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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혜BaekJi Mar 19. 2021

2.

같이  먹으러 갈래?” 혜정이는 나에게 살갑게 말을 먼저 걸었다. 중학교 입학  새로운 반에서 주뼛주뼛 혼자 앉아 있는 나와 달리 혜정이는 친구를 금방 사겼다. 내가 착해보여서 말을 걸어봤다는 혜정이와 나는 금방 친해졌다. 물론 혜정이의 살갑고, 솔직한 성격 덕분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애는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부모님이 이혼했고, 지금은 어머니와 살고, 엄마의 과거 알콜중독 때문에 힘들었던 얘기 등을 스스럼없이 해주었다. 나는 그에 비하면  고생 없이 자란 터라  얘기를 굳이 하지는 않았다. 그때 나는 너가 나한테 마음을 많이 열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우리 관계는 확실히 달라졌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였다. 나는 특목고 입시를 준비했고, 혜정이는 빨리 취업하고 돈을 벌겠다며 특성화고 진학을 목표했다. 나는 학원에 있는 시간이 크게 늘었다. 틈만 나면 서로 두 시간씩 전화기를 붙들고 있었는데 이제는 내 쪽에서 ‘이따가’, ‘내일’ 이라는 말로 먼저 끊는 일이 잦아졌다. 자연스레 혜정이가 나에게 전화하는 일도 눈에 뛰게 줄었다.


고등학교 면접 전 날 밤 혜정이가 갑작스레 전화를 해왔다. 술에 취한 상태였다. 그냥 심심해서 전화했다는 혜정이는 잠깐의 침묵 뒤에 ‘미안해’라는 말로 자신의 푸념을 시작했다. 응, 그렇지 대꾸를 하면서도 나는 내일 볼 면접을 걱정했다. 그때 엄마가 들어와 나는 성급히 마무리를 지으려했다. “엄마 들어온다. 혜정아, 내가 이따가 다시 전화할게.” 솔직히 엄마가 들어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혜정이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어느새 부담이 되었다. 엄마와 선생님은 지금이 중요한 시기라고, 이제부터 공부에만, 장래에만, 목표에만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쓸 데 없는 생각은 집중력을 흐트러뜨릴 뿐이라고. 그들은 소위 꼰대였지만 나도 그들과 그렇게 다르지 않았다. 나 역시도 그것들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나에게만 힘든 일을 털어놓을 수 있다는 혜정이의 마음은 부담이었다.


다시 전화했을 때 혜정이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 다음날부터 졸업식까지 혜정이는 굳이 나에게 먼저 말을 걸지 않았다.


5개월 전, 혜정이가 6년 만에 연락을 해왔다. 자기 얘기를 죽 늘어놓던 10대 때와 달리 혜정이는 ‘내가 CC는 해봤는지’, ‘시험공부는 잘 돼가는지’ 등을 물어보았다. “과탑한다고 아싸 된 거 아니야?” 나는 너는 요즘 무슨 일을 하는지 등을 물어보며 대화를 끌었다.


“야 대학이 더 힘들어 ㅋㅋㅋ"

정말이었다. 한국인으로 태어난 이상 고등학교만 한 극한의 경쟁의 장은 없을 줄 알았는데 대학이란 곳은 더했다. 18학점에 알바, 대외활동을 겸하지 않으면 불안해졌다. 주변을 돌아보라고? 사치였다. 교정 어딘가에서 마이크를 들고 쩌렁쩌렁 “우리는 요구한다"를 외치는 무리들에 공감은 했지만 섞일 수 없었다. 대학은 내 손에 더 많은 것을 쥐어줬고, 난 이를 더욱 놓치기 싫었다. 혜정이가 연락왔을 때도 그랬다. 어머니 잘 지내는 지를 물어보려다 괜히 그 아이, 아니 나의 마음만 괜시리 무거워질 거 같아 관뒀다.


동창으로부터 혜정이가 자살 기도를 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 일주일 전이었다. 덜컹했다. 안도감과 함께 왠지 모를 죄책감이 들었따. 아마 혜정이는 내가 괜히 무거운 질문을 해주길 바랐을 것이라는 생각이 슬며시 들었다. 먼저 이야기를 꺼내기에는 부담스러웠고, 나는 끝내 묻지 않았다. 그때 그 아이는 알았을 것이다. 내가 예전보다 더욱 자신이 부담스러워 거리를 둬왔다는 것을.


병문안을 가는 내 발걸음은 아주 무거웠다. 그 아이가 좋아했던 초콜릿을 한 봉투 샀다. 그 얼굴을 다시 본다는 게, 그것도 지금 만난다는 게 가능할까 싶었다. 난 걔 눈이나 똑바로 볼 수 있을까. 병실에 들어섰을 때 혜정이는 앉아 있었다. 풋풋한 혜정이의 얼굴에 햇빛이 비쳤다. 혜정이는 시익 웃으며 말했다.


“꼰대왔네? 젊은 꼰대.”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리고 순간 열네살, 너가 나한테 말을 걸어 온 그 때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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