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자, 흰자, 껌뻑이는 물고기 한 마리. 지느러미를 움츠렸다 편다. 분명 작년까지는 얕고 짧았다. 그런데 어느새 그랜드캐니언보다 깊고 거대한, 눈가의 세 갈래 주름을 중심으로 가지를 뻗쳐나가는 계곡으로 변해버리다니. 슬프다. 진갈색 눈동자는 큼직한 눈과 날카로운 눈매 덕에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나와는 전혀 닮지 않았다. 아버지와 나를 좌우, 위아래 휙휙 번갈아 비교하는 어른들은 여지없이 “너 외탁이구나”하는 식으로 한 마디 거든다. 이미 쳐진 내 눈꼬리는 그럴 때마다 한 번 더 푹 주저앉고야 만다. 눈뿐만이 아니다. 손아귀만 보더라도 과장 조금 보태 아버지의 손가락은 그 두께가 족히 내 두 배는 되며, 진한 갈빛을 띈 손등에는 정맥이 탐실하게 툭툭 드러나 있어 남성스럽다. 그러나 적어도 이러한 측면의 터프함은 애초에 주어졌다기 보다는 공사판에서 이십여 년 현장감독 일을 하며 얻어진 것이리라.
까무잡잡한 피부 외에 또 하나의 ‘얻어진 것’은 ‘말’이다. 거친 사람들을 상대하는 아버지의 거친 말은 때때로 높은 어조와 반박자 빠른 탄식으로 내 마음 속 황량한 벌판을 다그닥다그닥 내달린다. 아버지의 우악스러운 말과 평생 같이 해 오신 어머니도 이제는 종종 같은 리듬으로 격렬한 발굽자국을 내게 새겨놓으신다. 단단한 몸을 가지고 있지는 못하지만 사뭇 아버지의 모습을 구석구석 빼닮은 남동생에게서도 역시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그렇다고 딱히 내가 다르다는 건 아니다. 나 스스로의 소란스러움에 질려 귀를 틀어막고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무슨 대화든 격렬한 어조로 주고받을 수밖에 없는 우리 가족. 어조가 격렬하다보니 저녁밥상의 대화는 뜨문뜨문 간헐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저 밥을 먹고 있을 뿐인데 숨이 막히고 목이 아파온다. 아, TV를 보며 조곤조곤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집이란 그저 꿈같은 이야기일까. 나는 단지 그런 이유로 집으로부터 도망쳐 나와 서울의 조그만 고시원에라도 몸을 누이고 싶어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버지 눈가의 지느러미는 속절없이 깊어지고 길어져 간다. 홀로된 말이 어디로도 달리지 못하고 콧김만 씨익씨익 뿜고 있는 날도 눈에 띄게 잦아졌다. 거실을 지키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외우고 있는 TV 프로의 시간대와 채널 번호의 가짓수도 많아졌다. 예능 프로의 웃음소리와 아버지의 목소리가 섞여 쩌렁쩌렁하게, 그러나 외롭게 거실을 울릴 때면 나는 괜히 화장실 변기를 머쓱하게 쳐다본다. 신문지가 변기 아랫벽 부터 바닥까지 틈새를 두지 않고 꼼꼼하게 깔려있다. 아롱이는 그 위에 용변을 보곤 “나 제대로 잘 눴다”며 자랑스레 꼬리를 촐랑이며 달려온다. 아버지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목덜미를 “어이구 잘했네”하며 쓰다듬어 주신다. 귀하게 키워진 탓에 은혜도 모르고 곁조차 잘 주지 않는 아들놈보다 훨씬 인간적이고 기특했던 그 놈은, 애석하게도 짤막한 다리로 작년에 그 머나먼 곳으로 잘도 떠나가 버렸다.
느즈막한 아침, 가족들이 전부 출근해버리고 텅 빈 거실에 남아있는 흔적을 시선으로 하나하나 만지작거려본다. 구석구석을 살펴보다가 마땅한 문장이 떠오르지 않아 커다란 러그 위에 대자로 누워본다. 이렇게 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 천장을 보고 있으면 아직도 아롱이가 내 배 위로 튀어오를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그 위로 문득 아버지의 좁아지는 땅과, 거칠고 힘찬 말과, 그 숨결 따위가 함께 떠오른다. 그러나 아버지의 말이 불현듯 멈추는 날, 그 말이 내게 더 이상 숨 막히는 장벽이 아니게 된다면, 그 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직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나는, 그저 두렵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