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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슬킴 May 04. 2023

부탁을 거절하겠다.

* 주의 : 거절하면 절교가 따라올 수 있음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을 해야만 한다. 부탁을 거절하는 것도 선택이다.


예전에는 어떤 부탁이든 바로 거절하지 못하는 내가 싫었는데 그게 내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누군가 나에게 부탁을 했을 때 부드럽게 거절할 수 있고, 내가 거절을 하면 되려 자신의 부탁을 미안해하며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상대가 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떠올려보니 모두 그런 사람들이다. 거절을 하지 못했던 것이 다 내 탓은 아니었던 것이다. 거절한 후에 사이가 멀어졌다면 차라리 잘 된 일이다.


내가 거절을 하지 못했다는 것은 그 사람이 차후 어떻게 행동할지가 보였기 때문이거나 강자와 약자의 상태였다. 이른바 그자의 성미에 거슬려 거절한 내가 민망했던 적도 있다. 엄마가 강압적이면 아이들은 순종적이다. 아이가 자신의 생각이나 부모가 틀렸을 때 할 말을 다 한다면 건강한 사이라고 볼 수 있다. 내가 부탁을 들어주지 않아서 사이가 틀어졌다면 건강한 사이가 아니다. 개인적인 부탁뿐만 아니라 업무적인 부분에서도 무리한 부탁은 무례한 것이다. 시도 때도 없이 자신의 일을 남에게 떠 넘기면서 부탁한다고 말하는 것은 명백한 괴롭힘이다.


어린 시절 거절하지 못해 생겼던 수많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학창 시절에 친구들의 부탁은 잘 거절했던 것 같다. 그만큼 건강했던 사이가 아닐까?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친한 사이나 가족의 부탁을 거절하는 것이 오히려 어려웠던 것 같다. 그게 부탁인지 모를 것들을 강요받고 거절하지 못하고 질질 끌려 다니던 10대, 20대를 보내고 내 속은 곪아버렸다. 서른 살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보니 누군가의 부탁이나 제안을 들어줄 에너지가 바닥이 났다. 더 이상 불편한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지 않았다. 그건 그 사람들이 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며 감정을 쏟아내는 '무언의 부탁'을 '거절'하겠다는 다짐이었다.


그 후 내 삶의 질이 달라졌다. 내가 나를 위하는 시간이 길어졌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위로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 한참을 침대에 누워만 있었다. 지금 돌아보니 지친 심신의 위로였다. 친한 친구들이 많아야 좋은 줄 알았던 시절, 오랜 친구는 무조건 끌어안고 가야 한다고, 그게 의리라고 생각하던 시절에 다 써버려 바닥난 에너지를 쉬면서 채워나갔다. 내 옆에는 그런 나를 그저 바라봐주는 짝꿍이 있었고, 나를 보며 생글생글 웃어주는 내 아이가 있었다. 오랜 시간 천천히 충분한 위로를 받았고 나는 스스로 깨어났다.


책을 읽고, 걷고, 그림을 그리며 시간을 보냈다. 점점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평생 'E'로 살던 나는 한참을 혼자 지내고 보니 나란 사람이 'E'가 아닌 'I'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지낸 지 10년이 넘은 지금은 그 좋아하던 술도 끊었다. 누군가를 만나면 무조건 마시던 술, 그 지긋지긋한 술과도 작별을 했다. 이제는 더 이상 인간관계에 목메지 않는다. 친정, 시댁 식구들과도 적당한 거리를 두며 지낸다.


가끔은 사람이 그리울 때가 있다. 그러나 차라리 고요함을 선택하겠다. 부탁을 거절하면서 생긴 고요함을 유지해 나갈 것이다. 나는 더 이상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다. 더욱 당당하게 내가 원치 않는 부탁을 거절하며 살 생각이다. 안녕! 세상의 모든 불편한 부탁들아!


선택은 내가 해! 니 부탁은 네가 가져가!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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