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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은 Sep 10. 2023

며칠 밤, 나를 잠 못 들게 한 그 남자

방탈출 카페에서 직원이 중요한 이유


나를 잠 못 들게 한 그분


사이렌 소리와 함께 갑자기 불이 꺼지고, 문을 쾅쾅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문이 끼익 열렸다. 그가 갑자기 미친듯이 우리에게 달려왔다. 나와 친구는 너무 놀라 소리를 질렀다. 그는 테마 내에서 물리쳐야 할 ‘적’이었다. 사실 그 분은 진짜 적은 아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방탈출 게임에서 연기를 하고 있던 직원이다. 방탈출 테마 내에도 사람이 나올 수 있었다. 그 후 며칠간 잠자리에 들 때마다, 그분이 뛰어 오는 장면이 꿈에서 나왔다. 다른 방탈출 테마에서는, 방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직원 분이 다가와서 말을 했다. “여기 왜 들어가시려는 겁니까? 당신 뭐 하는 사람이에요?” 순간 너무 당황한 친구가 말했다. “저는 김개똥인데요(친구의 본명).” 하.. 바보 같은 놈, 더 당황한 내가 바로 수습했다. “아! 죄송합니다. 저는 청소부 김청소 입니다.(테마 내의 주인공의 이름)” 나의 능청스러운 연기에 친구는 어이없는 듯이 째려보았다. 직원 분은 “이 사람들 수상한데?”라면서 친구의 실수는 묻어 두고, 자연스럽게 우리를 테마 안으로 들여보내줬다. 방탈출 게임에서는 직원이 개입하여 스토리를 이끌어 나가는 경우가 있다. 이것도 스토리를 구성하는 ‘연출’의 하나이다. 직원들은 탈출러들이 스토리에 몰입을 할 수 있게 돕는다. 내가 ‘청소부 김청소’라고 입밖에 낸 순간 게임에 더 집중하게 된다. 물론 방탈출의 모든 테마에 다 직원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개입을 하게 되는 경우 직원의 역할은 더 중요해진다.


(※스포일러 요소를 배제하기 위해, 방탈출 내 직원들이 한 역할은 경험을 바탕으로 일부 지어내었습니다.)


게임을 마치고 나오자 아까 만났던 직원분이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 “성공입니다. 5분 남기셨네요.” 내 친구는 정말 배신감을 느낀 표정이었다. “저 사람!! 아까 우리한테 사장인 척 한 사람이잖아!” “쉿” 그런 말을 하는 것은 반칙이다. 왜냐면 직원분은 게임에서는 사장이었고, 우리는 게임 속에서 청소부였으니까. 그 암묵적인 룰을 입 밖으로 내는 것은 민망한 일이다. 



스토리를 완성시키는 직원의 역할


 직원분은 노련하게 스토리 설명을 해주었다. 테마가 끝난 후 스토리 설명이 없이 넘어가는 경우도 있지만, 설명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도 한다. “여러분이 계속 지나왔던 길은, 주인공의 마음을 반영한 거예요 그래서 처음에 두려울 때는 붉은색이었고, 나중에는 희망을 찾으면서 초록색으로 바뀌었죠.” 옆을 보니까 친구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야 왜 그래?” “아 눈물 날 것 같아서.” 이렇게 직원의 스토리를 듣다가 갑자기 과몰입되어, 눈물을 흘리는 경우도 있다. 테마를 할 때는 문제를 빨리 풀어야 하기 때문에 정신이 없다. 하지만 끝나고 직원분이 테마 스토리를 차분히 설명해 주는 것을 듣다 보면, 스토리가 이해가 되기도 한다. 지나온 게임을 회상하며 감동이 밀려온다. 그때 직원은 내레이터로서 빛을 발한다. 따뜻한 설명을 곁들여 주는 직원이 있다면 그 테마에 대한 애정은 배가 된다.


