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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은 Oct 02. 2021

감잡을 날을 기다리며

나는 감을 잘 못 잡는 편이다. 그래서 감을 동경한다.



감잡을 날을 기다리며


"감? 뭐 그리 촌스러운 과일을 좋아한데?" 추석에 앉아 밤과 사과를 깎아 먹다. 동생이 나보고 무슨 과일을 좋아하냐고 물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여러 과일을 좋아하지만 그중에서도 떠오르는 과일인 “감”이라고 말했다. 듣던 동생은 무슨 구식 과일을 좋아하냐며 촌스럽다고 했다. 감이 촌스럽다는 얘기는 또 처음 듣는다. 뭐 샤인 머스캣이나, 망고스틴 같은 외국어가 들어간 과일 이름을 말했어야 하나? 하지만 감이 고전적인 과일이라는 생각에는 동의한다.


수박이나 멜론처럼 크고 비싸지는 않다. 사과나 딸기처럼 보편적이고 누구나 좋아하지 않는다. 감은 가을에 주로 먹을 수 있고, 가격도 많이 비싸지 않다. 다양한 방법으로 먹을 수 있다. 단감, 곶감, 홍시 나는 그 전부를 좋아한다. 잘못 먹어서 떫은 감은 싫어한다. 


단감의 단단함이 좋다. 씨앗이 딱 떨어지는 게 좋다. 사과는 씨앗이 작고 파내기가 어려워서 먹기 힘들다. 포도도 시고 씨앗과 껍질을 처리하기가 귀찮아서 별로다. 마구 달콤하지는 않지만 적당한 달콤함과 무르지 않음이 단감의 매력이다. 그리고 부드러운 부분과 딱딱한 부분들이 얽혀있는 것도 매력이다. 반면 물렁한 홍시는 부드러워서 먹기 좋다. 흘리고 먹거나 먹기가 좀 불편하지만 그래도 부드럽게 입으로 넘어간다. 숟갈로 퍼먹을 때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처럼 신나는 기분이 든다. 곶감은 젤리의 건강한 버전 같은 느낌이다. 말랑말랑하고 식감이 좋은데 과하게 달지 않고 쫀득쫀득하다. 먹기 좋은 간식이다. 보통 감을 먹는 계절은 가을, 짧게 먹을 수 있는 과일이다. 부담스럽지 않은 과일, 보편적인 과일, 그런 감이 나와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옛날 사람이면 알법한 유행어 ‘감잡았어’ (개그맨 정웅인 씨가 유행시켰다.) 하지만 실제로도 일상에서 ‘감을 잡았냐.’ ‘감 잡았다.’라는 말을 자주 쓴다. 일이나 어떤 행동의 흐름이나 맥락을 파악했다는 말이다. 그래서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을 표현한 말이다. 감을 좋아하는 나는 감을 잘 못 잡는 편이다. 운동을 할 때도, 여러 번 동작을 알려주거나 원리를 이해시켜줘야 조금 나아진다. 일을 할 때도 파악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말을 잘 못 알아듣기도 하고, 이해가 느릴 때도 있다. 감나무 아래서 기다리는 건 아닌데, 감을 잡기 위해 부단히 감을 찔러본다. 그래서 뭔가를 할 때 오래오래 시간을 들인다. 감을 잘 잡고, 적응을 잘하는 사람을 보면 부럽다. 그래서 어떠한 동경의 의미로 감을 좋아하나 보다.


그래서 나도 느린 사람을 이해한다. 그의 표현과 이해와 행동이 조금 감을 잡지 못하고 에둘러 오더라도 기다린다. 말을 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런 생각때문인지 중간에 말을 끊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누구나 시간이 필요하다. 단감이 익어가는 시간, 홍시가 말랑해지는 시간처럼 감도 알맞게 익으려면 기다림과 선선함이 필요하다. 다정한 기다림이 누군가가 감을 잡는데 도움이 된다.


이번 가을은 유독 천천히 오는 것 같다. 여름이 지나치게 덥더니 이번 달 까지도 꽤 덥다. 계절은 감을 못 잡고 있는 느낌이다. 그래도 높고 파란 하늘이 아름답다. 가을의 감이 늦게 와도 뭐 어때. 감잡을 날이 올 것은 확실한데. 맛있게 단감을 깎아먹을, 달콤한 홍시를 입에 굴릴 가을. 파란 하늘에 선선한 바람이 불어올, 감 잡은 가을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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