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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은 Oct 03. 2023

방탈출 문제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지

방탈출 문제 앞에 서면 내가 누군지 알 수 있다.


예능 속 나약한 출연자, 나일지도..



“저 더 이상 앞으로 못 가겠어요.”


한계를 직면한 출연자가 눈물을 터트렸다. 안타까운 장면이었다. TV를 보고 있던 남편은 출연자를 보며 말했다.


“진짜 왜 저래? 나약하네.” 


남편은 감상을 말한 것이었지만, 공감 할 수 없었다. 문제의 벽 앞에서 가로막힌 출연자가 얼마나 막막할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능 프로그램이나 서바이벌 예능을 볼 때 몇몇 출연자들은 눈에 띈다. 이기적으로 행동해서 빌런이 되는 캐릭터도 있다. 하지만 나는 나약한 이들이 눈에 밟힌다. 그들은 남들보다 느리고 어수룩하거나, 문제 앞에서 좌절해서 비난의 대상이 된다. 고구마 백 만개를 먹은 듯 행동이 답답하다. 아니면 반대로 어수룩한 점 때문에 남들을 웃게 한다. 사람들은 그를 비웃지만,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나라고 다르지 않아.저기에 간다면 나라고 저렇게 행동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를 깨닫게 된 이유는 방탈출이다. 나 또한 문제 앞에서 남들보다 바보 같은 짓도 하고, 좌절감을 느끼기도 했기 때문이다. 문제 앞에 서면 나는 나 자신과 동료를 알게 된다.



문제를 볼 때면 화가 난다.

“여기가 마지막 방인가 봐.”

방탈출 테마에 들어가기 전에는, 방이 몇 개인지, 문제가 몇 개인지 규모를 알 수 없다. 때문에 어느 정도 게임을 하다 보면, 이제 끝나기를 기대하며 들어갈 때가 있다. 그날도 몇 개의 방을 지나왔고, 이제 마지막 방이리라 예상하며 들어갔다. 그런데 웬걸, 그 방에는 자물쇠가 주렁주렁 달려있다. 그러니까 풀 문제가 아주 많다는 뜻이다. 반면 주어진 시간은 5분도 채 남아있지 않았다. 다들 육성으로 말했다. 


“망했다.” 


이 테마를 실패할 것 같은 예감이 짙게 들었다. 나는 좌절에 빠져 문제를 풀 의욕을 잃었다. 잠깐 멍을 때리고 있었는데, 그 사이 후다닥 움직이던 친구가 외쳤다.


“이거 이렇게 하면 돼! 풀었어!”


친구는 빠르게 지문을 읽고 문제를 해결했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 문제였다. 그 뒤로도 간단하게 풀 수 있는 문제들이 이어졌다. 다들 정신을 차리고 집중해서 문제를 풀었다. 그리고 다행히 정말 몇 초를 남기고 나갈 수 있었다. 옛말에 '호랑이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속담이 있다. 방탈출을 할 때는 정신을 차리는 게 정말 중요하다. 방탈출 게임을 하며, 나 자신이 위기감에 쉽게 굴복하는 사람임을 깨달았다. 문제가 많이 남았는데 남은 시간이 얼마 없으면 멘탈이 깨진다. 그리고 짜증도 확 난다. 하지만 그럴 때 누군가는 재빠르게 문제를 캐치하고, 남은 시간을 활용한다. 좌절을 느낄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푸는 방법을 찾는다. 예능 속에서 나약한 캐릭터를 보거나 징징거리는 캐릭터를 볼 때 화가 날 때가 있다. 하지만 그게 내가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짧은 시간이 남았던 테마에서도 긴박하게 탈출을 성공하고 나서는 생각이 바뀌었다. 문제들 앞에서 혼자서 기합을 준다. 두렵지만 빨리 풀어내자고 생각을 바꾸어 본다. 성공하지는 못해도, 한 문제라도 풀어내 보자고 각오를 한다. 