그리고 직원들은 방탈출러들에게 질문을 받는다. “혹시 테마 하시면서 이해가 되지 않았던 부분이나, 질문이 있으실까요?” “저 아까 초록색 방에서 컴퓨터 패스워드 푸는 거요. 잘 이해가 안 돼서요.” “아 네네 이쪽으로 따라오시면 설명해 드릴게요.” 직원분은 그 문제를 다시 보여주며 풀이 법을 설명해 준다. 문제를 도저히 못 풀어서 힌트를 쓰고 나온 경우 그런 문제들은 생각해 두었다가 직원에게 물어본다. 알고 나면 속이 후련하다. 방탈출 테마 내에서, 그리고 끝나고 스토리 설명과 문제 풀이까지. 테마의 평판은 직원의 역량에 달려있다.




대기실에서도 직원 분은 열일 중



 

“자 찍습니다.” 핸드폰을 맡기면 직원 분이 사진을 찍어주신다. 예전에는 게임을 하면 폴라로이드 사진을 주는 테마들이 있었다. 최근에는 폴라로이드 사진을 굿즈로 많이 주지 않는다. 대신 개인 핸드폰으로 사진 촬영을 도와주신다. 어차피 요즘은 인쇄된 사진보다는 폰으로 사진을 보니까 트렌드에 맞는 것 같다. 사진 촬영 시에도 사진을 잘 찍어주시는 분과, 못 찍어주시는 분은 차이가 난다. 어떤 분들은 쪼그려 앉아서 다리를 길게 나오게 예쁘게 찍어주시기도 하고, 어떤 분들은 가로, 세로 여러 각도로 찍으며 잘 나오도록 도와주신다. 사진을 잘 찍는 것이 필수 덕목은 아니지만 사진이 잘 나오면 기분이 좋다. 사진 외에도 성공하면 간단한 굿즈를 증정해 주는 테마들도 있다. 홍대의 한 테마는 방탈출 직원분이 방문한 탈출러들을 그림으로 그려 선물을 해준다. 이런 테마의 경우 직원분들의 정성 덕분에 만족도는 더더욱 올라간다. 


스타벅스는 바리스타가 고객의 이름을 불러주며 커피를 대접한다. 지금은 사이렌오더가 있기는 하지만 오더를 한 경우에 고객이 설정한 닉네임을 불러준다. 고객들과 소통을 하며 유대감을 형성하기 위해서이다. 그것처럼 특정 테마에서는 대기실에는 들어갔을 때, 예약을 했던 내 이름이 적혀있는 경우가 있다. “부기님 환영합니다.” 이런 센스는 사소한 것이지만 기분이 좋아진다. 대접받는 느낌이다. 앞서 말한 연출, 사진 촬영 외에도 직원의 친절함은 중요한 요소이다. 메인은 방탈출 게임이지만 응대가 좋을 경우 테마가 좋아지기도 한다. 방탈출은 한 테마를 한 뒤, 테마를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하고 다음 타임에 예약된 손님들이 오기 때문에, 시간에 쫓겨 급하게 응대를 하는 경우도 있다. 이해는 된다. 그래서 방탈출 후기를 읽다보다 보면 직원을 칭찬하거나, 아니면 직원의 역량 부족을 평가하는 내용들도 있다. ‘직원’ 자체가 후기의 요소가 되는 것이다. 기계적인 친절이 아닌 게임에 애정을 가지고 설명을 해주고, 밝게 인사해 주시는 경우 테마에 대한 만족감이 커진다. 그런 직원들을 만나면 나도 내 일을 어떤 자세로 하면 좋을지 반성을 하게 된다.


방탈출 게임 메인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방탈출에는 그만큼 직원이 매우 중요하다. 그들은 방탈출의 하나의 얼굴 같은 존재이다. 좋은 직원을 만나면 며칠 내내 기분이 좋다. 테마를 완성시켜는 훌륭한 직원분들께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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