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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은 Feb 11. 2021

만화방의 노숙자에게 받은 선물

연말정산의 ‘기부금’ 칸에 0원으로 표시된 내역을 보며 부끄러움을 느낀다


만화방의 노숙자에게 받은 선물


대학교 때, 만화책을 워낙 좋아해서 만화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만화방의 시급은 그때 기준으로 최저임금보다 1,000원 넘게 낮았다. 사장님은 이게 업계의 공통된 기준이라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말이 안 되는 일이지만, 돈을 적게 받더라도 만화방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었다. 만화책을 한 번 실컷 보고 싶었다.


신촌 지하 1층에 있는 만화방에서 알바를 했다. 손님들은 거의 아저씨들이었는데 1시간~3시간 정도를 끊고 무협지를 읽다가 갔다. 종일권도 있었다. 종일권은 만원 정도 내고 12시간 정도를 있을 수 있었다. 나는 신간을 정리하고, 손님이 가고 나면 재떨이를 비우고, 자리를 정리하고, 라면이나 쥐포를 조리하기, 계산을 하는 일을 했다. 만화방은 시급이 없는 만큼 할 일이 없었다. 이렇게 하다 망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사장님은 여기서는 수익을 내지 못한다고 했다. 여러 개의 가게를 하고 계신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한가한 시간에 꽃보다 남자를 전권 정주행 하거나. 꽂히는 만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사장님 없이 혼자 일해서 편했다. 내 생에 가장 만화책을 많이 보던 날들이었다.


평소 낮 알바였지만, 대타로 저녁 알바를 하던 날 휠체어를 끌고 손님이 왔다. 그는 몸에서 냄새가 났다. 나는 표정을 구기지 않기 위해 애썼다. 그는 저녁 종일권을 끊는다고 하고 자리에 앉아 만화를 봤다. 다른 음료나 음식은 시키지 않았다. 저녁시간에는 술을 많이 먹어 막차가 끊긴 사람들이 종일권을 끊고는 했다. 그러나 그는 막차가 끊겨서 온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그의 몸에서 나는 냄새 때문 자리 옆을 지나갈 때 숨을 참았다. 노숙자로 추정되는 그 때문에 손님이 더 들어오지 않을까 봐 걱정을 했다. 아침이 밝았고 그도 나가려고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카운터로 왔다.
 

“외상”


그는 걸걸한 목소리로 말했다. 처음 본 외상 손님이었다. 나는 당황해서


“외상이요? 외상은 안 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사장님께 여쭤볼게요.”라고 했다.


노숙자는 사장님도 안다는 듯 귀찮은 일을 한다는 표정을 했다. 사장님께 전화로 한 손님이 오셨는데 퇴실하면서 외상을 요청한다고 얘기를 했다.


“그 다리 불편한 노숙자 아저씨 얘기하는 거지? 보내줘.”


사장님은 익숙하다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나는 돈을 받지 않고 그를 보내주었다. 아침에 나와 교대를 한 사장님은 말했다.


“그 아저씨, 자주 오는 사람인데, 저녁에 외상 하면 그냥 보내줘. 나중에 돈 생기면 낸다.”


라고 말했다. 그는 더러운 행색에 냄새도 나서, 손님까지 쫓아내는 사람인데 돈까지 안 받는다니. 불쾌했다. 돈 내고 멀쩡히 이용하는 사람은 뭔가. 기분이 나빴다. 그리고 나는 그가 약간 무섭기도 했다. 그렇다고 사장님이 받지 않는다는 돈을 내가 어쩔 수는 없었다. 그 후로도 나는 종종 저녁 알바를 했고, 그 가끔 찾아왔다. 그가 문제를 일으킨 건 아니었다. 소란은 술을 많이 마신 손님이나, 코를 골며 시끄럽게 자는 아저씨들이 일으켰다. 그는 얌전히 외상으로 책을 읽고 돌아갔다.


어느 날 저녁 그가 또 찾아왔다. 손에는 까만 비닐봉지를 들고 있었다. 그는 비닐봉지를 내게 내밀었다.


“이거… 먹어요”


봉지를 열어보니 사과였다. 빨간 사과가 3개 들어있었다. 예상치 못한 선물이었다.


“아… 감사합니다..”


나는 사과를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준 마음은 고마웠지만, 먹을 수는 없었다. 그는 그날 돈을 내고 갔다. 3,800원이었다. 꼬깃꼬깃 접힌 천 원짜리 지폐 3장과, 동전들. 그는 만원은 아니라도 낼 수 있는 돈을 내고 갔다. 아침이 되어 사장님이 왔고, 나는 사과 얘기를 했다.

“저 아저씨 오늘 구걸 많이 했나 보네.”


사장님은 냉장고에 있는 사과를 비닐봉지째로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의 돈은 받을 수 있었지만 사과는 먹을 수 없었다.


나는 가끔 그 일이 생각난다. 외상이라고 말하긴 했지만 받지 못할 돈이었고, 무료로 자리를 제공해주신 사장님은 좋은 분이었다. 나라면 장사를 하며 그렇게 할 수 없을 거다. 사장님은 가진 것을 나눈 것이다. 노숙인은 가진 게 없었지만 조금이라도 나누려고 했다. 적선을 많이 받은 날에 본인과 하등 상관없는 나와 사장님에게 사과를 주셨다. 본인이 가진 작은 것에서도 호의를 베풀었다. 나는 그를 위해 아무것도 나눈 것이 없다. 불쾌하고 무섭기만 했다. 사과를 나눈 그의 마음만큼, 마음만이라도 인색하게 굴지 말 것 부끄러웠다.


대학생 때보다 많이 가진 지금, 나는 무엇을 나누었나 돌이켜 본다. 연말정산의 ‘기부금’ 칸에 0원으로 표시된 내역을 보며 부끄러움을 느낀다. 아니 기부금이 아닌 마음이라도 따스히 쓴 적이 있나 되돌아본다.


어제, 설 연휴의 전날, 남편의 제안으로 우리는 시장에 가서 떡과 빵을 사 왔다. 우리 빌라 위아래층에 사는 이웃에게 가서 떡과 빵을 나누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를 했다. 잠깐의 순간이지만 이웃의 미소를 볼 수 있었다. 다정해지기로 마음먹었지만 인색한 지난날들이 생각난다. 새해를 맞아 올 한 해 좀 더 마음의 빗장을 풀고 나누는 사람이 되기로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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