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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슬킴 Mar 16. 2022

잘 못한 건 없지만 미안해.

_ 헉! 허를 찔리다.

희승이는 13살! 벌써 13살이라니 믿기지 않는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된 희승이는 요즘 학교 다니는 맛에 푹 빠졌다. 4, 5학년은 코로나로 학교를 다니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이제는 일주일에 두 번 자가 키트로 코를 후비고 괜찮으면 그냥 등교를 한다. 긴 단발이 된 그는 아침마다 깨끗이 씻고 머리를 곱게 빗고 옷을 입은 후 거울을 보며 자신을 살핀다. 왼쪽 오른쪽으로 포즈를 취해가며 곱디곱게 몸 매무새를 단장하는 희승이를 보고 있으면 웃음이 절로 난다.


이직을 준비하며 잠시 쉬고 있는 동안 나의 스트레스는 희승이를 향한 잔소리로 터졌다. 내가 미쳤다 싶을 정도로 지랄을 하곤 했다. 그렇게 잔소리를 해댄 지 일주일이 되던 어제였다. 나는 또 지랄을 해댔고 희승이는 내가 조금 진정된 후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잘 못한 건 없지만 미안해." 이렇게 말하며 내 등을 쓰담 쓰담해주고 나갔다. 허를 찔리고 말았다. 할 말이 없었다.


희승이랑 대화가 통한다고 생각하게 된 어느 순간부터 (나의 아가였던 희승이는) 친구보다 더 편한 사람이 되었다. 아니 친구라고 하기에는 너무 막대했던 것 같다. 지랄을 해 놓고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누구한테 이렇게 막대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후회를 한다. 존중해주고 싶다. 사람 대 사람으로서.



13살이 된 희승이에게

안녕! 희승아. 막상 너에게 편지를 쓴다고 생각하니 무슨 말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 깨우지 않아도 7시면 벌떡 일어나 깨끗하게 씻고 학교 갈 준비를 하는 너를 보면 참 기특해. 이제 이런저런 너의 취향이 생겨서 내가 하는 말들이 더욱 잔소리로 들릴 테니 나는 앞으로는 되도록 너의 의견을 따를게. 하지만 건강에 문제 되는 행동들만 조금 조심해주면 좋겠다. -양치 깨끗이 하기. 자세 바르게 하고 컴퓨터 하기. 핸드폰 적당히 보기. 손발 깨끗하게 닦기.- 이 정도는 너도 지켜줄 수 있겠지? 공부는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스스로 알아서 하길 바란다. 학원에 다니길 바란다면 그렇게 해도 좋아. 그것보다는 몸도 마음도 건강했으면 좋겠다. 우리가 바라는 건 그것뿐이야. 네가 자라는 만큼 바라는 게 살짝 커지는 부분도 있는데, 우리는 무조건 네가 원하는 방향을 향해서 함께 고민해 볼 거야. 책은 좀 읽었으면 좋겠지만 그것도 네가 하고 싶어야 하는 거겠지. 아직 늦지 않았으니 같이 읽어보자. 엄마도 사실 책이랑 별로 안 친했어. 스무 살이 넘어서 책 읽기 시작했거든. 그것도 별로 많이 읽지도 않았고.. 그러니 모든 게 다 내 욕심이야. 나도 잘한 거 하나 없으면서 말이야. 모든 부모들의 바람처럼 나보다는 훌륭한 사람이 되길 바라는 걸 테지. 이희승! 다른 거 다 필요 없고 우리 같이 건강하자.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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