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살의 어머니가 기도를 다니기 시작하시면서 이상한 일이 생겼다. 어머님의 몸에 있어야 할 동자가 김보살의 몸에 종종 찾아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동자가 오는 걸 알게 된 것은 내가 다른 친구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그 친구에 대해 전혀 모르는 김보살이 그 친구의 고민거리와 먼저 해야 할 일에 대해서 말해준 적이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도 특정 누군가를 말하면서 이 사람을 혼자 만나면 내가 크게 아프게 될 거라고, 꼭 다른 누군가와 함께 만나라는 조언도 해주기도 했고, 며칠 동안 두통으로 좀 예민했던 때에는 귀신이 내 어깨에 앉아서 머리를 때리고 있다고 해서 김애동이 없애기도 했다.
그 동자는 계속 김보살에게 점사를 보여주곤 했었는데, 그럴 때마다 김애동의 신님이 나타나서 그러면 안 된다고 가르쳐 줬다. 동자님이 계속해서 점사를 보여주면 신줄이 다시 연결 때문이라고 했다.
김보살이 신을 받고 싶지 않아 하기 때문에 신님이 신줄을 틀어막고 있는데 그걸 연결하면 안 된다며 가르쳐주셨다. 이게 흔한 일인지 모르겠지만, 김보살은 신줄이 2개인데 하나는 떠나보낸 신님 것은 김보살이 열심히 노력해서 막아야 하는 거고, 다른 하나는 김보살의 어머니께서 기도를 잘해서 대신할머니가 위로 올라갈 수 있게 된다면, 막아주신다고 했다.
그래서 최종적으론 점사를 보지 않는 대신에 동자가 김보살의 몸에 들어와 간식(?)을 먹는 걸 허락해 줬다. 하지만 동자님은 왜 안되는지에 대해 이해가 잘 안 되는지, 아니면 점사라는 것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모르시는지 계속해서 김보살에게 다른 점사를 보여줬는데, 계속 점사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설명하다 지친 김애동이 동자를 보살피는 선녀를 불렀다. 그와 동시에 김보살의 몸이 축 처지고 목소리가 한없이 가라앉았다. 두 다리는 하나로 모아 인어공주처럼 가지런히 두었고, 어깨는 축 처져서 더 좁아 보였으며, 김보살의 얼굴에 피로감이 뚝뚝 묻어났다. 그 모습을 보며 김애동의 입을 빌려 신님이 말했다.
“왜 동자 교육을 잘 안 하고 그래?! 애가 점사가 뭔지도 모르잖아!”
“기억을 못 해요... 한 100번은 더 말해줬는데 기억을 못 해요...”라며 자포자기한 목소리로 말했다.
목소리에도 몸짓에도 힘이 하나도 없는 그 모습이 육아와 일에 찌들어있는 현대인의 모습인 것 같아 동질감이 느껴졌다... 그 모습에 신님이 안쓰럽다고 생각했는지 뭔가 먹고 싶은 건 없는지 물었지만, 선녀는 그저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기는 김보살 어머니가 올려준 복숭아 하나만 먹으면 된다고 했다. 그리고는 잠시 신님을 바라보다가 그대로 자리를 잡고 크게 절을 올렸다. 김애동은 자기에게 절하는 선녀의 모습을 보며 울컥해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리고 자세를 바로 한 선녀는 그대로 동자님을 데리고 김보살의 몸을 떠났다.
이후로 동자님은 하루에도 두세 번 정도 김보살의 몸에 들어왔다. 나중에 물어보니 용궁동자라고 했다. 그것도 용왕님의 아들. 다이아몬드 of the 다이아몬드 수저였다. 그러면서 공부는 하기 싫다고, 매우 진저리를 치셨다.
동자님은 우리 동네에 있는 카페의 치즈케이크를 엄청 좋아했는데, 치즈케이크를 사놓고 드시러 오시라고 하면 오셔서 신나게 드시고는 '그럼 안녕~~' 하고 양손으로 손을 흔들고 가신다. 초코를 좋아한다는 말에 생초콜릿을 사서 드렸더니 생초콜릿이 1등이라며 그 뒤론 치즈케이크와 생초콜릿을 드시고 가셨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오레오 치즈케이크도 사드렸는데, 마음에 드셨는지 먹으면서 연신 감탄을 하셨다. ‘오레오’라는 이름을 외우기 힘든 건지 까만 치즈케이크라고 말했는데 나중에 잘 올라간 뒤 다른 엄마를 만났을 때 이 케이크를 먹을 수 있도록 열심히 ‘오레오’를 알려드렸다. 그래서 이제는 ‘오레오 치즈케이크’를 잘 아실 거다.
난 초콜릿으로 된 다양한 간식들을 사서 최대한 동자님이 올라가기 전 맛있는 것을 많이 먹고 살 수 있게 더 챙겨주려고 했는데, 처음 우리 집에서 간식을 먹었던 날 했던 말 때문이었다.
"엄마가 우리를 좀 더 사랑해 줬으면 좋겠어..."
자신들을 잊고, 부정만 하는 김보살의 어머님을 보며 이 신들을 매일매일, 그렇게 수십 년 동안 상처를 받아 왔던 것이다. 그 부정에 점점 힘을 잃어가면서도 김보살의 어머님을 변호하는 모습을 보면 너무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은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인간이라는 존재를 사랑해 주시는지를 물어본 적이 있는데, 김보살은 이유를 알지만 말해줄 수 없다고 했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많지만 알려지지 않는 것은 그 사람들도 말하면 안 되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궁금하지만, 그 궁금한 마음은 마음속에 고이 넣어두고 신들이 베풀어주는 사랑을 잘 받기로 했다.
