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화장실
가만히 앉아 시 읽기를 좋아한다. 소리 내어 읽는 것도 좋아하는데 가끔 녹음을 하기도 한다. 나는 시가 참 좋다.
어릴 때도 동시를 많이 읽었다. 아빠가 어디선가 얻어온 명작동화 전집이 총 62권이었는데 61, 62권은 동시집이었다. 그 두 권의 책은 내 차지였다. 자주 읽으면서 음을 붙여가며 노래 만들기 놀기도 했다.
처음엔 책장 곳곳에 시를 붙여놓았지만 잘 읽게 되지 않았다. 생각 끝에 화장실에 붙여보았다. 역시 화장실은 사색의 공간이다. 자연스럽게 시를 읽게 된다. 대체적으로 짧은 시나 동시라서 큰일을 볼 때면 반복해서 읽게 된다. 그날그날 꽂히는 구절이 있으면 소리 내어 읽어보기도 한다. 시인이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도 곰곰이 생각해본다.
우리 집 화장실에 시가 걸린 지 벌써 3년이나 되었다.
내가 좋아서 시를 붙여놓았지만 내심 희승이도 쿠리도 읽기를 바랐다. 굳이 읽어보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한 번에 10개 정도의 시를 미리 뽑아놓고 내 기분에 따라 시를 넘긴다.
희승이는 어릴 때부터 "엄마! 나 똥 쌀게!" 이렇게 말하고 들어가서 똥을 눈다. "엄마! 나 똥 마려워."라고 말하면 기다리다가 똥을 닦아주던 시절을 보내고, 본인이 스스로 똥을 닦게 되었을 때부터 똥누기 보고를 꼭 한다. 이제 12살이 되었는데 여전히 꼬박꼬박 보고를 한다. 똥을 다 누고 나오면 똥의 형태나 색까지 상세히 보고한다. (응... 그래. 조금 더럽지만 건강한 상태를 알 수 있다고 생각할게.)
뭐가 바빴는지 같은 동시가 꽤 오래 걸려 있었을 때다. 희승이가 똥을 누러 들어가서는 화장실 문을 빼꼼히 열고 말한다.
"엄마! 시 좀 바꿔줘. 다 외우겠어!"
아! 희승이도 읽고 있구나. 괜히 기분이 좋았다. 같은 시를 오랫동안 걸어뒀던걸 그제야 깨닫고는 노트북을 켜고 동시를 찾는다. 다시 열개 정도의 시를 화장실에 들인다. 새로운 시를 읽으니 기분이 좋다.
한동안 우리 집 화장실에 걸려있던 동시인데, 오정택 작가의 그림과 김개미 작가의 글이 참말로 잘 어울린다.
동시집에 그림 삽화 작업을 하고 싶다. 재미있는 동시를 쓰고 싶다. 아주 가끔씩 나만 볼 수 있는 부끄러운 시를 쓴다. 열심히 쓰고 그려야지! 내 동시에 내 그림이 그려진 동시집을 꼭 발간해야지! 당장에 동시를 한편 써봐야겠다.
(덧)
2020년 한 해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과
모든 지구인들이
건강하게 2021년을 맞이하시길!!!!!
몇 번을 들어도 기분 좋은 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