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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은 Oct 07. 2023

처음 본 친구 남편에게 욕을 했다

방탈출 공포 테마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들

처음 본 친구 남편에게 욕을 했다.



“x발.. 으아악!!!!!!!”


뒤로 나동그라지며 욕을 했다. 그리고 내 뒤에 있던 친구 남편의 발을 밟았다. 그분도 놀라, 아니 아파서 소리를 질렀다. 정신을 못 차리다가 조명이 좀 밝은 곳으로 자리를 옮긴 뒤 무슨 망언을 했는지 깨달았다. 친구 남편 분께 바로 사과를 했다.


“너무 놀라서요.. 죄송해요.”


 사실 이런 사태가 일어날 걸 예감했다. 내 손으로 직접 방탈출 공포테마를 예약했기 때문이다. 친구 남편에게 욕을 한 곳은 공포 방탈출 테마 안이었다. 앞에서 깜짝 놀라게 하는 연출을 보고 순간 놀라서 욕을 했다. 처음 본 여자에게 욕을 듣고도 그 분은 웃으며 괜찮다고 했다. 하지만 민망했다. 게임이 끝나고 나와서 남편을 데리고 온 친구에게도 이러저러해서 남편분께 욕을 했는데 미안하다고 했다. 그녀는 쿨하게 말했다. 


“방탈출 안에서 있었던 일이잖아요. 상관없어요. 그리고 저도 무서워서 욕했어요.”


그녀는 너무 무서워서 내가 욕을 한 것도 못 들었다고 했다. 본인도 몇몇 구간에서는 욕을 했다고 한다. 공포 방탈출 테마는 네 명이서 함께 했는데, 게임을 끝내고 온 우리의 몰골은 참담했다. 나는 친구 남편에게 욕을 했다. 남편을 데리고 온 친구는 청바지가 찢어졌다. 한 명은 땀이 너무 났다면서 끝나고 화장실에 가서 찬물로 세수를 했다. 세 명의 겁쟁이들은 그야말로 혼비백산이었다. 겁이 없는 친구 남편만 유일하게 덤덤해 보였다. 


“별로 안 무섭던데요? 할만하던데?”


그는 무표정하게 소감을 말했다. 여자 셋이 오들오들 떨면서 방탈출 하는 걸 보니 얼마나 웃겼을까. 그에게는 또 다른 재미가 있었을 것이다. 반면 우리는 공포 속에서 방을 탈출하는 데만 급급했다. 우리는 너무나 무서웠다. 하지만 역시 재미있었다.


 친구 남편분은 평소 방탈출을 즐겨하지 않는다. 그런데 친구가 그를 데리고 온 이유는 따로있다. 우리는 세 명이서 방탈출을 즐기는 멤버다. 그리고 미지의 영역인 공포테마를 해보고 싶었다. 셋은 모두 ‘쫄보’의 줄임말인 ‘쫄’이다. 쫄끼리만 있으면 무서운 구간이 나왔을 때 앞으로 가지 못할 수도 있다. 실패의 확률이 높아진다. 반면 친구 남편분은 일명 '탱'이였다. 공포 방탈출을 할 때 겁이 없고 무서운 구간에서도 탱크처럼 앞으로 잘 나가는 사람을 ‘탱’이라고 한다. 쫄끼리만 있으면 무서운 구간이 나왔을 때 두려움에 앞으로 가지 못할 수도 있다. 호기심은 있으나 담력이 없는 쫄 셋이 공포 테마를 하려고 모였으니..안봐도 뻔하다.. 친구는 우리의 방패막이이자 앞잡이로 탱인 남편분을 데리고 온 것이다. 




무서워하면서 도대체 왜?



 우리 같은 쫄들은 왜 공포 방탈출을 할까? 공포 방탈출은 조명의 조도가 낮다. 불이 깜빡이거나 어둡다. 그리고 음산해서 들어가기 싫은 구간이 있다. 무서운 인테리어와 함께 두려운 소품들도 있다. 사람이 나오거나 갑자기 떨어지는 무언가가 떨어진다. 깜작 놀라게 하는 갑툭튀, 일명 ‘점프스케어’도 존재한다. 음악도 공포스럽다. 한 발짝 한 발짝 진행하는 내내 마음 속에 긴장감이 도사린다. 특히 쫄들은 아무것도 없는데 뭔가 나올 것 같고, 놀라게 할 것 같은 두려움을 느낀다. 자기 스스로 겁을 먹는 ‘창조 공포’ 일명 ‘창공’을 만들어 낸다. 그런데 도대체 왜할까? 공포스럽기 때문에 더 스릴감이 넘치고, 도파민이 분비된다. 무서운데 빨리 나가야 하니까 집중이 잘 된다. 마음이  긴장된 상태에서 문제를 풀었을 때면 쾌감과 희열이 더해진다. 나는 과연 저 테마는 ‘왜 무서울까? 어떤 내용일까?’ 호기심 때문에 공테를 하기도 한다. 방탈출을 많이 해본 친구는 해 볼 만큼 해봐서 공포테마도 궁금하다고 했다. 공포테마는 감성테마보다 꽉 채운 자극을 준다. 아드레날린 파티다. 우리가 스릴러 영화나 공포 영화를 무서워하면서도 보는 이유와 같을 듯 하다. 



 나는 쫄중에 ‘극쫄’이다. 쫄들 중에서도 매우 격하고 심하게 무서움을 느끼는 사람을 극쫄이라고 한다. 하지만 의외로 ‘전진 쫄’이기도 하다. 전진 쫄은 무서워하면서도 앞으로 나가는 쫄이다. 호기심이 공포를 이겨서 앞으로 나가고 만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공포스러운 연출을 먼저 접한다. 소리를 지르면서 나가떨어지고, 친구 남편에게 욕도 했다. 공포 영화에서는 이런 사람이 빨리 죽는다. 그러면 일명 탱인 담력 있고 용감한 탱커들은 그 모습을 보며 즐거워한다. 겁먹는 쫄과, 우스워하는 탱들. 탱들은 쫄들이 바짝 말라가는 모습과 경악하는 모습을 보며 또 다른 재미(?)를 느낀다. 공포 방탈출을 한 번 다녀오면 내가 과연 겁쟁이인지, 담력가인지 알 수 있다. 쌓이는 비명 속에 함께 한 동료들 사이도 더 돈독해진다.



 나는 원래 공포테마를 즐기지 못한다. 하지만 방탈출에 처음 빠지게 된 계기는 공포 테마였다. 그 강렬한 기억 때문에 잊지 못하고 가끔 공테를 한다. 이렇게 겁이 많으면서 공테를 즐기는 사람을 괴로움을 느끼며 공테를 하기에 혹시 변태(?)냐는 의미에서 ‘변쫄’이라고 하기도 한다. 변쫄도 맞는 것 같다. 물론 나는 감성테마를 더 좋아한다고 우기기는 한다. 두 가지가 주는 즐거움은 다르다. 감성 테마는 마음속 깊은 여운과 감동이 남는다. 공포 테마는 몰입감과 짜릿함이 있다. 다행히 아직 정복할 공포 테마가 아주 많다. 방탈출을 즐기는 사람들은 ‘공포테마 빙고’를 만들어서 그걸 도장 깨기 하듯이 하나씩 깨 가기도 한다. 그만큼 공테를 즐기는 사람도 많다. 든든하게 도와주실 ‘탱’이 있다면 다른 공포 테마들도 정복(?)해보고 싶다. 물론 공포테마에 정복당하는 건 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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