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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은 Jun 12. 2021

잠깐 이마 좀 만져봐도 될까요?

불편했던지, 그녀는 손으로 이마를 계속 쓸어내고 있었다.

잠깐 이마 좀 만져봐도 될까요?


“잠깐 이마 좀 만져도 될까요?”


면접자의 이마에 딱 붙은 머리카락 두 세 가닥이 불편해 보였다. 그녀도 불편했는지, 손으로 이마를 계속 쓸어내고 있었다. 내가 면접관으로, 그녀가 면접자로 참여한 자리였다.  


“아 네네”


나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옆으로 살짝 정리해 주었다. 


“거슬렸는데 감사해요.”


눈꼬리가 아래로 휘어진다. 마스크 밑에 숨겨진 입꼬리도 올라갔을 거다. 그 뒤로 우리는 좀 더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긴장감도 머리칼과 함께 가라앉은 느낌이었다. 면접자도 긴장했겠지만 나도 면접관은 처음인 양쪽이 모두 서툰 자리였다. 그래도 그녀의 머리를 정리하고 미소를 나눈 후 수월하게 대화할 수 있었다.

 

내가 건네었던 호의가 그 시간의 긴장을 풀어주었는지는 알 수 없다. 이 글을 적다 보니 ‘화장실에 가서 머리칼 정리하셔도 돼요.’라고 말하는 게 나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강요처럼 들릴 수도 있어서 부담이 되었을 수도 있다. 이처럼 호의나 다정함도 소심한 이가 낯선 누군가에게 쉬이 건네기는 어렵다.


몇 가지 순간들이 떠오른다. 카페에서 내 어깨를 툭툭 치고 내려간 바지의 지퍼를 손가락으로 가리켜 조용히 알려주신 분, 생리가 바지에 묻은 지 모르고 걷던 내게 급히 뛰어와 등을 툭툭 두드린 분.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내자 ‘이상한 사람은 아니고요.. 지금.. ‘ 이라며 친절하게 말해준 분, 그들의 품위 있는 배려 덕분에 나도 조금씩 그 마음을 나누고 있다.

 

일 때문에 유명세가 있는 사람을 몇 번 만났다. 그는 유명세와 상관없이, 항상 유쾌하고 겸손한 태도를 보여주어 만나면 나까지 기운을 받았다. 어느 날은 그와 식사를 하고 있는데, 셰프가 자리로 왔다. 셰프를 본 그는 앉았던 의자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고 너무 맛있다며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그의 움직임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동작이어서 속으로 대단하구나 감탄했다.

 

“정말 맛있어요.”라고 언어로 건네는 것은 무난한 칭찬이자, 충분히 기대하는 리액션이다. 그러나 자리에서 일어나서 박수를 치고 손가락을 추켜 세우는 것은. 리스크가 있는 리액션이다. 내가 한다고 생각하면 어색하게 움직여서 자연스럽지 못해 보일 수도 있고, 상대가 당황할 것을 염려할 수도 있다. 반면 그는 물 흐르듯 일련의 동작을 해냈다. 내게는 하나의 안무처럼 느껴져 여러 번 그려봐야 할 수 있는 동작이다. 그리고 마음은 읽을 수 없지만, 그 모든 반응이 진심으로 보였다. 리액션을 본 셰프의 얼굴에도 웃음이 만개해 내가 칭찬을 받은 듯 기뻤다.

 

누군가에게 칭찬이나 다정을 베푸는 일은, 나에게도 리스크가 오는 일이다. 특히 아직 관계가 형성되지 않은 낯선 이에게 실행할 때는 더욱 그렇다. 친절을 베풀기 위해 용기를 짜내야 하고, 상대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도 받아들일 배포도 있어야 한다. 이는 늘 다정함과 사랑을 받고 자란 사람들이 잘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배워가고 익히는 다정함도 있다. 다정함도 근육처럼 좋은 것을 먹고, 훈련하면 자란다.

  

나 또한 누군가가 건네 준 배려를 먹고, 배려를 베풀기도 한다. 아직은 어설픔과 연기를 두려워하며 머릿속으로 수많은 상상을 하고 움직인다. 실례가 되지는 않나, 무안해하면 어쩌지, 혹시 이거 오지랖인가? 그래도 자연스럽게 무릎을 펴서 박수를 건네는 누군가처럼, 인이 배기듯 자연스럽게 따스함을 건네고 싶다. 받은 고마움들은 머릿속에 꼭꼭 담아 새긴다. 언젠가 다정함의 근육이 단단해질 그날을 생각하며 매일 자그마한 다정함을 주려고 노력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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