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여름의 끝? 혹은 초가을?
마트에서 간단하게 장을 보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었다. 80살은 훌쩍 넘으셨을 것 같은 노부부를 봤다. 두 분은 손을 꼭 잡고는 열 발걸음쯤 가시다가 걸었던 시간만큼 멈춰 쉬시고, 다시 열 발걸음 가고 다시 멈추고 그렇게 느리게 집으로 가고 계셨다. 할머니가 할아버지의 걸음에 맞추고 계신 건지 할아버지가 할머니의 걸음에 맞추고 계신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냥 두 분은 무척 자연스럽게 걷고 멈추고를 반복하셨다.
어느 날부터 꽃이 예뻐 보이기 시작했고, 가을 단풍이 찬란하게 빛나 보였다. 손을 잡고 걸어가는 노부부를 보면 눈길이 갔다. 부부가 꼭 손을 잡아야 하는 건 아니지만, 손을 잡은 모습을 보면 한참을 서서 바라보곤 한다. 어릴 적 할머니와 함께 살아서인지 할머니들에게는 각별히 정이 간다. 이야기를 나누고 싶고, 지나온 세월을 듣고 싶다. 저기 가는 노부부는 어떤 세월을 살아오셨을까. 두 분은 어떻게 만나셨고 어떤 사랑을 하셨을까? 정말 궁금하다.
나에게도 저런 행운이 올까?
70살이 넘고, 80살이 넘게 살고 있을까? 사랑하는 가족, 친구들과 그때까지 함께할 수 있다면 정말 인생에 그런 행운이 어디 있을까?
가을이 지나가고 있다. 세상을 온통 물들이고 있다. 산책을 하러 나가면 사진을 찍느라 바쁘다. 너무 예쁘다. 정말 아름답다. 설악산, 북한산에 가지 않아도 동네에서 즐기는 단풍놀이는 매일이 즐겁다. 초록과 함께 점점 물들어가는 단풍, 나는 인생의 지금쯤을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여름이 지나가고 가을이 물드는 시기를 지나가고 있을까? 딱 이렇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런 것 같다. 아주 가끔은 열정이 넘치고, 가끔은 차분하게 나 자신을 바라볼 줄 아는 나이가 되었다. 한참 부족하지만 익어가고 있는 중이다. 익어가기 시작했다.
42살 김슬한의 인생은 어디쯤 왔을까?
분명 활활 타오르던 시간은 지나갔다. 그렇다고 아직 미지근해진 건 아니다. 뭐 어디쯤이라고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뜨겁지 않은 여름의 끝이고 싶다. 불타지는 않지만 아직은 청춘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