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지은 Sep 13. 2021

꽉 막힌 지하철의 태도

여기는 한적한 초원이다 라는 마인드 컨트롤


꽉 막힌 지하철의 태도


회사는 9시 30분까지 출근이다. 코로나가 9시 출근도 미루어줬다. 조금 미뤄졌으니 평소에는 출근 시간에 딱 맞춰 출근을 하는 편이다.


오늘은 일찍 잠이 깼다. 여유롭게 아침까지 차려먹고, 대문을 나섰는데 평소보다 30분 정도 빠르게 도착할 것 같았다. 그러면 여유 있게 커피 한잔 내려야지 맘먹으며 가벼운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개찰구에 표를 찍고 들어섰는데 공기의 무게가 달랐다. 밀도가 높았다. 들어온 지하철의 문이 열렸는데 사람들이 어깨를 좁히고 서로 밀집해있었다. 어제 탔던 지하철은 한가로운 공원이었다면, 오늘의 지하철은 마치 시위 현장을 방불케 했다. ‘너마저 탈거냐’라는 듯한 이미 탑승한 자들의 차가운 눈초리를 뚫고 올라탔다. 함께 어깨를 좁히고 핸드폰도 한번 팔꿈치 위로 올리지 못한 채 내렸다. 


회사 인근인 3번 출구로 향하는데 긴 줄이 늘어져 있었다. ‘이 대열은 뭐지?’라는 의문점을 가졌지만 모르기에 합류하지 않은 채 출구가 있는 코너로 직진했다. 그리고선 알았다. 그 대열은 내가 타야만 하는 에스컬레이터를 타려는 사람들의 줄이었다. 평소, 어제까지만 해도 나는 그 에스컬레이터를 여유롭게 탔다. 쇼핑을 하기 위해 마트의 무빙워크를 타는 기분으로 탔다. 간격도 충분하여 앞뒤 사람과 거리두기도 자유롭게 됐었다. 그런데 그곳은 대형 라면공장의 광경 같았다. 컨베이어 벨트에 라면들이 제 순서를 기다리듯, 일말의 간격도 허용되지 않은 줄 서기로 한 명씩 내려가고 있었다. 대열에 끼지 않아 나는 갈 곳을 잃었다. 대열에 서있던 사람들은 떨어져 서성이는 나를 무리에서 떨어져 나간 라면처럼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결국 나는 다른 출구를 찾아갔다. 라면 무리의 뒤는 너무 멀게만 느껴져 어디서부터 합류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다른 출구를 찾아 내려 회사에 도착했다. 도착시간은 평소보다 일렀지만, 출근을 위해 쓴 시간은 더 걸렸다. 9시, 보통의 회사원들이 출근하는 시간이었기에 그 시간은 지하철도 더욱 막혔던 거였다. 몰랐던 것인데 (사실 당연한 건데) 알게 된 진귀한 시간이었다. 30분 아니 몇 분의 간격으로도, 공간의 밀집도는 매우 달라진다.


얼마 전, 누군가 와서 뭔가를 물었다. 그때 나는 온통 머릿속에 오늘 보고해야 할 A사안에 꽂혀있었다. 그가 물어본 것은 별게 아니었으나. 나는 A사안 때문에 듣기도 전에 ‘뭐예요? 바빠요.’라고 응수했다. 고개를 돌려 옆을 봤을 때 부탁하는 분의 표정은 어두웠다. A사안을 보고 후에 조금 시간이 있었을 때, 다른 분이 와서 뭔가를 물었다. 그때 나는 친절하게 답해줄 수 있었다. 몇 분 간격으로 지하철의 밀집도가 달라지듯이, 내 마음과 말도 촘촘하기도, 드넓어지기도 했다. 때로는 한적한 공원처럼 어떤 물음에도 산책하듯 답변해줄 수 있었다. 때로는 바늘 틈도 들어가지 않을 것처럼 박하게 굴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내 마음속이 지금 평야인지, 퇴근길의 러시아워 일지 알 수 없다. 반면 나는 온화하고 평온한 이를 보면 마음이 따스하고 행복하다. 남에게 어떤 태도를 취하기 전 몇 분이라도 내 마음속의 러시아워를 걷어내 본다. ‘여기는 평화롭고 한적한 초원이다.’ 생각해보자. 물론 대화 후에도 그게 안 된다면 지금 내가 러시아워 상태임을 알려주는 게 좋겠다. 꽉 막힌 지하철 같은 태도 말고, 누구든 기웃거리고 싶은 한적하고 따스한 태도를 갖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불안이 파도처럼 밀려올 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