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로 보내야 했던 친구에 대한 그리움은 생각보다 컸는지, 친구가 죽은 지 5년이 지난 뒤에도 친구의 기일이 다가올 때면 친구에 대한 생각 때문에 우울해져 있었다.
그런 내가 친구를 마음에서 떠나보낼 수 있게 된 계기가 있었다.
평범한 인간인 나의 가장 친한 친구 두 사람 덕분이다. 아니, 이제는 자매라고 생각해도 될 정도로 가까운 두 사람은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한 명은 김보살(*별명) 다른 한 명은 김애동(*별명)이다. 김보살은 어려서부터 남들이 보지 못하는 존재를 보았고, 김애동은 말 그대로 몇 년 전 신을 받은 애동인 친구다.
그날도 친구의 기일이 다가와서 내가 울적했던 때였다. 김애동이 나를 보더니 말했다.
"친구 생각 그만해. 죽은 사람을 그렇게 자주 생각하면 그 사람이 걱정돼서 다시 내려와. 좋은 곳에 올라가 있는 친구가 너 때문에 계속 내려오잖아."
순간 누가 머리를 망치로 내리친 것 같았다. 한 유명 만화에서 나온 유명한 말이 있다. ‘정말로 죽었을 때는 누군가에게 잊힐 때’라고. 사실 나는 누군가 죽었을 때, 사람들에게서 잊히는 게 제일 슬플 거로 생각했다. 사후 세계를 온전히 믿지는 않았지만, 혹시라도 사후 세계가 있다면 모두가 자신을 잊었다고 생각할 때 친구가 슬퍼할 것 같다고 생각해 더 필사적으로 그 친구를 잊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그게 친구를 더 힘들게 하는 거였다니.
충격받은 내 모습이 안쓰러웠던 것일까. 갑자기 김애동이 나의 손을 꼭 잡으면 말했다.
"내가 귀 뚫어준 거 관리 좀 해. 제대로 관리 안 해서 더러워. 그리고 나 걱정하지 마. 잘 있어."
‘지금 내가 들은 게... 뭐지?’
걱정되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김애동을 그저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나는 금속 알레르기가 있는데 특히 귀 부분은 그 정도가 심해서 알레르기에 괜찮다는 피어싱 소재도 염증이 났고, 금으로 하더라도 14K는 맞지 않았다. 피어싱을 좋아해서 귀걸이를 바꿀 때마다 염증 때문에 고름이 나는데도 계속 귀걸이를 하고 다녔던 나는 결국 귀 뚫었던 것을 막았었는데, 단 한 곳만 그대로 막지 못하고 둔 곳이 있었다. 바로 귓바퀴 쪽에 뚫은 곳. 이건 죽은 그 친구가 직접 뚫어준 것이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염증이 심하진 않아서 아주 살짝만 거슬리기 때문에 막지 않고 있었는데, 뚫을 당시 카페에서 둘이 놀다가 저번에 내가 귀 뚫는 거 이야기했던 것이 생각나서 자기가 귀 뚫는 금귀걸이를 가져왔다면서 뚫어주었던 것이기에, 이곳을 그 친구가 뚫어줬다는 사실은 둘만 아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그걸 김애동이 갑자기 이야기한 것이었다.
머릿속이 정리되자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잠시 후 김애동이 갑자기 몸이 뺏겼다면서, 그 친구가 내 걱정을 너무 많이 하다못해 김애동의 몸에 들어온 것 같다고 그랬다. 고맙다고 말하는 나에게 이번 친구 생일 때 찾아가는데 배고파한다고, 초콜릿을 좋아했던 것 같은데 초코찰떡 먹고 싶다고 하니 사가라고 했다.
그 말에 피식 웃고 말았다. 그 친구가 밥 대신 초콜릿을 먹어도 괜찮다고 했을 정도로 초콜릿을 좋아했던 친구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즉시 초코찰떡을 찾아 찜을 눌러두었다.
몇 달 후, 그 친구의 생일이 다가오고 김보살과 함께 친구에게 가는데 김애동이 전화 와서 빨간 장미도 사서 가라고 했다. 친구가 빨간색을 좋아했던 터라 빨간 장미도 받고 싶나 보다 생각하며 급하게 주변 꽃집을 검색했다. 다행히 빨간 장미는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꽃이라 그런지 쉽게 구할 수 있었다. 그렇게 빨간 장미와 초코찰떡을 가지고 친구에게로 갔다.
친구가 잠들어있는 납골당. 그 안에 들어서자 친구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 했던 그날들이 다시 떠오르기 시작했다. 친구의 납골함 앞에 초코찰떡을 내려놓고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아 바라보며 주저리주저리 이야기하는데, 김보살이 내 옆에 친구가 서 있다고 했다.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옆에 친구가 와 있다는 말을 들으며 참 마음이 편해졌다. 한결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생전에도 멀리서 내가 보이면 내 이름을 부르며 달려와서 내 품에 폭안기던 사랑스러운 친구였다. 그래서일까, 친구에게 농담으로 ‘열심히 너의 힘을 쌓아 로또 번호를 알려달라.’고 하니 친구가 어이없어하고 있다고 김보살이 알려 줬다. 그 표정이 눈앞에 그려지는 것 같아 웃고 말았다. 친구의 납골함 앞에서 웃으며 말할 수 있는 나를 보며 내 마음속에 있는 갈고리가 빠져나왔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 뒤로 친구를 생각하는 날은 줄었지만, 그래도 1년에 한 번은 시간 내서 찾아가려고 하고 있다. 김애동이 친구 바쁘니까 가지 말라는 날은 안 가는데, 올해가 바로 그런 해다. 이번에는 친구에게 찾아가지는 않지만 그래도 친구에게 나 잘 살고 있다고 이야기는 마음속으로 전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