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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은 Jan 20. 2021

남편이 30분 동안 ATM기 앞에 있던 사연

방황하던 그는 추워진 날씨에 한기를 느꼈다. 결국 그는 은행을 찾았다.


9시 44분, 친구를 보내고 나니 9시와 9시 반에 찍힌 부재중 전화가 두 통 있었다. 남편이었다. 


“응 왜? 이제 친구 지하철에 데려다주고 들어가는 길”

“하…. “ 


남편은 얕은 한숨을 내쉬더니, 알겠다고 자기도 집으로 들어가겠다고 했다. 비슷하게 가겠구나 싶어서 서둘러 집 앞으로 오니 남편은 도어록을 누르고 있었다.


“왜 전화했어?”

“나 ATM기 있는 데서 거의 30분 동안 있었어…”


사연은 이랬다. 코로나 19로 나가지도 못하니 친구 D를 집으로 불러 만나기로 했다. 친구와 편하게 놀라며 남편은 스터디 카페에 갔다. 밀린 잡무를 처리하겠다고 했다. 친구인 D와 배달음식과 술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D가 갑자기 결혼 얘기를 했다. 취직, 결혼, 육아 이렇게 삼박자로 이어진 심각한 얘기를 하다 보니, 시간이 꽤 흘렀다. 모두 삶에 정답은 없는 ‘선택’에 관한 문제였다. 그러나 그 선택지는 많지 않았기에 둘은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인지 신중하게 토론했다. 육아를 하고 있는 A는 3개월 만에 복직을 했다. 육아를 하고 있는 B는 이 자리에 오지 못해서 너무 아쉽다며 아이를 낳는 것은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난이 섞인 투정이긴 했지만, 육아로 개인 시간이 줄어든다는 건 사실일 거다. 토론은 100분을 넘어 10시를 향해가는 시간에 파하게 되었다.


그 사이 남편은 오랜만에 온 스터디 카페가 코로나 19로 9시에 닫는다는 걸 잊고 있었다. 9시가 되자 주인은 이제 영업을 못한다고 했다. 남편은 결국 급하게 짐을 챙겨 바깥으로 나왔다. 내게 전화를 했지만, 나는 100분 토론을 하느라 전화를 받지 못했다. 그는 갈 곳이 없었다. 먼저 카페에 갔다. 영업시간이 종료되었으니, 테이크 아웃만 가능하다고 했다. 방황하던 남편은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 6시에 국밥을 먹었으니 약간 출출한 상태였다. 컵라면을 하나 사서 뜯으려고 하니 


“여기서 드시면 안 돼요.” 직원이 말렸다. 9시 이후에는 편의점에서도 취식이 불가하다고 했다. 남편은 가방에 라면을 넣고 나왔다. 괜히 짐만 늘렸다. 바람이 불자 몸이 으슬으슬했다. 방황하다가 보니 거의 문을 닫은 가게들 사이에서 W은행의 간판이 빛났다. 결국 그가 찾은 곳은 집 근처 365ATM기였다. '오! 감사합니다 은행!' 그는 짐을 내려놓고, 30분간 핸드폰으로 밀린 웹툰을 봤다. 


나는 남편에게 사과했다. 그리고 왜 집으로 오지 않았는지 물었다. 남편은 친구와 네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갑자기 흥을 깨거나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남편의 얼굴이 왠지 푸석푸석해 보였다. 신혼인데 바깥에서 떨게 한 게 미안했다. 코를 쓱 닦고 있는 남편의 배려심에 고맙기도 했다. 


“다음부터는 전화받지 않아도 그냥 와~ 나 같으면 그랬을 건데”

“다음부터는 전화를 잘 받던가~ 술을 적당히 마셔~”

“그래 미안해~ 나를 원망하지 말고 코로나를 원망해”


덩치 큰 남자가 ATM기 앞에서 쭈그려 앉아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모습을 생각하니 짠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했다. 다정한 남편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그날 밤 침대에서 고생한 그의 어깨를 열심히 안마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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