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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은 Feb 06. 2021

일렁이는 마음과 만두 연기

그런 건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일렁이는 마음과 만두 연기


 A는 가끔 내면에 일렁임이 일었다. 그것을 무엇이라 표현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던 날들이 있었다. 친구들은 이를 농담으로 규정해주었다. '그건 설렘이 아니라 바람기야.' 


 A는 오래 만난 남자 친구가 있었다. A의 남자 친구는 차분한 사람이었다. A가 새로 하고 온 커다란 귀걸이를 알아보는 대신 추운 날씨를 막기 위해 그녀의 목도리를 코까지 올려주는 사람. 하지만 A는 코에 닿는 목도리의 까슬함이 간지러웠다. 남자 친구의 따스함에 고마움을 느끼기보다, 귀걸이를 칭찬해주지 않는 남자 친구의 무심함에 얄미움을 느꼈다.

 

A와 남자 친구가 만난 이태원 역의 거리는 낮에는 한산했다. 남자 친구는 말했다. 여기는 왜 다들 오려고 안달일까, 여기에 있는 핵 스테이크 맛집, 늘어나는 치즈 빵, 이런 것들 다 어디에든 있는 것이잖아.라고 말했다. 심지어 프랜차이즈화 된 것도 있고. A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사람들은 기대감 때문에 이곳을 찾는 것이다. 똑같은 맛이라도 뭔가 그곳에 가면 다를 것이 있을 거라는 기대감. 그 기대감을 베어 물기 위해 사람들은 버스와 지하철을 환승하고 30분이 넘게 줄을 선다. 그리고 기다리던 음식을 받아 한입 베어 물었을 때 이빨과 혀 사이로 미끄러지는 음식의 열기를 느끼며, 이빨과 혀로 잘근잘근 분쇄하며 재료를 음미한다. 그리고 날숨 사이로 푸슈슉 새어나가는 설렘을 보내면서 말한다. '아 맛있네' 또는 '기다린 만큼은 아니네.' 주말마다 수많은 사람들은 돈과 시간을 지불하며 기대감을 산다. A와 남자 친구도 다를 바 없이 기대감을 사기 위해 유명한 만두집에 줄을 서있었다.


  A는 혼자 이태원에 왔던 날, 자신의 번호를 따려던 남자를 떠올렸다. 그는 "저기요 제 스타일이셔서 그러는데 번호 좀요"라고 물었다. 오래간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남자는 생김새도 멀쩡해 보였다. 잠깐 으쓱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익숙함을 배반할 만큼 설렘이 크지는 않았다. A는 "죄송합니다. 남자 친구 있어서요."라고 말했다. 남자는 "아 네"라고 말하고 빠르게 사라졌다. 그도 관심이 사라졌다는 듯 훅 자리를 피했다. A가 지금보다 어렸던 때는 누군가와 눈빛만 마주쳐도 기대감이 금방 발동하고는 했다. 하지만 그 기대감은 어디서든 대체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면 맥이 빠졌다. 눈빛 사이로 지나갔던 신호는 쉽게 흩어질 수 있는 연기 같은 것이었다. 그래도 가끔 일렁임을 기대했다. 드라마 속 연인들의 눈빛을 볼 때, 책 속 모험가의 떠나기 직전을 볼 때,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이 좌절을 딛고 성장하는 모습을 볼 때. 그런 건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살 수 없는 그 마음들은 비단 '사랑'이나 '바람기'는 아니었다. 모든 관계와 일상에서의 삶이 바뀔 것만 같은 '기대감'. 하지만 그렇다고 A가 지금의 삶에 불만족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 그다지 원하는 것이 있는 것도 아닌데.' A는 왜 자꾸만 무언가를 기대할까. A는 가끔 그 기대감이 너무 커서 한입 베어 물고 나면 푸슈슉 꺼진다는 걸 알았다. 그럼에도 무언가를 기대하는 순간은 너무나 달콤했다. 그저 기대하는 순간까지만.. 그걸 그저 바람기라고 일컬을 수 있을까? 


"다음 손님 들어오세요" 

점원의 말에, A는 앞에 서있던 남자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공상하는 것을 접었다. 


만두소를 뒤적거리는 A에게 남자 친구는 말했다 

“맛있어? 어때?” 

“맛있다. 그래도 엄청 기다려서 먹은 거 치고는...”

"맛없어?"

"아니 난 만두는 다 맛있다고 생각해. 만두에 이상을 기대하지 않으니 맛없지가 않지."

"그게 무슨 말이야.."

"난 만두는 대부분 다 좋아한다는 말이야~ 

그래도 A야 너희 집 앞에 있는 만두 집 거기가 맛있지 않니.” 

“글쎄..?” 

“거기 지나가면 안개가 훅하고 일어나잖아.” 

“무슨 안개야 ㅋㅋㅋ 만두 찜통에서 나는 연기지” 

“그러니까 그거 미세먼지도 아니고 만두 먼지..” 

“아니 오빠 만두 먼지가 뭐야 ㅋㅋㅋ” 

“나는 그 만두 먼지가 입에 들어가면 공기마저 맛있어. 

나는 이 집 만두보다 그 집 만두가 더 맛있는 것 같아.” 

“여기는 오래 기다려서 산 집인데?” 

“여기도 맛있기는 한데 거기는 정말 확실한 맛이야. 확실한 행복이라고” 


A의 남자 친구는 만두 먼지를 그리기 위해 손과 손 사이를 크게 벌렸다. 

"그냥 그 공기를 마시는 순간 훅 행복이 밀려와 그리고 오래 기다릴 필요도 없어 바로 나온다고!" 


남자 친구는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숨을 들이마시는 모습을 흉내 냈다.

A는 가만히 바보 같은 그 몸짓을 지켜보았다. A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기대감이라는 매트릭스가 남자 친구의 바보 같은 몸짓으로 쿡쿡 구멍이 뚫리는 것 같았다. A는 매트릭스에 뚫린 구멍 사이로 빠져나가는 털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기대감은 조금씩 부피가 줄고 있었다. 그렇게, 그 대신, 별것 없고 사소한 기쁨들이 입가에 미소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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