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말했듯이 김보살이라는 친구는 어렸을 때부터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았었다. 20대 초반 때는 자신도 모르게 사람들이 줄줄 읽혀서 사람들의 점을 봐주곤 했더란다. 정말 잘 맞춰서 무당을 전혀 믿지 못하던 사람도 완전히 따를 정도였다고. 하지만 아무것도 배운 것이 없기에, 그만 말하면 안 되는 것을 말하면서 일명 신벌을 받게 되었다. 입밖에 그 말을 말하는 순간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주워 담을 수 없는 말이었다.
신의 벌로 인해 김보살은 한동안 보이던 것이 잘 보이지 않았었다. 그 당시 김보살은 '안 보이면 마음이 편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불안하다.' 라고 했다. 하지만 다행히 차차 다시 눈이 트이기 시작했고, 지금은 잘 보고 있다.
그녀의 눈엔 참 많은 것들이 보이는 것 같다. 사실 처음 김보살이 바라보는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그냥 ‘그렇구나’라고 생각만 하고 잘 믿지는 않았다. 나에겐 보이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김보살 성격이 거짓말은 못 하는 성격이고, 같이 길을 가다가 깜짝깜짝 놀라는 모습이 거짓으로 보이진 않아 그 눈에 무엇이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무언가 보곤 놀란 건 사실이라고 믿었다. 그렇다고 귀신이나 신을 본 거라곤 100% 믿지 않았다.
그런데 늘 귀신을 보며 깜짝 놀라던 그녀가 하루는 ‘우와~’하면서 감탄하는 모습에 호기심이 동했다. 무슨 일이냐는 말에 커다란 강을 따라 엄청나게 큰 황룡이 있다고 말해줬는데, 그 모습을 볼 수 있는 김보살이 부럽다는 생각을 잠깐 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혹시라도 정말 다른 무언가가 보이는 거라면 아름다운 다른 존재도 볼 수 있지만, 무서운 존재도 보일테니까.
그런데 신기한 것이 김보살은 귀신만 볼 줄 알지 점사를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신벌을 받은 이후 타로로 점을 봐주곤 했었는데, 그게 잘 맞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부터 안 읽힌다고 했다. 그래서 이제 점사같은건 못 보겠다며 아예 그쪽은 신경도 안 쓰기 시작했다.
김애동도 같이 어울리는 친구인데, 애동이라고 했지만 원래 이 친구는 그냥 사람의 관상을 잘 볼 줄 아는 친구였다. 사람의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이 읽혀서 힘들다며 고충을 토로하곤 했었다. 이런 그녀의 특성 때문인지 같이 TV를 보면 출연한 연예인들에 따라 '아오, 더러워서 못 보겠네.' 라며 채널을 돌려버리기도 했다. 그럼 언제가 되던 그 연예인에 대한 나쁜 소식을 연예면에서 볼 수 있었고, 그 기사들을 보면 김애동의 찡그렸던 표정이 떠오르곤 했었다. 가끔 내가 좋아한 연예인에게 그러면 속상하기도 했다...
그런 김애동이 갑자기 신을 받게 되었다. 정말 큰 신이었는데, 신을 받을 신줄이 있는 것도 아닌데 김애동의 몸에 반강제로 내려오셨단다. <내림굿>이라는 걸 해야 신을 받을 수 있는 건 줄 알았는데, 전혀 그런 것 없이 왔다고 해서 신기했다. 귀신을 보는 것도, 평소 무당에 관심이 있던 것도 아니었던 김애동에게 내린 갑작스러운 신내림. 김애동은 한동안 방황하기도 하고, 힘들어했다. ‘왜 내게 신이 온 거지?’ ‘이 신을 따라야 하는 건가?’ ‘신님이 갑자기 떠나시면 어쩌지?’등, 각종 고민 속에 살던 김애동은 2년 정도 지나서야 무당으로 살아야 하는 자신을 받아들이게 됐다.
그리고, 일은 그렇게 생기게 됐다.
