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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혜BaekJi Mar 08. 2022

0308

과제글

<전쟁 선언>


평화로운 마음의 평원에 엄마라는 사람이 거대한 포탄을 던졌다. 최전선 철조망이 무너지면서 꾹꾹 눌러담은 설움과 화가 한꺼번에 터져나온다. 너무 오래도록 품어와 이미 고름딱지가 져버린 것이었다. 퇴근 후 왠일로 집은 조용했다. 늘 TV를 틀어놓거나 소주잔을 기울이던 엄마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식탁 위에는 투박한 글씨의 쪽지가 있었다. 글씨만큼 삐뚤빼뚤한 엄마의 마음이 엿보였다. “니가 너무 밉고 싫어”


엄마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엄마가 갈만 한 곳도 나는 알지 못했다. 치매도 없고, 비교적 젊은 나이의 엄마가 떡하니 쪽지까지 남겨놓고 사라졌는데 경찰을 부를수도 없었다. 자정을 넘긴 바깥은 컴컴하기만 했다. 어둠이 작고 낡은 집을 침범한지 오래다. 초라한 부엌등만이  좁디 좁은 나의 영역을 알려준다. 나는 이미 어둠에 포위된 상태다. 사면초가의 상태에서 누구도 내 편이 되지 않는다. 이 세상 나의 유일한 아군 엄마도 나를 배신했다.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엄마는 이 세상에 유일한 내 편이었다. 나도, 그녀의 유일한 편이었다. 엄마는 열일곱에 나를 낳았다. 엄마의 남편이, 아기의 아빠가 될 사람은 물론 없었다. 응애하고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의 탄생을 축하해주는 이는 없었다. 의사와 간호사들은 그저 아빠 없이 살아가야 할, 혹시 내일이라도 버려질지 모르는 아이를 애처롭게 바라볼 뿐이었다. 아이를 낳은 여자도 아이와 함께 울었다. 기쁨과 절망, 두려움이 섞인 울음소리를 내는 여자에게 사람들은 말했을 것이다. “애가 애를 낳았다.”


여자는 반지하에 집을 얻어 아이를 키웠다. 이런저런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을 받고, 하루종일 식당일이며 경리일이며를 도맡아하며 돈을 벌었다. 그 돈의 대부분은 모두 아이의 유치원, 분유값, 옷값으로 나갔다. 여자는 아이에게 헌신했다. 엄마의 헌신과 노고를 아이는 일찍이 알아챘다. 아이는 십대때 이미 여자의 보호자가 되어 있었다. 누굴 닮았는지 영특한 머리를 타고나 공부는 곧잘했고, 친구도 잘 사겼다. 학급회장 자리를 도맡아했고, 매번 전교 1,2등을 했다. 세상을 보는 깊이와 폭도 이미 자기 엄마의 그것을 훨씬 넘어버렸다. 자신이 잘 살아야 엄마에게 보답하고, 고생 안한다는 생각에 아이는 노력했다.


요즈음 보기드문 개천용이었으나 아이는 일찍부터 세상의 풍파를 온몸으로 막아내야 했다. 대학이란 곳에 가니, 어릴때부터 해외 유학을 다녀오고, 그 가치를 가늠하기도 힘든 값의 고급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 넘쳐났다. 부모의 고생을 모르고 자라  ‘죄책감’이라는 감정 또한 알 길이 없는 행복한 아이들. 아이가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일하는 데 보내야 들을 수 있는 ‘영어회화 수업’ 없이도 그 아이들 입에서는 영어가 아주 자연스레 나왔다. 교수나 면접관들은 얼굴에 그늘없고 타고나게 능력이 좋은 그들을 좋아할 것이 뻔했다. 엄마를 위해,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살던 아이는 결국 번아웃이 와버렸다. 사춘기 없이 자란 아이는 그때부터 매일 엄마와 전쟁같은 하루를 보냈다. “엄마는 왜 힘든 걸 내게 숨기지 못하느냐”, “엄마가 무식해서 그러는거야” 등의 따발총같은 말들이 입에서 매일 나왔다.


“풍족하지 않거나, 부족함이 많은 부모 아래에서 자란 아이들은 결국 뼈를 깎는 노력을 통해 부모로부터 스스로를 분리시켜야 합니다. 이걸 우리는 성장이라 하죠”


한밤의 택시 안에는 그런 라디오 음성이 나왔다. 요즘 잘나가는 정신과 의사가 라디오 Dj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목적지를 묻는 기사 아저씨에게 나는 여기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의 목적지를 대강 말한다. 의사의 말을 곱씹었다. 엄마와 전쟁같은 하루를 보내던 것도 2년전쯤엔 끝났다. 영리한 아이는 자기가 살려면 결국 스스로 강해져야 하고, 부모의 모자람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그로부터 성장했기 때문이었다. 개천용은 결국 부모와의 사이도 어긋날 수밖에 없다는 것처럼 들려 또 서러움이 올라왔다. 그때 택시 아저씨가 입을 열었다. 보통은 손님의 기분을 보고 무슨 일이 있었냐, 등을 묻는 게 정상일텐데 그는 자기 이야기를 들입다 시작했다. 얼굴이 붉게 상기된 채였다.


“에이, 애들은 부모 맘은 죽어도 몰라요.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다고 누가 그래. 맨날 지다가 결국엔 자식이라도 싫어지는 거야. 무조건적인 사랑 그런 게 어딨어요. 힘들게 키워놨더니 대학나왔다고, 대기업 갔다고 엄마 아빠 무식하다고 무시하고, 자기 기 세우고 부모 기는 팍 죽여놓으면 어떤 부모가 더 같이 살고싶겠냐고. 자식이라도 너무 미워요.”

 

아저씨는 그 뒤로도 한시간동안 이야기를 이어갔다. 말투에는 설움과 허탈함이 묻어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지 않았다. 뻔했다. 그와 자식의 이야기는 곧 나와 엄마의 이야기같았고, 실제로 똑닮아 있었다. 아저씨는 자기 자식이 개천에서 난 용이 되는 과정에서 겪었을 고통은 보지 못한 듯했으나, 굳이 말해주지 않았다. 대강 부른 목적지에 도착하고 나서도 그는 말을 몇분간 이어갔다. “나도 이제는 지쳐버렸어요.” 라는 그의 말을 마지막으로 나는 안전운전을 기원하며 그를 보냈다.


그곳에서 나는 괜히 두리번거렸다. 엄마가 어딘가에 있을까 하고, 완전히 번아웃된 엄마가 눈물을 훔치고 있다면 가서 고생했다고 어깨라도 두드려주기 위해. 이 세상 유일한 나의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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