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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은 Oct 10. 2021

소리 : 무르익자 들리는 소리

테이프를 되돌려 감듯 좋은 소리들은 깊이 저장한다.





소리  : 무르익자 들리는 소리


지지직- 은빛 철판에 버터가 달라붙으며 경쾌하고 설레는 소리를 낸다. 반죽을 저으며 나는 묵직하고 되직한 소리가 귀에 감긴다. 냉장고가 열렸다가 닫히자 전기가 다시 돌아가며 구웅 하는 소리가 난다. 고기를 뒤집으면 치지직 구워지는 소리가 난다. 내가 좋아하는 소리들이다. 처음으로 떠오르는 소리는 이렇게 먹을 것과 연관이 깊다. 역시 유서 깊은 돼지답다. 


음식 소리 외에는 밤의 소리가 좋다. 밤에 지나가는 사람들의 소리 한강변을 걷고 있을 때 들리는 풀벌레들의 소리, 꾸욱 꾸욱 울어대는 개구리들의 소리 스쳐 지나가며 들을 수 있는 바람소리. 아침의 활기찬 소리들보다, 주변이 적막해지며 들리는 작은 것들의 소리가 정겹다. 


밤과, 음식의 소리 그 외에는 사람의 소리가 가장 좋다. 아침에 출근하여, 문을 열고 들어서며 만나는 정겨운 이들의 ‘안녕하세요’라는 목소리, 흐흐라는 속살거림부터 참지 못할 만큼 터져 나오는 커다란 웃음소리. 성을 때고 친근감을 담아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 "우리 따알~ 잘 지내? 별일 없고?"라고 안부를 묻는 엄마의 목소리. 형식이 갖춰지고 다정한 형태를 갖춘 사무실의 매너 있는 말소리가 좋다. 친구들과 격의 없이 주고받는 천진난만한 (때로는 욕설을 동반한) 소리들이 좋다. 남편이 의자에 앉을 때 발생하는 의자와 몸 사이의 마찰음. 그 꾸륵거리는 소리가 날 때 방귀를 뀌었냐고 놀려대는 목소리도 정겹다. 사람들이 만드는 소음, 그리고 사랑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가장 좋다.


주변의 소음을 사랑할 수 있음은 마음속 소리가 온화하기 때문이다. 마음이 시끄러우면 바깥의 소리도 잡음으로, 때로는 불쾌한 음으로 느껴진다. 소중한 이들의 소리를 듣는 태도도 전보다 좀 더 단단해졌기에 잘 들을 수 있었음을 안다. 젊었을 때는 소리를 너무 많이 들어서 흔들렸다. 이런저런 말들이 귀찮게 또는 괴롭게 느껴졌다. 비교와 질타의 소리로만 여겨졌다. 지금은 소리를 적당히 듣고 잘 소화해낸다. 좋은 말은 두고두고 기억해 자양분으로 삼고, 기름기가 섞인 말들은 쉽사리 귀를 닦아 씻어낸다. 테이프를 되돌려 감듯 좋은 소리들은 계속해서 머리와 마음속에 저장한다. 


생각해보면 인간에게서 오는 소리와, 인간에게서 나는 소리가 제일 좋고 싫다. 좋은 말들을 좋게 듣기 위해서, 나쁜 말들을 흘러 듣기 위해서, 다정하고 강한 마음을 가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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