(**신의 이야기를 하지만 그 신이 어떤 신님인지에 대해 이름은 말하지 않겠다)
김애동 속에 있는 신님이 과거 김보살의 몸속에 있었던 신을 알아본 것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동급의 신이라고 했다) 이후 그 신에게 찾아가 자신은 돌봐줄 애가 생겼는데, 너는 이제 없다면서 놀렸더란다. 그래서 놀림을 받은 그 신님이 다시 김보살을 바라보았고, 막힌 줄 알았던 신줄이 다시 연결되어 있어 그대로 김보살에게도 내려왔다. 김보살은 갑자기 보이는 점사에 당황하고 힘들어했다. 이미 무당의 길이 아닌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고, 무당의 길로 가고 싶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김애동의 신님은 김보살에게 ‘너의 신이 너를 매우 애틋하고 아낀다.’고 전해 주었지만, 김보살은 고개를 저었다. 죄송하다고 이제 받을 수 없다고 말하는 김보살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리고 김보살의 말에 다시 돌아온 신이 펑펑 울고 계신다고 했다.
김보살에게 돌아온 신은 원래 큰 신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이름이 알려진 신이었는데, 점점 사람들에게 잊히며 힘을 잃어버렸다고 했다. 그리고 그 신에게는 김보살이 이 시대에서 유일하게 내려갈 수 있는 아이였던 것이었다.
김보살과 김애동은 마주 보고 앉았고, 나는 옆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계속해서 김보살의 옆에서 신이 이야기하시는지, 김보살은 강경하게 죄송하다고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 모습에 신님이 결국 포기를 하셨는지, 신벌이나 때리는 것 없이 마지막으로 절을 받고 떠나겠다고 하셨더란다.
나의 추측이지만 김보살을 매우 아끼기도 했고, 김애동의 신님이 신벌 같은 걸 못 내리게 막고 계셨던 것은 아닐까.
그렇게 김보살은 신이 서 계시는 방향을 향해 동작 하나하나 신중하게 절을 올렸다. 무릎을 꿇는 것부터 고개를 숙여 손을 올리는 것까지. 그때 김보살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그 절을 올렸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때 옆에서 바라보는 나는 왠지 모를 슬픔이 덮쳐와 울컥한 마음이었다. 어쩌면, 자식을 떠나보내는 신의 슬픔이 우리 집을 가득 채웠기 때문이 아닐까. 그저 곁에서 느끼는 슬픔이 이 정도라면, 신의 슬픔은 얼마나 깊은 것일까.
그렇게 한참 동안 그 자세로 있던 김보살이 일어나며 눈물을 흘렸다.
“엄마를 잃은 기분이 이런 건가 봐.”
신을 떠나보내는 게 이렇게 슬퍼질 줄은 몰랐다고 했다. 신님이 내내 자신을 끌어안고 울고 계셔서 더 슬펐다고. '너무 슬프면 다시 불러줄까?'라고 묻는 김애동에게 김보살은 고개를 저으며 안된다고, 그러면 안 된다고 말하며 한동안 울고 있었다.
그리고 아직, 그 신줄이 제대로 닫히지 않아 김보살은 신줄을 닫기 위해 종교를 갖고 그 종교의 일원으로 인정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예를 들어 개신교나 천주교의 세례를 받는 것 같은. 세례를 받으면 그 신으로부터 자신의 아이라고 인정을 받는 거라고 했다. 그래서 김보살은 과거, 점사가 안 나와 신이 떠났다고 생각하던 시점부터 믿고 있었던 종교에 일원이 되기 위해 노력할 거라고 했다. 그동안은 김애동의 신님이 신줄을 막아주고 계실 거라고 하셨다. 하지만, 오랫동안 잡고 있을 순 없으니 최대한 빨리하라며, 만약 이번에 신줄이 연결되면 자기도 어떻게 해줄 수 없다고 단단히 일러주시고는 가셨다.
김보살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옆에서 3인칭 시점으로 지켜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