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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은 Sep 18. 2021

내년 한가위는 올해 같지않기를

추석 선물을 받는 자세에 대하여


내년 한가위는 올해 같지 않기를


추석을 며칠 앞둔 평일 오후, 퀵 아저씨가 시끄럽게 사무실에 등장했다. 어제는 잼세트가 왔고 오늘은 와인이 왔다. 어제 선물을 한 업체가 또 선물을 보냈다. 혹시 착각해서 두 번 보내신건 아닌가? 


“안녕하세요 과장님~ 아니 어제 선물을 주셨는데 오늘 또 선물을 잘못 보내신 것 같아요!” 

“아 그건 부기님 앞으로 보낸 거고요. 이건 대표님 선물이에요~” 


어휴 뭘 이렇게까지, 잼은 어제 이미 회사에 드렸다. 정말 감사하지만 나중에는 이렇게 신경 써주시지 않으셔도 된다고 인사를 드렸다. 명절이면 회사들 간에 선물이 오간다. 나는 선물을 받을 때의 태도가 어렵다. 너무 고마워하기에도 멋쩍어하기에도 애매하다. 그래서 그저 정중하게 감사를 표하려고 한다. 


어떤 회사는 명절 선물을 아예 받지 않거나, 반품한다. 이전 회사에서 파트너사에 간단한 선물을 보냈다가 반품받은 기억이 있다. 반면 옆자리 직원은 이전 직장에서 하청업체들에게 전화를 돌려 “명절에 무슨 선물을 주실 거냐” 물어보는 일도 해봤었다고 한다. 아무리 윗사람이 시켜서 한 일이지만 정말 하기 싫은 일 중 하나였다며 표정이 어두워졌다. 큰 기업의 경우 이전에 그런 관행이 있었다고도 하던데, 이런 일은 사라졌으면 좋겠다. 회사와 회사 간에는 선물이 금지되는 게 좋을 것 같다. 업무 외에 일들이 회사를 평가하는 데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부당하다.  


하지만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 주셨던 추석 선물은 기억에 남는다. 선물에서 주는 물질 자체의 가치보다는, 회사의 한 구성원으로서 인정받는 기분이 들어 감사하다. 신입사원 때 처음 받은 참치와 스팸이 들어간 선물세트를 들고 가며 ‘나도 회사원이 되었구나.’ 하고 뿌듯했다. 얼마 정도의 선물을 주시든 간에, 전 직원의 집으로 선물을 보내주는 대표님의 마음을 생각하면 작은 돈이 아닐 텐데 마음 써줌에 감사하다. 


받는 것이 다가 아니라 추석에는 드리는 마음도 있다. 이번에는 부모님께 드릴 선물로, 회사에서 판매하는 제품 몇 가지를 샀다. 그전에 고기나 과일도 사다 드렸지만, 추석 선물로 나온 것들은 요란하기만 하고 별달리 실속이 없었다. 회사 제품을 드리며 내가 다니는 회사 설명도 해드리면 대화거리가 생길것이다. 대신 용돈을 드리려고 한다. 그리고선 부모님과 보낼 계획으로 윷놀이, 젠가, 인생네컷 찍기가 있다. 남편과 하면 재밌는 것들을 기억해놨다가 부모님들과도 하고 싶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이 있다. 수확철의 가을처럼, 풍성한 날이 계속되었으면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 같은 추석은 계속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코로나19와 어려운 경제상황으로 올해 받은 선물들은 더욱 죄송스럽다. 가족끼리 얼굴을 보기도 조심스럽다. 올해 같은 추석과 날들은 계속되지 않았으면 한다. 수확의 추석이지만, 상황은 우리에게 여유를 허락해 주지 않는다. 내년 한가위는 지금같지 않았으면 좋겠다. 서로 소중한 마음을 나누고, 보름달을 보며 다함께 소원을 빌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잠시나마 든 다정한 마음들이 부담으로 바뀌지 않을 평화의 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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