병풍과 셀뚝


사람들이 문제 앞으로 쪼르르 몰려 갔다. 하지만 방안은 어둡고 사람이 많았다. 앞에 두 명이 서서 지문을 읽자. 나까지 지문지가 보이지 않았다. 손바닥 2개 정도 크기의 작은 지문지는 친구들의 그림자에 가렸다. 그래서 사람들이 문제를 풀어낼 때, 동참할 수가 없어 자물쇠로 향했다.

 

“정답을 불러줘 내가 번호를 넣을게.”


방탈출을 하며, 문제를 잘 풀지 못하거나 또는 사람 때문에 공간이 좁아 밀려나는 경우가 있다. 이때 방탈출 용어로는 ‘병풍’이 된다고 한다. 병풍이 되는 게 좋지는 않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발생하기는 한다. 문제를 보면 적극적으로 달려드는 사람들이 있다. 반면 느린 사람은 문제에 가까이 가지 못하다가 병풍이 되기도 한다. 나는 병풍이 되어도 지나치게 욕심 내거나 하지는 않는 편이다. 대신 다른 친구들이 하지 못하는 손과 발이 되어 자물쇠를 풀거나 미션을 수행해 준다.


방탈출을 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 크게 느꼈던 문제는 ‘셀뚝’이다. 셀프 뚝배기의 줄임말이다. 셀뚝은 문제의 방향성을 모를 때, 엉뚱한 쪽으로 해석해서 거기에 골몰하는 경우를 말한다. 나는 테마에서 지문과 상관없는 인형 속 솜을 다 빼보다가, 친구가 그거 아닌 것 같다고 말해서 정신을 차렸다. 셀뚝에 빠지면, 늪에 빠진 듯이 앞이 안 보인다. 나는 이렇게 푸는 게 맞는 것 같은데, 정답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 시간도 많이 소요되고, 문제도 못 풀게 된다. 셀뚝을 피하려면 많이 풀어보는 수 밖에는 없다. 아니면 문제에 대한 융통성을 발휘해야 한다. 한번 이렇게 해 봤는데 안 되면, 다른 방법을 취해야 한다. 그니까 문제를 풀 때도 넓은 시야가 필요하다.

 

 문제에 대해 얼마나 적극적이 되냐에 따라 병풍이 될지가 정해진다. 그리고 셀뚝도 괴롭기는 하지만 일종의 풀어내는 과정이다. 문제 앞에서 내가 어느 정도 주춤거리는지, 그리고 얼마나 빠져버리는지, 이 또한 방탈출을 하면 자기 자신을 알게 된다.



미션을 적극 수행하기


“찍힙니다 하나 둘!”


 게임을 하다 보면, 사진을 찍거나, 포즈를 취하는 등의 미션을 해야 될 때가 있다. 그럴 때 적극적으로 나서서 미션을 하는 사람이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망가지거나 희생이 필요한 경우가 있기 때문에 그럴 때 나서주는 이가 필요하다. 조금 망가지더라도 나서면 문제가 빨리 해결되니, 희생양을 자처하는 편이다. 나 외에도 미션을 적극 수행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고맙다. 방탈출에서는 위계질서란 없다. 언니, 동생, 형 상관없다. 나이가 많거나 어색한 동료가 해주면 더 고맙다. 글을 쓰고 보니 나 자신이 문제는 못 풀고 희생하는 캐릭터라는 게 여실히 느껴진다.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피하기보다 적극 나서는 편이다.



방탈출을 하다 보면, 문제를 대하는 나의 태도를 느끼게 된다. 문제가 있을 때 좌절하는지, 짜증이 나는지 알 수 있다. 예능 속 답답하고 짜증 나는 캐릭터가 나일수도 있다. 문제를 풀때면 때로 나는 작아진다. 그래도 힘을내며 풀다 보면, 나 자신을 알게 되고, 서로를 더 잘 알게 된다. 방탈출에서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동료는 큰 힘이 된다. 이 글을 쓰며 다시 한 번 실력은 부족할지언정 문제 앞에서 덜 쫄아야지 다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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