어느 날은 김보살의 어머님의 기도가 다시 헤이해 졌던 것인지 김애동이 표정을 찡그리며 말했다.
“어머님 오늘 기도 제대로 안 하시는데?”라고.
그런데 그 말을 들은 동자님은 바로
“아냐! 우리 엄마 잘하고 있어! 오늘도 잘했어!”라면서 열심히 변호했다.
이후 거짓말하지 말라는 신님의 말에 동자님이 몸을 잔뜩 웅크리면서 엄마가 잘못하긴 했다며 웅얼거렸다. 그리고는 당찬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힘을 쓸게! 내가 도와줄게!”
“그러다 너 올라갈 때 흐물흐물해서 올라가려고? 그러려고 내가 너희들 도와주니?”
큰할머니께서 동자님의 말에 분노했다.
“나는 그래도 괜찮아...”
동자님은 작게 말했다. 하필, 동자님과 마주 앉아 있던 나는 동자님의 표정과 행동을 정면에서 볼 수밖에 없었는데 자신이 힘들게 될 것임을 알면서도, 그것을 외면하며 말하던 모습. 나는 그만 울컥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MBTI는 ISTJ, T가 90%에 가까운 현실 of the 현실적인 내가 이 비현실적인 상황 속에서 눈물까지 흘렸다는 게 참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그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져 와 차마 거짓이라 느끼기엔 힘들었다. 그래서 더 안쓰럽나 보다. 어쩌면 일개 인간인 내가 신을 안쓰러워한다는 게, 신들의 입장에선 어이가 없는 일이겠지만 그래도 더 챙겨드리고 싶다는 마음만 받아주시길 바란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모습에 너무 마음이 풀어져서는 안 되는 걸 알게 된 사건이 있었다. 언젠가 같이 TV를 보고 있는데 동자님이 김보살에게 케이크 먹고 싶으니 가겠다고 했었나 보다. 그런데 요즘 다이어트를 한참 하고 있는 김보살이 안 된다고 했는데, 다음날 김보살이 거울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김애동에게 '나 혹시 뭐 이상한 거 붙었어? 생판 모르는 사람들의 점사까지 다 보여. 머릿속에 막 떠다녀'라면서 두려워하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리고 그게 동자님이 한 것이란 것을 알게 됐다. 케이크 먹고 싶다고 했는데 못 먹게 한 김보살을 무섭게 하려고 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이후로 김보살은 동자님이 오고 싶어 할 때 잘 받아주는 것 같다.
동자님은 가끔 요술봉 같은 걸 흔들면서 춤도 추시는데, 늘 우리에게 같이 춤추자고 하신다. 20대 초반 클럽을 다녔던 뒤로 춤을 춰본 적이 없지만.. 최대한 열심히 둠칫둠칫 움직이면 해맑은 표정으로 즐거워하셨다. 그리고 그렇게 동자님이 가고 나시면 김보살은 한동안 현자타임을 갖는다. 그런데... 그럴만하다...
그리고 동자님은 오면 김애동에게 이것저것 가르쳐주기도 했는데, 김애동이 갑작스럽게 신을 받다 보니 신부모도 없어서 신을 모시는 법도, 신을 몸에 받는 법도 잘 몰랐는데 동자님이 그것들을 하나하나 잘 가르쳐줬다. 왜 모르냐는 듯 답답해하다가도 다시 하나하나 차근차근 알려주는 모습을 보면 참 신기했다.
하루는 동자님이 ‘왜 그걸 몰라 멍청아!!!!’라면서 김애동을 혼냈었는데, 자신이 신을 제대로 모시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것과 답답함에 신님 동상 앞에서 기도드리며 펑펑 울었다고 했다. 그래서 신님께 혼났는지 그 뒤로는 예쁜 말로 가르쳐 주시느라 천천히 말을 해주시는데, ‘멍청아!’라고 말하고 싶을 때는 ‘조금 모자란 아이’로 순화해서 말해주셨다.
그런데, 동자님이 가르치는 거에 그다지 재능이 없다 보니 김애동이 이해하는 데 오래 걸렸는데, 그럴 때는 김보살에게 하는 법을 보여주고 김보살이 김애동을 가르치는 방식으로 교육을 진행했다.
재밌는 건 동자님이 그걸 가르쳐줄 때마다 김애동의 옷 스타일을 지적한다는 것이다. 김애동의 요즘 옷 스타일은 정말 짧은 핫팬츠에 반 팔 티셔츠인데, 이건 팬티 바람이라며, 옷을 안 입고 다닌다면서 아무리 예뻐해도 옷은 제대로 입고 다니라고 해야 한다며 신님에게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김보살도 옷을 헐벗고 다닌다며 뭐라 하시다가 평소 긴바지를 입는 나에게는 참하다면서 칭찬(?)하셨다.
최근에는 동자님의 간식을 사려고 이것저것 노력하는 걸 알아주시는 건지 '아줌마'라고 불리던 내가 '누나'로 바뀌었다. 그리고 다른 동자님이 잠깐 왔을 때 알게 되었는데, 용궁동자님과 내가 제법 닮았(?)다고 했다. 다른 동자가 김보살의 몸에 들어왔을 때 나를 보면서 동자가 왜 여기 있냐고 말했었으니까... 용궁동자님도 나와 닮음을 인정했고, 아마 엄마와 아들이라고 해도 주변에서 믿을 거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실제 자기의 누나 중 하나랑 닮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