 육아를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는 사회 )에서는 출산율이 높아질 가능성은 전혀 없을 듯합니다.
반대로
1. 아빠의 육아참여가 당연한 사회가 되고
2. 아빠와 엄마의 육아참여를 정부와 회사가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3. 돈이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닌 사랑이 중심이 되는 사회가 된다면,
이렇게 된다면, 아마 출산율은 올라가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