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진 낙인은 무엇일까? 무슨 차이가 있을까?
얀그루에의 『우리의 사이와 차이』를 읽고 리뷰합니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22575989
내용정리 :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언어학자의 사이에 대한 이야기
감상 : 생각지도 못한 차이들과, 그걸 정밀하게 표현한 언어들
추천대상 : 무관심하고 무신경한 분들
내면화 질문 : 내가가진 낙인은? 내가보는 나와 남이보는 나는?
저자 얀그루에는 작가이자 언어학 교수이다.
동시에 그는 아버지이고 남편이다. 또한 그는 장애인이다.
저자는 장애인으로서의 삶 뿐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써내려 간다.
언어학 교수여서 그런지 표현들이 세밀하고, 감명 깊었다.
자신이 기억하는 어린시절과, 자신의 진단서로 표현되는
어린시절의 차이, 그리고 이를 들여다보는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인상깊었다.
또한 장애를 가진 친구들의 캠프에서는 본인이 상위 계급이라는것,
그리고 그곳에서 좋아하는 친구를 만났지만 그곳을 벗어나고 싶어 하는 이야기
아이를 낳는 날에도 한달 전부터 준비했어야 했고,
스스로 갈 수 없어 친구가 대동하여 와이프를 도와주는 이야기 등
비장애인으로서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를 덤덤하지만, 아주 정밀하게 풀어낸다.
그러면서도 그는 장애인인 자신을 받아들이고 동시에 교수와 사회인으로서 살아가기 위한 노력을 한 이야기도 풀어놓는다. 각 나라와 공항에서 장애인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풀어 낸다.
읽으며, 감동한 부분도 많았고 언어와 문장에 감탄한 부분도 많았다.
나는 나의 스티그마를 어떻게 극복하고 있는가.
또한 나의 스티그마와 함께 어떻게 한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도서를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아르테 감사합니다~
P. 8
얀은 독자에게 고대 그리스어에서 구별하는 두 종류의 시간에 관해 언급한다. 우주의 질서를 의미하는 크로노스와 우리의 경험적 일상이 전개되는 현재의 순간, 카이로스다. 우리가 살아낸 과거는 이미 크로노스의 영역에 놓인다. 그곳은 우주의 시간이며, 우리는 결코 저 아득한 우주의 어느 시간대로 돌아갈 수 없다. (중략) 이 번거롭고 불편하고 느린 ‘카이로스적’ 시간 속 얀 그루에게 재구성한 존재인 것이다. 앞뒤가 맞지 않아 보이는 이 책의 목표를 이해 할 실마리는 여기에 있다. 얀 그루에는 “항상 한 인간”이었던 과거를 “한 인간으로 거듭난”지금에서야 쓸 수 있었다.
p.105
나는 그곳에서 병명이 일종의 서열을 구분하는 기준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중략) 다시 말하자면, 나는 그곳에서 거의 비장애인이나 다름없었다. 서열의 가장 위쪽에는 눈으로 볼 수 없는 병을 앓는 아이들, 조금만 노력하면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감쪽같이 숨길 수 있는 아이들이 자리했다.
p.110
적어도 내 친구만큼은 비장애인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면 나도 비장애인같이 될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적어도 마음먹기에 따라선 말이다.
자아는 주어지는 것일 뿐 아니라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 어빙 고프먼
(중략)캠프는 환자들을 위한 것도, 사람들을 위한 것도 , 사용자들을 위한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선의의, 잘 규제된, 복지의, 보살핌의 표현힝었다. 하지만 그것은 다른 삶의 영구적 그림자 속, 비상 사태라는 그림자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것은 조르조 아감벤의 말처럼 예외 상태가 일반적 규칙이 될 때 열리는 공간이었다.
p.117
미국의 한 대학에서 현재 나의 직위와 같은 자리의 공채 광고를 낸 적이 있다. 채용 조건은 15킬로그램 이상의 물건을 들어 올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의 한계는 4~5킬로그램에 불과하다. (중략) 물론, 그 광고는 얼마 후 불법으로 간주되어 사라졌다. 하지만 그들은 항상 나와 같은 사람을 배제하기 위해 앞으로도 이런저런 편법을 쓸 것이 분명하다.
p.117
나는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 상태가 어떠한지 대답할 때에도 그들이 요구하는 수백가지의 세세한 요구를 충족시켜야 한다. 그들은 진실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내가 행복하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내가 행복한 삶을 사는 동시에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p.134
영화 <엑스맨>의 프로페서 X는 텔레파시 능력을 얻는 대가로 휠체어에 앉아 살아야 했다. 나는 내가 태어나기 직전 또는 직후에 바로 그와 비슷한 선택을 했다고 믿는 사람들을 만난 적이 있다. 그들은 곳곳에 의미로 가득한 대성당을 원하며, 모든 삶은 내면의 도덕적 논리를 바탕으로 형성되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중략) 이야기에는 세상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이야기를 하는 것은 기억하는 것이고, 기억하는 것은 잊는 것이다.
p.179
그즈음 나는 거의 반년 동안 항상 휠체어를 사용했다.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라는 말은 전혀 옳지 않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겸손하게 만들고 나의 약점을 더욱 절실히 깨달을 수 있게 만든다. 나는 내게 일어났던 일을 통해 그렇게 변할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