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슬슬킴 Feb 06. 2021

백색소음이라도

__닮고 싶지 않지만 닮았습니다.

아오 내 새끼. 내 강아지 이희승!




나는 하루 종일 뭔가를 듣고 있다. 평소 팟캐스트를 즐겨 듣고 음악도 매일 듣는다. 집에 티브이가 없어서 생긴 습관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안 들으면 희승이가 팟캐스트를 듣는다. 유치원 때는 전래동화랑 EQ의 천재들 이야기를 계속 들었다. 거의 다 외울 정도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희승이는 [지금은 라디오 시대]의 <웃음이 묻어나는 편지>만 모아놓은 채널을 무한 반복해서 듣는다. 초등학교 들어가면서부터 들었으니 벌써 5년째다. 같은 이야기를 10번 넘게 들은 것도 있다. 나에게 사연을 보내보라고 권유하여 2년 전쯤 내 이야기를 써서 보냈고 사연이 뽑혀 방송이 되었다. 그때 정선희 씨 대신 장도연 씨가 문천식 씨와 함께 콩트를 해주었다. (50만 원 상당의 상품을 받았다. 오!) 조만간 다시 사연을 보내 볼 생각이다. 5년째 매일 '지라시' 콩트를 돌려 듣는 희승이 이야기를 쓸 계획이다.






글을 쓰거나 책을 읽을 때를 제외하고는 계속 듣는다. 그림 작업을 할 때에도 너무 적막한 게 싫어서 모닥불 소리라도 듣는다. 그런 나를 보면 -닮고 싶지 않지만 닮아버린-우리 아버지가 생각이 난다.



나의 팟캐스트 목록과 모닥불 소리들






나 어릴 적에 아빠는 카세트를 달고 사셨다. 낮에는 노래를 주로 들으셨는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공테이프에 녹음하셨다. 꽂히는 노래가 있으면 다른 공테이프에 반복 녹음을 하셨다. 테이프 하나를 한곡으로 가득 채워 하루 종일 같은 노래를 듣기도 하셨다. 주무시기 전에는 라디오를 들으셨는데, 라디오 극장이나 뉴스를 주로 들으셨다. 그러다가 방송이 끝나면 -치이익 치익-신호 끊긴 소리를 오래오래 켜 놓고 잘도 주무셨다. 누가 끄지 않으면 그냥 그 상태로 틀어놓고 주무시던 우리 아버지. 우리 아버지는 앞서가는 남자였다. 오늘날 우리는 백색소음이라 하여 이런저런 ASMR을 즐겨 듣는다.(나만...?)


우리 아버지처럼 나도 노래 한곡에 꽂히면 그 노래만 100번은 거뜬하게 듣는다. 보통 하루에 1-2시간을 일주일 정도 반복해서 들으니까 백번도 넘게 듣는다. 최근에는 오태호의 "기억 속의 멜로디"를 한 달 가까이 듣고 있다.






<기억 속의 멜로디>


작사, 작곡, 편곡 오태호 /노래 오태호



기억 속의 멜로디 나를 깨우고 가

너의 미소도 못 잊을 이름도


너의 그늘을 떠난 후에 너의 의밀 알았지

눈이 슬픈 너를 울리고 이제 나도 울고

내겐 많은 시간이 흘러 널 잊은듯했는데

너와 자주 들었던 노래가 그때 추억을 깨우네


세상 모든 사람이 나를 떠나 버려도

너만은 나를 찾아 돌아올 고마웠던 사람

그런 착한 너에게 시린 상처만 주고

이제와 뒤늦게 후회하는 나를 용서해


어디에 있든지 누구와 있든지

내가 그립지 않을 수 있도록

행복하길 행복하길 어느 누구보다

내 슬픈 바람을 들어줘






노래가 시작할 때 차 시동 거는 소리가 들리고 CD를 넣어 샹송이 흐르고 차는 출발한다. 이 부분을 들으면 일단 심장이 두근두근한다. 오태호 특유의 목소리는 나를 어릴 때로 데려간다. 시린 상처만 남은 사랑 따위 없지만, 이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비련의 남주가 된 기분이다. 지금도 듣고 있는데 진짜 너무 좋다. 너무.





1년 반 전쯤에 친정집이 리모델링을 했다. 낡은 아파트지만 이사를 갈 생각이 없으신 부모님은 고쳐서 살기로 마음을 먹으셨다. 오랜 시간 쌓여온 짐들을 치우는 작업을 하러 내려갔었다. 버리고 버리고 또 버려도 한 짐이었다. 이사를 간 적이 없으니 당연하다. 2박 3일 짐 정리를 끝내고 집에 돌아가려는데 아빠가 테이프 꾸러미를 주셨다. 5-6개쯤 되는 공테이프였다. 4시간 운전해서 집에 돌아와 집에 올라가지 못하고 차에 앉아서 엉엉 울었다. 그냥 눈물이 나왔다. 아빠는 왜 내게 이 테이프를 주셨을까. (아빠가 조금 편찮으셔서 더 울컥)


집에 테이프를 재생할 수 있는 카세트가 없어서 맘 카페에서 누가 준다는 걸 얼른 받았다. 재생을 시켜보니 우리 사 남매 어릴 적 노래 부르던 게 녹음이 되어있다. 가끔 들어서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다시 들으니 뭉클했다. 그러다가 나는 또 한바탕 울고 말았다. 아빠가 내 나이보다 어릴 적에 부른 "바닷가에서"가 들리는데 그 목소리가 참 고왔다. 어느 부분에는 친구들과 마이크를 돌려가며 트로트를 신나게 부르는 게 녹음이 되어 있었다. 흥이 많고 끼도 많은 내 아버지. 참 많이 미워했고 또 많이 좋아했다.


그런 아버지를 닮아 성질도 더럽고 흥도 많은 나, 그리고 그걸 또 이어받아 흥도 많고 끼도 많은 우리 아들, 유전자를 이어받아 신기할 정도로 닮은 모습이 보일 때면 기분이 참 묘하다. 그 대물림이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모르겠지만 나쁜 건 조금씩 줄고, 좋은 건 조금씩 커지기를 바란다. 내 화는 아빠에 비하면 1/3도 안되니까, 희승이는 또 나의 1/3만 갖고 가기를 바라며 오태호 노래를 계속 들어야겠다.





바닷가에서
작사 장수철  작곡 이계석
해당화가 곱게 핀 바닷가에서
나 혼자 걷노라면 수평선 멀리
갈매기 한두 쌍이 가물거리네
물결마저 잔잔한 바닷가에서
저녁놀 물드는 바닷가에서
조개를 잡노라면 수평선 멀리
파란 바닷물은 꽃무늬지네
모래마저 금 같은 바닷가에서


매거진의 이전글 볼품없어도 계속 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