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탈출을 하며 생긴 소소한 특징들
"이거 방탈출 3번 값이네. 너무 비싸다."
방탈출을 하며 사소한 습관이 생겼다. 한 번 할때 2~3만원정도 하는 방탈출의 가격으로 모든 가치를 매기는 '방탈출 N번' 계산법이다. 방탈출 게임 1번을 대략 25,000원 정도로 생각해보자. 치킨을 한마리 시켰는데 가격이 25,000원이다. 그러면 혼자서 ‘방탈출 한 번 값이네.’ 라고 생각한다. 주식 시장이 좋지 않을 때 그런 생각을 더 많이 한다. 주식으로 투자 손실이 10만원이면, ‘아 이 돈으로 방탈출 4번은 할 수 있는데.’ 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주식이 오르면 이런 생각을 한다. ‘와 방탈출 값 벌었다!’ 친구가 휴가비 20만원을 받았다고 해서 “와 방탈출 8번 값이네.”라고 말했다가 질타를 받았다. 친구들은 저런 계산법이 너무 덕후같다고 지긋지긋하다고 했다. 친구들의 야유를 들은 뒤, '방탈출 몇 번 값이네.' 라는 말은 입밖에 내지 않는다. 하지만 식사자리에서 계산을 할 때, 물건을 살 때면 혼자 이 계산법을 떠올린다. 반면 남편은 반대로 이 계산법을 부정적으로 악용한다. 내가 방탈출을 같이 하자고 하면, “와 부부가 같이하면 5만원이네. 그거면 커피를 10잔도 마실 수 있고, 책은 5권이고, 어쩌고 저쩌고 쫑알쫑알 (뒤는 듣지 않았다.)“ 전형적으로 나의 N방탈출 계산법과 반대로 다른 물가를 적용하고 있다. 이런 계산을 할 정도로, 나는 돈만 생기면 방탈출을 하고 싶다.
굿즈를 모으는 습관도 생겼다. 방탈출 카페에서는 테마의 컨셉으로 만든 엽서나 팔찌같은 굿즈를 주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참여한 사람들에게 기념으로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어 주기도 한다. 일부 방탈출러들은 굿즈가 받고 싶어서 테마를 하기도 한다. 어떤 테마는 오픈하고 오신 분들께 한 달 동안만 키링을 선물하기도 했다. 방탈출러들은 그 키링을 받기 위해 빨리 테마를 하려고 했다. 처음에 방탈출 횟수가 적었을 때는 받은 굿즈나 사진들을 화장대 인근에 방치해두었다. 숫자가 많아지다 보니 정리가 필요했다. 이제는 하나의 큰 틴케이스를 사서 거기에 모아두고 있다. 추억이 담긴 물건들이라 소중하다. 굿즈들을 보면 그때의 테마가 떠오르기도 한다. 내 동생은 굿즈를 돈 주고 산적도 있다고 했다. 동생은 키링을 구매했다. 나도 키이스케이프의 메모리 컴퍼니의 테마들을 하고 나서는, ‘굿즈를 살걸’하는 후회를 하기도 했다. 키이스케이프에서 나온 종이로 만든 DIY 키트는 너무 귀여웠다. 굿즈를 모으는 것도 방탈출을 하며 생긴 소소한 재미다.
방탈출이 끝나면 방탈출 카페에서는 보드판을 준다.(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 유광 보드판도 있고, 무광 보드판도 있다. 보드판에는 무엇을 그려도 상관 없다. 보통은 성공 실패 여부, 방탈출을 하며 시간을 얼마나 남겼는지, 함께 한 사람이 누구인지, 테마의 포스터를 우리 식대로 해석한 그림 등을 그려 넣는다. 나는 보드판 꾸미기를 좋아한다. 그리면서 추억이 완성된다. 포스터에 있는 캐릭터를 그린적도 많다.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테마를 마친 후 보드판을 들고 사진을 찍는데, 그림속 내용이 스포일러가 될 위험이 있다. 후기를 쓸 때 보드판을 SNS에 올리는 경우도 있어서 주의해야 한다. 방탈출 내의 중요한 특징이었던 캐릭터를 그렸다가 함께한 동료들이 스포일러 일수도 있다는 의견을 제시해서 지운적도 있다. 어디까지가 스포일러일지 항상 고민된다.금손이신 분들은 방탈출 보드판을 전문적으로 그린다. 예쁘게 보드판을 그려서 매장에 선물 하시는 경우도 있다. 분필이나 마커펜으로 어떻게 그렇게 잘 그리는지 신기하다. 잘 꾸민 보드판을 보면 예술작품을 보는 듯 하다. 테마를 재미있게 하면 테마를 그린 보드판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건 특정 방탈출러들만 하는 것 같다. 방탈출 초반에는 하다가 요즘은 질려서 안하게 되었는데. 게임이 끝난 후 문제를 복기해 보는거다. 게임이 끝나고 혼자 워드를 켜서 문제를 쭉 써본다. 어떤 유형이 나오고 답이 어떻게 풀렸는지 써본다. 게임 중 막혀서 힌트를 쓴 문제는 어떤 것인지도 표기했다. 나중에는 방탈출을 가기 전에 이전에 했던 게임들의 문제를 다시 한 번 읽어보기도 했다. 이런 노력은 거의 시험 공부하는 수준이다. 학생으로 치면 <방탈출의 오답노트>를 만든 셈이다. 함께 방탈출을 한 동료 중 이런 행위를 신기하게 여기며 함께 복기 해 준 사람도 있었다. 내가 문제를 1차로 써서 보낸 걸 본 후, 내가 떠올리지 못했던 문제들을 답변으로 써서 보내 주었다. 이로서 더 알찬 오답노트가 되었다. 아는 언니는 아이패드로 방의 구조들을 그려서 보내주기도 했다. 오답노트 작성의 장점은, 내가 실수한 구간을 떠올리며 다음에는 더 잘할 수 있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 문제나 시간관리에 대한 개념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일을 하다가 ‘수사 협조 공문’이 메일을 받았다. 경찰청의 요청이였다. 우리 회사 사이트에 가입한 회원 중에서 범죄를 가담 된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이 있으니 데이터를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내가 데이터 관리를 하고 있어 협조를 해줘야 했다. 갑자기 두근두근 엄청 설렜다. 공문의 내용에 협조하며 ‘수사 방탈출’을 하는 기분에 휩싸였다. 일인데도 그 수사공문을 읽는게 너무 흥미진진했다. 그리고 관련된 가해자로 보이는 사람들의 데이터를 뽑으며 여기에 범인이 있을지 궁금했다. 데이터를 넘기고 난 후 나중에 법무팀 직원에게 범인을 잡았는지 물어보았다. 우리는 협조만 하는거지 그런 것 까지는 알려주지 않는다고 했다. 쳇. 이건 '현실'에서 문제를 해결 하는 건데 마치 방탈출 속 가상 세계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치 장자가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처럼 취미와 현실을 혼동하는 괴이한 현상에 빠진거다. 하지만 문제를 만났을 때, 취미로 즐기는 방탈출처럼 즐겁게 맞이할수 있다면 좋은 것 아니겠는가. 일상 속 사소한 문제를 만났을 때, ‘오 방탈출 문제 같은데?’라며 연결시키기 시작했다. 확실한 건 모든 문제에 대한 두려움이 좀 더 줄어들었다는 거다.
이런 소소한 습관들은 방탈출을 취미로 삼으며 생긴 즐거운 습관이다. 방탈출 횟수가 더 늘면, 또 다른 습관이 생길 것 같다. 그때의 내가 어떨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