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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혜BaekJi Dec 14. 2020

2년 전

난 글을 참 못썼구나...

어느샌가 우리 집에 처음 보는 사람들이 들락날락했다. 각자 다른 대기업 건설사 직원이었다. 이들은 항상 한 손에 선물을 들고 찾아와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눴다. 아버지는 '사장님'으로, 어머니는 ‘사모님’으로 불렸다. 아버지는 쉬는 날이면, 조합 관련 일로 바빠 보이셨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매일 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나눴다. 가장 많이 들린 단어는 '뉴타운', '부동산', '재개발'이었다. 뉴타운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2000년대 중반부터 서울시 낙후지역 재정비 계획에 의해 서울시는 뉴타운 열풍에 휩싸였다. 그 중 서울시 성북구 장위동은 2005년 국내 최대 규모의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되었다. 15개 구역으로 쪼개져 개발이 추진되었다. 판자촌 자리에 2~3년 만에 브랜드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었다. 놀이동산 '드림랜드'가 헐리고, 시민공원 '북서울 꿈의 숲'이 생겼다. 낙후된 동네 장위동이 순식간에 금싸라기 땅으로 거듭났다. 
  
  나에게 재개발은 다소 빠른 느낌이었다. 어린 시절 할머니와 저녁 산책을 자주 했다. 넓은 판자촌이 훤히 보이는 곳에 서면, 선명한 조명 아래서 몇 명의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특유의 분위기로 인해 그 곳에서는 종종 영화와 드라마 촬영이 이뤄졌었다. 집에는 내가 드림랜드를 배경으로 찍힌 사진들이 여럿 있다. 초등학교 때 매년 드림랜드 수영장으로 체험학습을 갔었다. 이 모든 것들이 참 빠르게 사라졌다.


 부모님에게 뉴타운은 꿈이었다. 빠듯한 삶을 한 순간에 반전할 수 있는 기회였고, 희망이었다. “역시 이 동네가 터가 좋아” 아빠는 이렇게 잘 풀릴 줄 알았다는 식의 이야기를 자주했다. 장위동 한 땅을 이병철 삼성회장이 사 두었다고 그가 말했다. 장위동은 실제로 60~70년대 부촌이었다. 과거의 영광을 되찾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 같았다. 장위동에 살고 있는 많은 어른들의 꿈이기도 했다. 낡은 집, 지긋지긋한 삶에서 모두 벗어나고 싶어 했고, 희망에 부풀었다. 그때 동네는 정말 활기를 되찾은 것 같았다.
  
 부풀었던 꿈이 한순간에 터져 사라졌다. 서울시장의 사퇴와 2008년 세계금융위기라는 상황이 맞물려 서울시 뉴타운 계획에 제동을 걸렸다. 내가 사는 장위12구역은 13구역과 함께 가장 먼저 뉴타운 해제구역이 되었다. 주민투표에서 조합원의 50%가 찬성하지 않으면 재개발 구역 해제 절차를 밟았는데 그 과반 찬성을 못 넘겼다. 장위12구역이 재개발 구역에서 해제되었을 때 부모님의 실망감은 확연했다. 더는 건설사 직원도 찾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뉴타운이 꿈은 아니었다. 재개발이 확정된 장위 4구역에서 한 공장 세입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되었다. 터무니없이 적은 이주보상금으로는 다른 곳에서 생업을 이어나갈 수 없었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2009년에는 용산참사가 있었다. 장위12구역은 주민투표에서 재개발 과반 찬성을 얻지 못했다. 투표가 재개발을 엎었다기보다는 투표라도 있어 우리 동네에서는 자살이, 참사가 벌어지지 않았던 것일까. 누군가에게 재개발은 ‘불도저’였다.
  
 재개발은 주민들에게 저마다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때로는 격렬한 갈등으로 치닫기도 했다. 한동안 희망으로, 갈등으로 북적였던 장위동은 다시 고요해졌다. 그러나 작은 소음들이 들려왔다. 우리 집은 그대로지만, 주변에 소규모의 공사가 늘었다. 단독주택이 헐리고, 빌라가 세워졌다. 공영주차장이 준공되기도 했다. 교복점을 운영하는 아저씨가 살던 옆집이 헐리고 그 자리에 새로운 단독주택이 지어졌다. 변호사 아저씨와 이웃이 되었다. 오랜만에 찾은 동방고개에는 작은 카페, 이자카야, 수제버거집들이 들어섰다.
  
 실망은 이제 과거의 일이긴 하나 아버지는 아직 아쉬워하신다. 요즘 당신께서는 자꾸 이리저리 문제가 생기는 40년 된 주택에 들어가는 보수비용을 마주할 때마다 신기루처럼 사라진 재개발을 생각한다. 높은 보수비용에 투덜대면서도 이제는 여기서 살아가는 것에 제법 정을 붙이신 모양이다. 지금 사는 집을 어떻게 리모델링할 수 있을지 여러 방면으로 알아보신다. 장위동은 예전의 영광을 되찾지 못했지만, 여전히 우리는 여기서 어떻게 살아갈지 궁리하고 있다.



2년 전 기자단에서 활동한 적이 있었다. 그때 재개발에 대한 글을 썼는데, 어쩌다보니 그게 프레시안 뉴스, 토마토 뉴스 등에 올라갔다. 어느날 갑자기 나에게 셀카를 보내달라면서 소장님은 이런 희소식(?)을 전해왔다. 친구가 운영하는 인스타 플랫폼에 올릴 첫 글은 이게 좋을 거 같다고 생각해 옛날에 쓴 글을 다시 고쳤다. 20-30분이면 금방 고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너무 못써서 1시간이 넘게 걸렸다... ㅋ...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17938?no=217938&utm_source=naver&utm_medium=search#0DK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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