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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은 Apr 11. 2021

단풍 : 조금 늦어도 문제없어

시간을 흘려보내는 동안, 우리는 붉어지고 떨어진단다. 너는 어떻니



단풍 : 조금 늦어도 문제없어


가을 아침, 가까운 공원으로 나가 만난 단풍들은,  주홍색 붉은색 노란색으로 저만의 색채를 뽐내고 있었다. 


 “
네가 시간을 흘려보내는 동안, 우리는 붉어지고 떨어진단다. 너는 어떻니?”

 

자연은 소리 내 말하지는 않지만, 스스로 색을 변화하고 바람결에 흔들리며 질문을 던진다. 풍경의 물음에, 나는 잠깐 생각을 했다.  

 

올 한 해, 달성하고 싶었던 것을 몇 가지는 달성했다. 

반면 매년 목표로 세우지만 달성하지 못한 목표가 있다. 


가을은 누군가에게는 수확의 계절로 다가오지만 

어떤 이에게는 몰락의 계절로 느껴진다. 

질문에 답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를 쳐다보니 계절을 껴안은 나무들이 잎사귀를 흔들며 압박을 가하는 기분이었다. 

 

단풍나무의 압박면접에 숨을 턱 내쉬며 하늘을 보니, 그의 머리끝이 눈에 띄었다. 

붉은 머리칼 사이로 듬성듬성 초록빛이 보인다. 

마치 뿌리 염색을 할 때가 된 여성의 머리칼 같다. 

 

압박을 가하던 면접관의 희끄무레한 흰머리가 눈에 띌 때 

저 사람도 별수 없는 아저씨야’라는 생각이 드는 것처럼, 마음이 편해진다. 

나무는 내게 약간의 틈을 보인다. 계절보다 조금 늦은 초록빛 잎은 상냥히 내게 말을 건넨다. 

 

아직 11~12월이 남아있어, 나도 너도 붉어질 거야!” 

 

나는 11월 12월이면 자주 함정에 빠졌다.  황급하게 목표를 포기하거나, 갑자기 무언가를 시작하고는 했다. ‘시작’의 근거는 이루지 못한 불만족스러운 목표의 ‘임시방편’이었는데, 그건 좋은 결실을 거두어주진 않았다. 

 

단풍과 이야기를 나눈 지금, 올해가 2개월이 남았다. 2개월이라는 시간은 아직 1년의 약 17%가 남아있는 시간이다. 수치로 보니 많아 보이지는 않는다. 

 

다행히도. 인간이 단풍보다 나은 점은, 붉어지지 않아도 낙엽처럼 떨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나는 단풍과의 대화를 마치고 자리를 나섰다. 지나온 일주일의 날들보다, 남아있는 일요일 오후가 기다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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